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 울루스 체제, 그리고 ‘몽골 연방’
기존 몽골 제국사 연구는 몽골 제국의 통합 기제보다는 네 개의 칸국(한국)으로의 분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대세였다. 몽골 제국의 통합과 분열을 바라보는 연구자들은 칭기스 칸의 분봉을 지역적인 분할의 전조로 파악했다. 즉 분봉에서 나타나는 몽골 지배층의 제국에 대한 인식이 곧 분열의 씨앗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용규 2009: 102-103 특히 n. 34; 이용규 2010: 73) 예컨데 피터 잭슨(Peter Jackson) 교수의 논문「울루스에서 칸국으로: 몽골 국가들의 발생, 1220년경-1290년경」(“From Ulus to Khanate: The Making of the Mongol States, c. 1220–c. 1290,” 1998)가 있다. 그는 몽골 제국이 통합적인 구도에서 어떻게 지역 정권으로 분할되어갔는가를 그려냈다.
그에 반해 최근(30년 가량)의 학자들은 이러한 분열 중시 관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몽골 제국의 분열적 경향보다는 통합적인 구도에 더 비중을 두는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데 토마스 올슨(Thomas Allsen) 교수께서는 1987년에 출간한 『몽골 제국주의』(Mongol Imperialism, 1987)는 여는말에서 “이 연구를 통해 몽골 제국 연구가 그 전체성(entirety)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과 그 역사를 전체적 관점(holistic approach)에서 접근할 때의 이점을 보여주고자 했다”(1987: 11)라고 적었다. 김호동 교수께서도 「몽골제국의 ‘울루스 체제’의 형성」(2015)을 통해 몽골적 관점, 제국적 관점으로, 통합의 기제로서 ‘울루스 체제’를 살펴본 연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다루는 시간적 범위란 면에서 아쉬움이 존재한다. 올슨 교수의 연구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 뭉케의 치세(1251-59)만을 다루었다. 김호동 교수의 논문은 13세기 중반, 즉 1260년대까지를 주된 배경으로 삼았다. 적으면서 마무리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다수의 울루스들이 상호 대립과 충돌, 연맹과 병합이라는 복잡한 정치적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13세기 중반에서 14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 울루스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변화해 나갔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울루스 체제에 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추후의 연구를 통해서 보완하고자 한다.”(김호동 2015: 375-76)
이 논문을 발표하고 4년 뒤인 2019년 김호동 교수께서 영어로 발표한 논문인 「몽골 제국 울루스들의 형성과 변화」(“Formation and Changes of Uluses in the Mongol Empire,” 2019)이 바로 ‘추후의 연구’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몽골제국의 ‘울루스 체제’의 형성」에 13세기와 14세기(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좀 더 뒤)에 각 울루스의 변용에 대한 내용 추가가 대거 이루어졌다. 그런 만큼 결론 부분에서 김호동 교수께서는 더 자신만만하게 “요컨데, 몽골 제국은 하나의 거대한 울루스로서 내부에 다층의 소규모 울루스 다수를 포함하고 있었다. 각 울루스의 규모는 서로 달랐다. 서방의 차가다이와 조치, 훌레구 3대 울루스는 너무나 거대해서 각기 별개의 국가 또는 제국으로 보일 정도였고, 정치적으로도 동방의 카안 울루스에게서 완연히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방대한 규모나 정치적 독립성과 별개로, 당대 몽골인들은 기본적으로 개개의 울루스가 예케 몽골 울루스를 구성하고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울루스라는 개념은 몽골 제국의 일체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Kim 2019: 312)라고 적으셨다.
그러나, 이 논문을 읽고서도 여전히 1260년 이후의 ‘몽골 제국’을 하나의 ‘몽골 제국’이라 불러도 될지에 대한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종래와 같이 차가다이 울루스와 훌레구 울루스, 조치 울루스를 각기 하나의 지역 제국으로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점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김호동 교수께서도 적으셨듯 1260년 소위 ‘몽골 제국의 해체(dissolution)’ 이후 서방 3대 울루스는 정치적으로 동방의 카안 울루스에게서 완연한 독립성을 지녔다. 이런 상황에서 1260년 이전과 같이 하나의 제국으로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그보다 좀 더 느슨한 수준의 연맹 또는 연합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에 미할 비란·요나단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 엮음,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장군, 상인, 지식인』(2021)의 서문을 통해 실마리를 보았다. 여기서 엮은이들은 1260년 이후의 몽골 정치체들에 대해서 ‘몽골 연방(Mongol Commonwealth)’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에 따르면 카이두가 중국의 카안 울루스를 공격하고, 조치 울루스와 차가다이 울루스가 훌레구 울루스의 아제르바이잔과 후라산을 넘보는 등 “분쟁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네 정치체는 칭기스 일족으로서 강한 일체감을 지녀 스스로를 ‘형제 국가’라 생각했다. 더구나 네 칸국은 케식, 자삭, 잠, 자르구치, 다르가치(darughachi, 達魯花赤), 오르도(ordo, 斡魯朶) 같은 몽골의 제도를 공유하고 있었고, 이는 지역적 변이 및 현지 제도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미할 비란 등 2021: 26-27)
사실 ‘몽골 연방’이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 교수의 논문 「몽골 연방? 포스트 몽골 공간을 가로지른 교환과 지배구조」(“Mongol Commonwealth? Exchange and Governance across the Post Mongol Space,” 2007) 역시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비란 교수 등의 것과 달리 ‘비잔틴 연방(Byzantine commonwealth)’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드미트리 오볼렌스키(Dimitri Obolensky)는 저서 『비잔틴 연방: 동유럽, 500-1453』(The Byzantine Commonwealth: Eastern Europe, 500-1453, 1971)을 통해 보편 황제(universal emperor)와 정교회 전례(Orthodox liturgy), (그리스어 문학의 번역을 기초로 한) 슬라브 문학 전통의 형성을 매개로 수로와 육상 교역로를 통해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는 공통의 문명권이 형성되었다며, ‘비잔틴 연방(Byzantine Commonwealth)’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니콜라에 요르가(Nicolae Iorga)와 같은 인물은 비잔틴의 제도와 사고방식(mentalities)은 1453년의 콘스탄티누폴리스 함락 이후로도 (오스만 제국과 함께) 18세기까지 존속했다고 주장했다. (Obolensky 1971: 3)
