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제러미 블랙,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hanyl 2022. 7. 8. 00:26

제러미 블랙,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전쟁의 기원에서 미래의 전쟁까지 한 권으로 읽는 전쟁의 세계사』, 유나영 옮김 (서울: 서해문집, 2021), 416쪽, 19,500원.
Jeremy Black, A Short History of War (New Haven, Connecticut, US: Yale University Press, 2021), 272 pp., U$30.95.

제러미 블랙(Jeremy Black)이라는 학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편자로 참여한 『근대 초기 세계의 전쟁』(War in the early modern world, UCL Press, 1999)에서 였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와 유사하게 이 책 역시 “서구 중심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일본, 중국, 인도, 유럽, 아메리카, 오스만 제국 등을 각각의 장으로 풀어냈다. 부흥 카페에서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서평 이벤트가 진행되는 것을 알았을 때 곧장 신청을 하게 된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근대 초기 전쟁사 전문가, 다양한 세계에 고른 관심.

책을 읽으면서 그 기대는 거의 그대로 충족되었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라는 제목인 만큼 근대 초기에 대한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의 전공을 고려하면 가능한 인류가 살아간 지역 전반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고르게 분량을 할당했다고 느꼈다. 16장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이나 17장 「오세아니아에서의 전쟁」등은 이정도 분량의 전쟁사 개론서에서는 생략되어도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구권 이외 지역에 대한 서술에서 보이는 통찰이 서구권에 대한 서술에서 보이는 통찰보다 모자라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중앙유라시아사나 중동에 대한 서술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오늘날 해당 지역 전쟁사 전문가들의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블랙 교수는 서구 중심 전쟁사 서술의 한계를 책에서 직접적으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데, 구성과 내용 모두 그저 적은 내용은 아니었다. 물론 그 대가로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나 30년 전쟁 등 소재와 익숙한 이야기가 빠지긴 했지만 책의 성격을 고려하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책의 또다른 장점은 전쟁사 책이지만 여느 전쟁사와 달리 무기와 전투 기술, 개개 전투에 대한 서술로 환원하는데 대해 명백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랙 교수는 그보다 외교 · 국제정치 ·국가 행정 · 병참 지원 역량 등 전략적 측면과 전쟁의 승리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합목적성’/‘목적지향성’을 더욱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전자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상략] 군사 체제는 광범위한 전투 지역에서 많은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매우 다른 인문 · 자연 환경이 반영된 다양한 양상을 띠었다”는 110쪽 서술과 “중가르에 맞선 중국의 군사 역량에서 결정적 변수는 무기가 아니라, 먼 거리에서 대규모 전력을 준비하여 이동하고 유지하는 능략이었다. (서양 열강들이 ─특히 해상에서─ 엇비슷하게 공유했던” 군사 기술과 전술보다 조직의 발전과 범위와 역량이 절대적 ·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힘이었다는 면에서 이는 서양 세계의 상황과 유사했다”는 253쪽 서술이다. 후자의 경우는 “로마의 전쟁 방식이라는 지칭이 유용하지 않은 이유는 로마군 전략과 작전과 전술적 방식이 계속 변화했기 때문이다”와 “로마의 방어 전략은 ─정부 형태를 포함하여─ 다양했다”는 93쪽 서술이 좋은 예겠다.

물론 광범위한 시대와 지리적 범위를 다루고 있는 만큼 사소한 오류가 없지는 않다. 33쪽에는 “튀르크 기반 히타이트 왕국(the Turkish-based Hittite kingdom)”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마 “[오늘날] 튀르키예 땅에 기반한 히타이트 왕국”을 의도한 표현이겠으나, 오해의 여지가 있다. 35쪽에는 “메디아의 페르시아(Persia of the Medes)”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역시 이해 못할바는 아니나 잘못된 표현이다. 141쪽에는 “티무르는 [중략] 자신이 칭기즈칸의 후손이라고 ─이는 정통성의 중요한 근거였다─ 주장했지만 [하략] (Timur … claimed descent from him [Chinggis Khan], a significant source of legitimacy)”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티무르는 그러한 주장을 한 바 없다. 232쪽에는 “오다 노부나가(14장 참조)는 [중략] 1582년 라이벌 무장인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하략] (Oda Nobunaga (See chapter 14) … only to be forced by Akechi Mitsuhide, a rival general … in 1582)”라는 내용이 있는데, 일본사는 잘 모르지만 아케치 미쓰히데를 오다 노부나가의 경쟁자라고 서술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물론 이들은 책의 전반적인 가치에 크게 타격을 가하는 중요한 오류가 아니다.

몇몇 부분을 원서와 비교하면서 읽어본 결과, 한국어판은 정말 잘 뽑혀나온 것 같다. 우선 옮긴이 유나영 님의 노력이 상당했던 것 같다. 번역서를 읽을때면 가끔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을 때가 있다. “옮긴이의 글”을 통해 책의 요지를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질이 좋지 않은 번역서의 경우에는 이 “옮긴이의 글”에서 책의 요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어서 당혹스러운 경우도 있는데,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같은 경우는 유나영 님의 서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번역 작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11쪽에 저자가 인용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처리한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유나영 님은 천병희 교수의 번역본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번역했는데, 아마 이로 보아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꼼꼼히 탐독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번역 오류도 거의 찾지 못했다. 다만 63쪽에서 traditio imperii를 “제국의 전통”이라고 옮겼는데, “제권(皇權)의 전이(轉移)”가 더 적합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책이 잘 나온데는 물론 서해문집 출판사의 편집진들의 공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마무리하자면,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는 분량과 내용의 질, 번역 수준 등에서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전쟁사에 대한 개설서가 필요하다면 아마 제일 먼저 추천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좋은 책을 서평 이벤트를 통해 읽을 기회를 준 서해문집 출판사와 부흥 카페 관련 운영진들께 감사드린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