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해의 이름은 단나라[dan gur, 丹國]?

hanyl 2022. 7. 21. 22:19

926년 정월 거란(契丹)은 20여년에 걸친 각축전 끝에 발해(渤海)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한다. 거란군은 거침없이 진군하여 부여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척은(惕隱) 야율안단(耶律安端; 952년 사망)이 이끄는 선봉 기병은 발해의 노상(老相)이 통솔한 3만 원군을 물리치고 수도 홀한성에 도달했다. 이에 대인선(大諲譔)을 비롯한 발해 통치 집단은 투지를 상실하고, 거란군이 성을 포위한지 4일째 되던 날 항복을 결정했다.

이로써 발해 국가는 14대 22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한달 뒤 야율아보기는 “그 국명을 동단(東丹)이라 하고 그 [홀한]성을 천복(天福)이라 명명하여 야율배(耶律倍)를 인황왕(人皇王)으로 삼아 다스리게 하는 (改其國曰東丹, 名其城曰天福, 以倍為人皇王主之)” 조치를 단행한다.(脫脫 1988: 1210) ‘동단(東丹)’의 ‘단(丹)’은 ‘거란(契丹, 계단)’의 ‘단(丹)’과 같은 것이다. 즉 그 의미를 해석하면 “동방의 거란”이라는 의미가 된다. 때문에 일부 학자는 이를 ‘동란(東丹)’이라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데, 나영남 2017: 57; 이효형 2015: 300)

그림 대거란국 고랑릉군왕 묘지명(大契丹國故廣陵郡王墓誌銘)

그러니 최근 진전된 거란어 자료에 기반한 연구는 동단(東丹)에 대해 종래 연구와는 다른 상을 비추고 있다. 특히 아이신 기오로 울히춘[Aisin Gioro Ulhicun, 일본명 요시모토 지에코(吉本智慧子)]는 「대거란국 고랑릉군왕 묘지명(大契丹國故廣陵郡王墓誌銘)」, 통칭 「야율종교 묘지명(耶律宗教墓誌銘)」의 해석에 근거하여 전혀 상이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吉本智慧子 2008: 596-81)

「야율종교 묘지명」은 105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거란 소자로 작성된 단락이 남아있는 현존 최고의 자료이다 (이성규 2020: 159). 묘지명은 크게 한자로 작성된 한문 명문과 거란 소자로 작성된 거란어 명문으로 나눌 수 있다. 동단(東丹)과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은 이 가운데 야율종교(耶律宗教)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이다. 먼저 한문 명문에서는 “어머니는 소씨(蕭氏)로, 옛 발해 성왕[故渤海聖王]의 손녀(孫女)로, 늦둥이 딸 아가씨[遲女娘子, 지녀낭자]라 불리었다 (母曰蕭氏, 故渤海聖王孫女, 遲女娘子也)”고 되어 있다 (吉本智慧子 2008: 593).

여기서는 ‘옛 발해 성왕(故渤海聖王)’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누구일까? 우선 『신당서(新唐書)』 「북적(北狄)」의 발해 부분에는 “[발해] 풍속에서 왕은 ‘가독부(可毒夫)’라고도 불리고, ‘성왕(聖王)’라고도 불리고, ‘기하(基下)’라고도 불린다. (俗謂王曰‘可毒夫’, 曰‘聖王’, 曰‘基下’)”는 서술이 있다 (歐陽脩 1975: 6182). 따라서 한문 묘지명의 “옛 발해 성왕”은 옛 발해 지역의 군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이상의 내용을 알아볼 수는 없다.

그 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바는 거란어 묘지명의 야율종교의 어머니를 설명한 부분에 등장한다. 앞서 인용한 한문 묘지명의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은 거란어 묘지명에서 “어머니 미르기(mirgi) [씨]는 지녀낭자[ʧinio au'ui]로 단나라[dan gur, 丹國]의 조칸(ju qan) 오르고(urgu)의 후손이다 (məgə mirgi ʧinio au'ui dan gur-n ju qan urgu-n uran pon)”라고 적혀있다 (吉本智慧子 2008: 593-92). 이를 통해 한문 묘지명의 “옛 발해(故渤海)”는 “단국(dan gur, 丹國)”으로, “성왕(聖王)”은 조칸(ju qan)으로 대입할 수 있으며, “옛 발해 성왕”의 이름은 오르고(Urgu)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오르고는 대체 누구인가? 울히춘은 이 오르고가 대인선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吉本智慧子 2008: 592). 우선 거란어 인명 오르고는 한문 사료에서는 오로고(烏魯古 혹은 烏魯姑)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로고는 대인선이 야율아보기에게 하사받은 이름이다. 『요사(遼史)』에 따르면, 926년 “가을 7월 병진(丙辰), 철주 자사(鐵州刺史) 위균(衛鈞)이 반란했다. 을축(乙丑), [야율]요골[堯骨: 요 태종 야율덕광]이 철주를 공격해 부수었다. 경오(庚午), 동단국(東丹國) 좌대상 질랄이 죽었다. 신미(辛未), 대인선을 황도의 서쪽으로 보내, 성을 쌓고 살게 했다. [대]인선에게 이름을 사여해 오로고(烏魯古)라 부르고, [대인선의] 처는 아리지(阿裏只)라 불렀다. (秋七月丙辰, 鐵州刺史衛鈞反. 乙丑, 堯骨攻撥鐵州. 庚午, 東丹國左大相迭剌卒. 辛未, 衛送大諲譔於皇都西, 築城以居之. 賜諲譔名曰烏魯古, 妻曰阿裏只)” (脫脫 1988: 23)

이렇게 해석한다면 한가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야율종교 묘지명」 거란어 묘지명의 “단국(Dan gur, 丹國)”은 무엇일까? 만약 동단국이 ‘동쪽의 거란국’을 뜻한다고 한다면, 그와 유사한 표현이 거란어 자료에서 사용된 용례와 거란어 자료에서 거란국을 뜻하는 키타이 고르(Kitai gur)의 약칭으로써 ‘단 고르’라는 표현이 사용된 증거를 찾아야 한다.

