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명, 『왕안석 평전』
이근명, 『왕안석 평전: 중국 중세의 대 개혁가』 (서울: 신서원, 2021), 297쪽, 20,000원.
이 책은 (부제에서 이미 강조되었듯) ‘중국 중세의 대 개혁가’라 불리는 왕안석의 삶을 시대순으로 개관하고 있다. 송이 건립되고 100여년이 지나자 대외 관계에서 촉발된 문제점이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왕안석이 집권하기 이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미 팽배한 상태로, 모두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필요하고 있었다. 청년 황제 신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권한 왕안석은 정치와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신법을 실시하며 송나라를 강대하게 변모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왕안석의 개혁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간 왕안석에 대한 평가는 약자의 친구,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로, 그에 반대한 일명 ‘구법당’은 대지주와 대상인의 횡포를 옹호한 집단이라고 매도되었다. 그러나 왕안석은 봉건 사회를 송두리째 뜯어 고치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혁명가는 결코 아니었고, 그가 시행한 신법 역시 실제로는 소농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종래 시각은 과거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계층적 이익을 틀에서만 왕안석과 그 개혁을 바라본, 결핍된 바가 많은 평가였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송대사 연구자 가운데 최고로 꼽히며, 중국과 일본의 중국 중세사 학계에도 명성이 자자한 이근명 교수님께서 왕안석에 대한 평전을 쓴 것은 종래 연구의 아쉬움을 해소시켜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근명 교수님께서는 1998년 「왕안석정권(王安石政權)의 성립(成立)과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근세 동아시아의 국가와 사회』 (지식산업사, 1998)]을 비롯, 최근의 저서인 『왕안석 자료 역주』(HUine, 2017)과 『송명신언행록』(편역, 전4권, 소명출판, 2019)까지 오랜 왕안석에 대해서 상당한 기간 동안 관련된 연구에 천착해오셨다.
그 결과 저자께서는, 역사 애호가들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한 서적인 동시에, 왕안석과 관련한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소개한다는, 양립이 어려워 보이는 목표를 훌륭하게 성공해낸 듯 하다. 『왕안석 평전』은 다루는 모든 부분에서 다각적으로 왕안석과 그가 살아간 시대·세계를 조망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면모는 적절한 사료상의 일화나 시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 아니 읽는 맛이 상당하다.
이런 책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청묘법과 관련된 서술이다. 당시 곡식이 부족한 춘궁기에 농민들은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연리가 100%가 넘는 고리대로 돈이나 곡식을 꾸어야 했다. 청묘법은 고리대금업자 대신 정부가 직접 춘궁기에 농민들에게 대부를 해주되, 이자율을 대폭 낮추어 연리 4할의 이자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신법 반대파는 신법의 그 어떤 정책보다 청묘법에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관료의 경제적 연원은 지주층인데, 청묘법이 지주층의 고리대 수취를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근명 교수께서는 이러한 단순한 설명을 거부하신다. 그에 따르면, 신법의 시행 실적을 기준으로 지방관을 평가하였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대부를 강요한다거나, 가을에 원리금을 갚지 못해 도망간 사람 대신 이웃에게 상환하게 하는 등 청묘법 실시가 소농민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적지 않았던 바가 반대파의 핵심 논리였다는 것이다. (본문 141-44쪽)
사료나 시구를 적절히 활용하는 장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왕안석의 성격과 관련해서이다. 왕안석이 경력 초기 오랜 기간에 걸쳐 지방직을 전전한데 대해서는 누적된 시대의 적폐를 체험하는 개혁가의 면모에 대해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근명 교수님께서는 거기서 설명을 그치지 않는다. 가난이라는 아주 절박한 사정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왕안석이 직접 남긴 문장이나 시구를 통해서였다. 왕안석은 첨서회남판관 임기가 끝난 후 조정으로부터 문장을 제출하고 관직(館職)에 응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는 이를 사양하며 “집안은 가난하고 식구는 많아 서울에 거주하기가 힘듭니다”고 답했다 (46쪽). 또한 1085년 오씨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뜬 뒤에 지은 시에서도 왕안석은 “지난 날 내 가난하여 밥벌이에 여념이 없었소”라고 회고하고 있다(252쪽).
이상과 같이, 『왕안석 평전』은 수많은 세부 사항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서술은 간결하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해석적 담론 등도 부족하기 않기 때문에 300쪽 가량의 분량이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게 넘어간다. 세부 사항은 원사료에 확고하게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근명 교수님의 관심은 놀랄만큼 광범위해서 정치와 군사,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많은 수의 사진과 그림 등도 주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한국의 송사학계, 더 나아가 중국사학계가 거둔 탁월한 성과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앞으로 몇번이고 다시 보고, 틈날때마다 참고하면서 모범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 이근명 교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린다. 2021년 10월 24일과 25일에 걸쳐 단박에 읽어내려갔다. 10월 30일에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