역사

티무르의 수도는 사마르칸트였나

hanyl 2021. 1. 31. 00:17

* 티무르(Tīmūr ← TYMWR)는 튀르크어·몽골어 인명 테뮈르/테무르(Temür)의 페르시아어식 독음이다. 그러나 테뮈르는 튀르크어를 모어로 하였으며 몽골 제국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튀르크어식인 테뮈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대체로 사람들의 인식은 테뮈르의 ‘수도’가 사마르칸트였다는 것 같다.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이렇게 적었다. “티무르는 유목민도 아니었다. 그는 스텝 지역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시 그 지역의 지도자나 전사들은 대개 성벽이 둘러쳐진 도시에서 살았고, 티무르도 역시 완벽하게 그러한 도시 사람이었다.” (Beckwith, 2014: 368)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식이 소위 말하는 ‘유목제국’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유목민들은 계절에 따라 동영지(qıshlaq; qısh는 튀르크어로 ‘겨울’)과 하영지(yaylaq; yay는 튀르크어로 ‘봄’을 뜻하나 나중에는 ‘여름’으로도 사용되었다)를 오가며 생활했다. 그런데 이 점은 정주지역을 지배하게 된 유목민 군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데 쿠빌라이 카안을 비롯한 몽골 제국 카안들은 봄이 되면 상도로 올라가 그 부근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이 되면 내려와 대도 인근에서 겨울을 보냈다. (김호동, 2016: 144; 김호동, 2002: 9-16) 이란 지역 훌레구 울루스의 군주들 또한 이와 같은 유목적 습속을 유지했다. 이들은 여름은 알라 타그[Ala Tagh, 지금의 터키, 알라다(Aladağ)]나 시야흐 쿠흐(Siyah Kuh, 하마단 북서쪽), 수구루흐(Sughurlukh, 타흐티 술라이만), 혼후르 울렝(Khonkhur Öleng, 술타니야), 우잔(Ujan, 타브리즈 남동쪽), 사인(Sayn, 사라브와 아르다빌 사이), 하슈트루드(Hasht-rud, 마라가 동쪽)에서 지냈다. 겨울은 자가투(Jaghatu)나 바그다드, 훌란 무렌(Hulan Mören, 키질 우준강 인근), 카라바그(Qarabagh, 나히체반 인근) 등에서 보냈다. 요컨데 이들의 수도권은 아제르바이잔이었다. (桝屋友子, 2002: 76-77)

지도. 테뮈르 제국의 수도권

그렇다면 테뮈르는 어땠는가? 테뮈르의 경우는 재위 내내 원정을 위해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동영지와 하영지를 특정하기 어렵긴 하지만, 동영지와 하영지가 존재하긴 했었고, 이것이 그 제국의 수도권으로 기능했다. 다만 그는 트란스옥시아나에서 머무는 경우 대부분 겨울은 잔지르 사라이(Zanjīr Sarāy: 사슬 궁전)나 사마르칸트에서 보냈고, 여름은 키슈[Kish, 지금의 샤흐리사브즈(Shahrisabz)]에서 보냈다. 잔지르 사라이는 트란스옥시아나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마지막 차가다이 왕통의 군주 카잔 술탄 칸(Qazān Sulṭān Khān)이 세운 도시라고 전해지는데, 키슈나 사마르칸트에 비해 호라즘과 호라산에 가깝기 때문에 호라즘이나 호라산으로 진군하기 전이나 이 방면으로의 원정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러나 1388년 토크타므슈가 테뮈르가 이란 방면에 원정 중인 상황을 이용해 트란스옥시아나를 침공하여 잔지르 사라이를 파괴한 뒤에는 동영지로 이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연, 2020: 23-25)

키슈는 출신 부락인 바룰라스부의 근거지이자 테뮈르가 태어난 곳이었다. 테뮈르는 집권 이후 사마르칸트 못지 않게 키슈에서 적극적인 건축 활동을 전개했다. 요절한 아들 자항기르가 안식할 영묘가 대표적인데, 일부 학자는 테뮈르 자신 또한 사후에 자항기르의 옆에 안치되기를 바랐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테뮈르가 하영지로 키슈를 선호한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보다는 바룰라스 부락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이유가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Bosworth, 1986: 182; Lurje, 2009) 사마르칸트는, 앞서 언급했듯, 일반적으로 테뮈르의 수도로 여겨지는 도시이다. 유목민의 시각으로 보았을때 사마르칸트의 환경은 여름을 지내는데 더 적합했지만, 테뮈르는 이 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쪽을 선호했다. 테뮈르는 사마르칸트에서 겨울을 보내는 경우 내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테뮈르는 잔지르 사라이 파괴 이후 사마르칸트에서 주로 겨울을 보냈는데, 이때 사마르칸트와 키슈 사이에는 일종의 고속도로가 조성되어 수도권 기능 수행을 원활하게 했다. (川口琢司, 2013: 1661-98)

