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홀랜드, 『이슬람 제국의 탄생』
홀랜드, 톰. 2015. 『이슬람 제국의 탄생: 하나된 신과 하나의 제국을 향한 투쟁의 역사』. 이순호 옮김. 서울: 도서출판 책과함께. 640쪽. 33,000원.
Holland, Tom. 2012. In the Shadow of the Sword: The Birth of Islam and the Rise of the Global Arab Empire. Boston, MA: Little, Brown.
일찍이 초기 근대Early Modern사 연구자 산자이 수브라마냠Sanjay Subrahmanyam 선생(이하 경칭 생략)은 16세기 “타구스강부터 갠지스강까지”, 즉 포르투갈부터 무굴 제국까지 유라시아 서반부를 “천년왕국 운동”이라는 주제를 통해 하나의 “연결된 역사들connected histories”로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2003) 톰 홀랜드의 『이슬람 제국의 탄생: 하나된 신과 하나의 제국을 향한 투쟁의 역사』도 이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책이다. 홀랜드는 후기 고대Late Antiquity 유라시아 서반부의 종교 ∙ 정치 ∙ 사회적 변화의 가운데에서 이슬람의 등장과 아랍 제국의 확대를 분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슬람 초기사를 후기 고대 유라시아 서반부의 가운데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톰 홀랜드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다. 황의현 선생이 소개하였듯, 존 완스브로John Wansbrough ∙ 패트리샤 크론Patricia Crone ∙ 마이클 쿡Michael Cook ∙ 예후다 네보Yehuda Nevo ∙ 유디스 코렌Judith Koren ∙ 스티븐 슈메이커Stephen Shoemaker 등은 이미 이슬람이 나타나고 발전한 과정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 바 있다.(2021: 81-82) 홀랜드는 이들 ‘수정주의 학파’의 연구를 세밀하게 검토하여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게끔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했다.
홀랜드가 제시하는 ‘하나’의 이야기는 3부 7개 장으로 구성된다. 1부(도입)의 1장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슬람의 ‘기원’과 형성 과정에 대한 무슬림들의 ‘전승’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슬람 역사를 후기 고대 유라시아 서반부의 속에서 파악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2부 자힐리야는 4개 장으로 구성된다. 2장 “이란샤르” ∙ 3장 “새로운 로마” ∙ 4장 “아브라함의 자손들”에서는 각각 페르시아 제국 ∙ 로마-비잔티움 제국 ∙ 아라비아반도에 닥친 후기 고대의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에 대해 다루었다. 국가 ∙ 세계적 위기의 앞에서 종교와 국가, 양측 모두 체계화되고 또 일체화되었는데, 이는 책의 뒷 부분에서 논의될 아랍 제국 정치신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5장 “임박한 종말”은 로마-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즉 유라시아 서반부의 양대 제국이 서로 끝없는 전쟁을 벌이며 약화되어 무슬림 공동체가 짧은 시간 내에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보여준다.
3부 헤지라는 6장 “답보다 많은 질문”과 7장 “이슬람 굳히기”로 이루어져 있다. 6장에서 홀랜드는 이슬람 초기사에 대한 전통적인 서사를 해체, 이슬람이 8-9세기 유대인 ∙ 그리스도교도와 접촉하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고 『코란』 역시 7세기 이후에 완성되었다는 가설, 메카가 초기 무슬림들에게 유일한 성지가 아니었다는 가설, 그리고 7세기 후반까지도 ‘이슬람’이라는 ‘독자적인 종교’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가설 등을 소개했다. 7장에서는 더 나아가 우마이야 왕조의 압둘말리크 이븐 마르완ʿAbd al-Malik b. Marwān(재위 685–705년)이 칼리프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뒤에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메카를 성지로 여기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는 도발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물론 이 ‘새로운’ 종교의 특징 역시 후기 고대 유라시아 서반부라는 배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울라마ʿUlamāʾ가 『코란』과 순나Sunna의 해석자로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게 된 과정은 랍비Rabbi가 구전 토라Tōrā에 대한 해석 권한을 근거로 종교적 권위를 행사하는 유대교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이상 톰 홀랜드가 『이슬람 제국의 탄생』에서 제시한 ‘하나’의 이야기를 최대한 간략히 정리해보았는데, 당연히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를 하다보니 일어난 일이겠지만 홀랜드의 서술은 수정주의 외의 다양한 접근법을 소개하는 대신 수정주의적 관점에 지나치게 편중된 면이 있다. 초기 무슬림에게 메카 외에도 여러 성지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왜 하필이면 메카가 최종적인 성지로 낙점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등 어물쩡 넘어가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글렌 보우르속Glen Bowersock의 지적처럼 원사료가 아니라 번역된 자료에만 의존한데다가 그나마도 참고한 2차 자료를 정치하게 검토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 (2012).