우선 ‘동쪽의 거란국’에 상응하는 표현은 거란어 자료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일단 거란 소자 자료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거란 대자 자료의 경우, 「야율우지 묘지명(耶律羽之墓誌)」에서 한문으로 ‘동단국’이라 표현된 부분이 거란어로는 ‘단국(Dan gur, 丹國)’이라 적힌 사례가 2개 존재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야율우지는 야율아보기가 동단을 수립한 뒤 우차상으로 임명되었다가, 야율덕광 즉위 이후 야율배를 대신해 동단의 최고 권력자가 된 인물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동단’ 내지 ‘동단국’이라는 표현은 한문 자료에서만 등장하고, 거란어 자료에서는 ‘단국’이라고 불리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吉本智慧子 2008: 592-91).

다음으로 ‘키타이 고르’의 약칭이 ‘단 고르’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울히춘은 이 경우에도 해당하는 사례를 찾지 못했다. 거란어 자료들에서 ‘거란국’은 어떤 수식어가 사용되든 예외 없이 모두 ‘키타이 고르’라 표현되었다  (吉本智慧子 2008: 590).  또한 울히춘은 언어학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키타이(Kitai)’ 또는 ‘크타이(Qïtay)’는 거란어에서 거란을 의미하는 ‘키탄(Kitan)’의 튀르크어식 표현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거란어 자료에서 ‘키탄 고르(Kitan gur)’라는 표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거란어에서 ‘거란’의 원형이 ‘키타이’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만약 ‘키탄 고르’가 거란어에서 거란국을 가리켰다고 가정하여도, 거란어 음운론에서 어근 키탄을 둘로 분리하여 탄 ~ 단(tan ~ dan)으로 표기하는 것과 비슷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야율종교 묘지명」의 ‘단 고르’를 ‘동쪽의 거란국’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단 고르’와 ‘동단’은 어디서 나온 표현인가? 이를 밝혀내기 위해 울히춘은 『고려사(高麗史)』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나는 ‘단○(丹某)’와 ‘단국(丹國)’ 표현에 주목했다. 우선 『고려사』에서는 1010년(현종 원년)에 이르는 시기까지는 거란을 항상 ‘거란(契丹)’이라고 칭하고, 거란황제는 ‘거란주(契丹主)’로 불렀다. 그러나 1010년 요 성종이 거란을 침공한 이후에는 ‘단병(丹兵)’과 ‘단영(丹営)’, ‘단주(丹主)’ 등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로도 ‘단○(丹某)’의 표현은 대체로 거란과 고려의 사이가 좋지 못할 때 등장한다. (吉本智慧子 2008: 588-87)

다음으로 『삼국유사』에는 ‘단국’이라는 표현이 2차례 등장한다. 첫번째는 권1에서 『해동안홍기(海東安弘記)』를 인용하여 4이(四夷) 가운데 9한(九韓)이 있고, 이 9한 주 7번째로 언급된 경우이다. 그 다음은 권4에서 황룡사9층탑과 관련하여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를 인용, 제7층이 단국(丹國)이었다는 사례이다. 일반적으로 두번째 경우의 ‘단국’은 ‘거란’으로 여겨지지만 여기에 분명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울히춘은 『삼국유사』에 ‘단국’이 나타나는 부분이 마한 및 신라 당대의 기록이 그대로 채록된 것이 아니라, 10세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 ‘단국’은 ‘동단’을 의미하게 된다. (吉本智慧子 2008: 586-84)

『고려사』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丹某)’와 ‘단국(丹國)’에 대한 울히춘의 분석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야율종교 묘지명」에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이 등장한다는 지적, 그리고 ‘단(丹)’이 신라 내지는 고려에서 만주의 주민들을 부르는 호칭이었을 수 있다는 지적은 경청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가설을 수용한다면,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직후 발해 지방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요사』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참고문헌

脫脫. 1988. 『遼史』. 中華書局.
歐陽脩. 1975. 『新唐書』 中華書局.
나영남. 2017. 『요 · 금 시대 이민족 지배와 발해인』. 신서원.
이효형. 2015. 「발해 유민사 관련 고고학 자료의 검토」, 『高句麗渤海硏究 』 第52輯: 297-300.
이성규. 2020. 「거란의 정체성 유지와 언어 · 문자 정책」. 김인희 엮음, 『움직이는 국가, 거란: 거란의 통치전략 연구』. 동북아역사재단:122-65.
吉本智慧子. 2008. 「契丹文 dan gur 本義考: あわせて「東丹国」の国号を論ず」, 『立命館文學』 第609号: 596-81.

그림: 저장대학(浙江大學) 중국 역대 묘지 자료고(中國歷代墓誌資料庫) 요 한자 야율종교 묘지명(遼漢字耶律宗教墓誌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