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국가 포메스티예체제 성립에 미친 몽골제국와 오스만국가의 영향 Ⅳ. 맺음말
이상 본문을 통해 포메스티예의 등장과 확립에 있어 몽골제국와 오스만국가가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모스크바국가는 확장하는 과정에서 증대된 군사적 요구에 맞설 수 있는 군사 계급을 조직해야 했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의 군주들은 봉직에 따라 토지를 보유한다는 몽골제국의 이크타에 주목했다. 포메스티예를 수여받은 하위귀족층에서 상당한 비율이 몽골계 귀족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반 4세 재위 이전까지 모스크바국가에는 포메스티예와 관련하여 포괄적인 조직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1550년대 다방면에서 개혁을 추진하던 이반 4세가 포메스티예체제의 확립에 있어서 주목한 것은 오스만국가의 티마르체제였다. 이반 4세는 오스만국가의 티마르 분배와 통제 방식을 참고하여 포메스티예를 체계화했다.
마침내 포메스티예는 다양한 언어와 종교, 족류가 존재하는 모스크바국가에서 진정한 ‘제국’의 엘리트가 형성될 물질적인 기반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제 그 어떤 귀족도 모스크바 군주를 위해 복무하지 않고서는 토지를 보유할 수 없었다. 마이클 호다르코브스키는 일찍이 “모스크바는 제3로마이자 새로운 예루살렘이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사라이였다”라고 평가했다.³⁷ 모스크바국가가 포메스티예를 창안하고 확립하여 절대주의 국가로 나아간 과정은 이를 증명하는 또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³⁷ Michael Khodarkovsky, Russia’s Steppe Frontier: The Making of a Colonial Empire, 1500–1800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02), p.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