그림. 즉위식에 방문한 청중들을 맞이하는 테뮈르. 테뮈르가 유목민식 천막 앞에 앉아 있는 점에 주목하라. © Johns Hopkins University

테뮈르는 도시에 머무는 동안 어떤 생활을 했을까? 벡위드 교수의 추정처럼 ‘도시인’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결코 유목적 습속을 포기하지 않았다. 예컨데 테뮈르가 사마르칸트 내부에 세운 쾨크 사라이(Kök Sarāy: 푸른 궁전)에 대한 기록을 보자. 데 클라비호(de Clavijo)에 따르면, “도시[사마르칸트]의 끝에는 성채[쾨크 사라이]가 있는데, 한쪽 면이 하천이 흐르는 협곡과 면해 있어 아주 강력했다. 군주[테뮈르]는 금고를 그곳에 두었고, 고위 관리와 그 수행원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오가지 못하게 했다. 성채 내부에는 수천명의 죄수들도 갖혀 있었는데, 이들은 일년 내내 일하며 투구나 활, 화살을 생산했다.” (de Clavijo, 1859: 172) 테뮈르는 사마르칸트에 머무는 경우 성벽 바깥에 거대한 숙영지를 조성하고 이곳에서 모든 활동을 전개했고, 특정한 목적이 있을때만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Gronke, 1992: 19; O'Kane, 1993: 250-51)

정리해보자. 테뮈르의 수도는 사마르칸트라는 서술은 엄밀하지 않다. 테뮈르의 수도권은 사마르칸트와 키슈였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는 다른 유목군주들과 마찬가지로 하영지와 동영지를 오가는 계절이동 습성을 계속 유지했다. 평상시 생활하는 공간 또한, 설사 도시에 머무른다고 해도, 성벽 내부가 아닌 성벽 바깥의 유목민식 숙영지였다.

참고문헌

김호동. 2002. “몽골제국 군주들의 양도순행과 유목적 습속.” 『중앙 아시아 연구』 제7호: 1-19.

김호동. 2016.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사계절출판사.

이주연. 2020. 『티무르조의 사서, 야즈디 저 『승전기』(Ẓafar-nāma)의 역주』. 박사 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Beckwith, Christopher. 2014.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 이강한·류형식 옮김. 소와당.

Bosworth, C.E. 1986. “Kish” in The Encyclopedia of Islam, Second Edition, Vol. 05: 181-82.

de Clavijo, Ruy Gonzalez. 2000. Narrative of the Embassy of Ruy González de Clavijo to the court of Timour, at Samarcand, A.D. 1403–6. Clements R. Markham, tr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Gronke, Monika. 1992. “The Persian Court between Palace and Tent. From Timur to ʿAbbās I” in L. Golombek and M. Subtelny, eds., Timurid Art and Culture. Iran and Central Asia in the Fifteenth Century. Brill: 18-22.

Lurje, Pavel. 2009. “Keš” in Encyclopædia Iranica, Online Edition.

O'Kane, Bernard. 1993. “From Tents to Pavilions: Royal Mobility and Persian Palace Design.” Ars Orientalis, Vol. 23: 249-68.

桝屋友子 도모코 마스야. 2002. “Ilkhanid Courtly Life” in L. Komaroff and S. Carboni, eds., The Legacy of Genghis Khan: Courtly Art and Culture in Western Asia, 1256-1353. Metropolitan Museum of Art: 74-103.

川口琢司 가와구치 다쿠시. 2013. “ティムールの冬営地と帝国統治・首都圏 (티무르의 동영지와 제국통치·수도권).” 『史学雑誌』 122巻 10号: 1661-98.

그림. 즉위식에 방문한 청중들을 맞이하는 테뮈르. 1467년, 비흐자드 작으로 추정. © Johns Hopkins University

지도. 테뮈르 제국의 수도권. 위키커먼스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