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카렌 라드너, 『바빌론의 역사』

hanyl 2021. 7. 31. 14:41

카렌 라드너 (2021). 『바빌론의 역사』.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서울: 더숲. 330쪽. 18,000원.
Radner, Karen (2020). A Short History of Babylon. London, New York, Oxford, New Delhi and Sydney: Bloomsbury Publishing. xxviii+244 Pages. £14.99 (Paperback), £45.00 (Hardback).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영어권 역사 출간물 시리즈는 블룸스버리 출판사(Bloomsbury Publishing)의 약사(Short Histories → 略史)이다. 여기서 처음 읽은 것은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Dionysios Stathakopoulos) 선생님의 『비잔틴의 역사』(A Short History of the Byzantine Empire)였다. 얼마나 큰 인상을 받았냐면, 이 책의 번역 기획서를 적어서 한국의 여러 출판사들에 돌렸을 정도이다. 나와 별개로 도서출판 더숲이 이에 앞서 한국어판 출간 계약을 맺고 진행중이었지만. 어쨋든 이 덕분에 더숲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바빌론의 역사』도 한발 앞서서 출판사에게서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블룸스버리 출판사의 약사 시리즈는 권위 있고 우아하게 쓰여진 개설서로, 21세기에 걸맞는 방식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이해할 수 있는 신선한 시각의 제공을 목표로 한다. 본래는 블룸스버리 출판사의 산하 출판사이며, 중동 관련 학술서 출간에 두각을 드러내온 I.B. 타우리스(I.B. Tauris)에서 시작되었는데, 최근에는 모회사인 블룸스버리가 가져간 듯 하다. 스타타코풀로스 선생님의 경우에는 나름 젊으셔서 기획물의 목적상 소장 학자들을 저자로 뽑았나 했는데, 카렌 라드너 교수님을 보니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다. 어쨋든 『비잔틴의 역사』는 정치사뿐만 아니라 사회사와 문화사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당했고, 출간 시점까지인 2013년까지의 논의를 잘 담아낸 훌륭한 개설서였다.

『바빌론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탁월한 개설서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나는 고대 근동/중동사에 거의 무지한데(수능의 세계사 과목을 공부한게 전부다), 그럼에도 큰 어려움 없이 단번에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깊이가 얕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각 장에 각주가 많으면 50개에 달할 정도로 많이 달려 있다. 인용된 연구도 상당히 최근인 2018년의 것까지 있었다. 본문에는 원사료를 직접 인용한 부분도 꽤 자주 등장한다. 그림이나 사진 자료도 꽤 많이 첨부되어 있다. 고고학이 특히 중요하게 사용되니 만큼, 유적이나 유물의 도면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책의 내용은 꽤 독특하다고 말해도 좋겠다. 한국어판 표지에 “국내 최초, 유일의 바빌론 도시문명 역사서”라고 적혀 있기도 하지만, 책의 “서론”에도 ‘바빌론’을 제목으로 달고 나온 개설서들이 사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전반을 다루고 있단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이 책은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집중해 그 지역과 세계 역사에서 바빌론이 차지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8-29쪽) 다루는 분야도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종교, 경제, 교육 등 아주 다양하다. 읽으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사료가 이렇게나 많구나 싶어 놀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카렌 라드너 교수님은 그런 사료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해서 고대 바빌론의 다채로운 면모를 성공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해냈다.

편집에 대해서는, 꽤 만족스러웠다. 기본적으로 찾아보기도 다 있고, 도판 출처도 잘리지 않았다. 각주가 후주로 돌려지긴 했는데, 아마 이 부분은 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설서로 기획된 만큼 이해해야 한다. 본문에는 고유명사의 라틴 알파벳 표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아마 일반 독자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찾아보기에 이런 표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멋지게 잘 나온 것 같다. 읽으면서 부자연스럽다 싶은 문장도 찾지 못했는데, 이것도 편집진의 힘일 것이다.

『바빌론의 역사』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새로운 세계의 역사를 알아보는 즐거움을 느꼈다. 본래 재미있고 알찬 시리즈니 만큼, 더 많은 책이 “더숲히스토리” 시리즈를 통해 한국어로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내가 뭔가 기여할 수 있다면, 더 기쁘겠다.

* 도서출판 더숲에게서 선물 받았다. 2021년 7월 30일 수령받아서 곧장 읽고, 31일에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