코트킨 교수께서는 이 ‘비잔틴 연방’이 종족이나 종교가 아니라 공통의 과거에 기반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몽골 후계제국에 적용했다. “확실히, 몽골 제국은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아, 대부분 지역에서 1세기 내지 2세기 지속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몽골 지배는 이란과 인도(무굴조), 소아시아와 아라비아(오스만조), 루시(모스크바)와 중국(원)에서 장기지속될 왕조와 정치체의 기원이 되거나, 이를 빚어냈다.” (Kotkin 2007: 507. 그러나, 코트킨 교수께서 왜 중국에 명·청이 아니라 원을 적으셨는지는 모르겠다) “요컨데, 나는 몽골인이 교환으로서 제국의 모형(model)이 되었고, 이 모형은 포스트 몽골 공간(post-Mongol space)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분석적인 접근을, 강요가 아니라, 제시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진다.” (Kotkin 2007: 510)
코트킨 교수의 의견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수긍하는 편이다. ‘연방(Commonwealth)’이라는 용어의 사용만 제외하고. 커먼웰스(Commonwealth)라고 하면 정치 연합체나 공화국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공화국도 잘 생각이 안나고, 영연방(영국연방)과 같은 그런 정치 조직이 연상된다. 모스크바 제국(러시아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 명나라를 티무르조(무굴 제국)이나 북원, 모굴 울루스, 크림 칸국 등과 동일선상에서, 하나의 커먼웰스(Commonwealth)라고 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영연방을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미할 비란 교수 등이 사용한 ‘몽골 연방’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 표준국어 대사전에는 “코먼웰스”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일 차 세계 대전 후의 영국 연방. 영국 본국과 여러 자치령이 대등한 입장에서 결합하는 연합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몽골 연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1320년대 초 네 정치체는 마침내 중국에 있는 대칸의 우위를 인정했다. 물론 이 시점이 되면 대칸은 명목상의 권위에 불과했다.” (미할 비란 등 2021: 27) “해상 교역로와 육상 교역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흑해의 항구들은 대륙 교역로를 통해 동방에서 오는 사치품들을 제공했다. 항해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계절 동안에는 상인 행렬들이 인도 해안에서 내륙으로 향했다. 이 활발한 초기 세계 교역은 1320~133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더 나아가 이것은 1335년 일 칸국의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교역로를 이란에서 금장 칸국 쪽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흑사병이 유행한 직후인 1368년 원나라가 무너지고 그것이 또한 금장 칸국에서 일어난 추가적 격변과 겹치면서 몽골의 국제 교역 체계는 크게 위축됐다.” (미할 비란 등 2021: 30-31)
작년 7월 Along the Silk Roads in Mongol Eurasia: Generals, Merchants, and Intellectuals이란 책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되었다. 미리보기의 목차만 보아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래저래 바빠서 막상 사지는 않았었다. 놀랍게도 올해 4월 한국어판이 출간되었고, 감수자로 작업에 참여하신 이주엽 선생님께서 책을 선물로 주셔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만 올해도 또 이래저래 바빠서 이제서야 책을 제대로 읽게 되었는데, 서문만 읽어도 이야기할 거리가 이렇게 많이 생겼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은 좋은 책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걸렸구나 싶다.
참고문헌
김호동. 2015. 「몽골제국의 ‘울루스 체제’의 형성」. 『동양사학연구』131집: 333-86.
미할 비란 등. 2021. 「서론」. 미할 비란·요나단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 엮음,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장군, 상인, 지식인』. 책과함께: 11-46.
이용규. 2009. 「몽골제국사 연구동향(1995~2008)」. 『10~18세기 북방민족과 정복왕조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87-120.
이용규. 2010. 「몽골제국사 연구의 주요 논쟁: 연구의 분절성과 그로 인한 문제점을 중심으로」. 『외국학계의 정복왕조 연구 시각과 최근 동향』. 동북아역사재단: 47-82.
Allsen, Thomas. 1987. Mongol Imperialism: The Policies of the Grand Qan Möngke in China, Russia, and the Islamic Lands, 1251-1259.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Jackson, Peter. 1998. “From Ulus to Khanate: The Making of the Mongol States, c. 1220-c. 1290,” in Reuvern Amitai-Preiss and David Morgan, eds., The Mongol Empire and its Legacy. Brill: 12-38.
Kim Hodong. 2019. “Formation and Changes of Uluses in the Mongol Empire.” Journal of the Economic and Social History of the Orient, Vol. 62 (2019): 269-317.
Kotkin, Stephen. 2007. “Mongol Commonwealth? Exchange and Governance across the Post Mongol Space.” Kritika: Explorations in Russian and Eurasian History, Vol. 8, No. 3: 487-531.
Obolensky, Dimitri. 1971. The Byzantine Commonwealth: Eastern Europe, 500-1453. Praeger Publis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