16세기 유라시아라는 배경 속에서 오스만 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톰 홀랜드는 이 책을 통해 이슬람 초기 역사를 ‘서부 유라시아’라는 배경 속에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후기 고대 유라시아 서반부의 위기를 촉발한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는 유라시아 서부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을 혼란에 빠뜨린 게르만계 족속의 대이동, 페르시아 제국을 국가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에프탈 제국, 이 두 ‘배경’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흉노 = 훈 집단의 이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유라시아의 동부에서는 또다른 흉노 = 훈계 집단이 중화 세계를 미증유의 위기로 빠뜨리고 있었다. 요컨대 후기 고대 유라시아 서부에서 일어난 혁명은 어쩌면 유라시아 전체에서 휘몰아친 광풍의 속에서 검토할 필요성도 있다.
또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아바스 제국을 은연 중에 사산 제국의 계승국가로만 묘사하는 톰 홀랜드의 일부 서술(예를 들어 547-49)이다. 그러나 이슬람이 아브라함 계통의 다른 종교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듯 초기 아랍 제국의 행정 체제는 로마 제국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어떤 학자는 이슬람 ∙ 아랍 제국의 확장으로 로마-비잔티움식 관행이 지중해를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이다.(Sijpesteijn 2017: 654-55) 아랍 제국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만큼이나 로마 제국을 계승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리프와 바실리오스를 샤한샤와 카이사르의 관계로 비유한 홀랜드의 서술은 내게는 이슬람의 기원에 대해 무슬림의 전승을 오롯이 믿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보자. 나는 기본적으로 번역자 이순호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단순히 영어 단어들을 한국어 단어로 치환하는걸 넘어서 한국어스럽게 번역한 문장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또한 책과함께 출판사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요 몇년 재미있게 읽은 책과함께 출판사의 책이 『실크로드 세계사』 ∙ 『몽골제국의 후예들』 ∙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유라시아사쪽으로 좋은 책을 많이 내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비롯해서 중학생 시절 정말 즐겁게 읽은 톰 홀랜드의 『페르시아 전쟁』도 책과함께에서 나온 것을 이번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냥 좋은 역사책을 많이 내는 곳이 책과함께였다. 다만 영어 원서의 부제에서는 이슬람의 탄생과 아랍 제국의 대두를 따로 다루고 있는데(The Birth of Islam and the Rise of Global Arab Empire) 반해 한국어판에서는 ‘이슬람 제국’ 하나로 묶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 아마 2014년 IS의 준동이 극에 달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정한게 아닌가 싶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이런저런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톰 홀랜드의 『이슬람 제국의 탄생』이 가지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황의현이 지적하였듯 홀랜드는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 ∙ 시대적 상황과 끝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역동적인 존재이며, 그렇게 볼 수 있음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의현 2021: 85) 오히려 그보다는 이 책의 원서가 2012년, 한국어판이 2015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여전히 대중들에게 톰 홀랜드의 책 이상으로는 소개되고 있지 못한 현실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참고문헌
황의현. 2021. 「이슬람의 기원과 형성 과정에 관한 의문과 새로운 접근법: 톰 홀랜드, 『이슬람 제국의 탄생』 (책과함께, 2015) 서평」. 『지중해지역연구』 23.2: 81-86.
Bowersock, Glen. 2012. “In the Shadow of the Sword by Tom Holland – review”. The Guardian.
Sijpesteijn, Petra M. 2017. “The rise and fall of empires in the Islamic Mediterranean (600–1600 CE): Political change, the economy and material culture”, in Tamar Hodos, ed., The Routledge Handbook of Archaeology and Globalization: 652-68. London; New York, NY: Routledge.
Subrahmanyam, Sanjay. 2003. “Turning the stones over: Sixteenth-century millenarianism from the Tagus to the Ganges”. The Indian Economic and Social History Review 40.2: 12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