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무르 르네상스
‘르네상스’(Renaissance)란 문화적으로 과거를 창조적으로 재발견하고 적극 활용하는 문화 부흥 운동을 의미한다. 15세기와 16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가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유일한 것은 아닌데, 일부 학자는 중동, 특히 페르시아 세계에서도 르네상스가 존재했음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페르시아 세계에서는 르네상스가 두 차례 존재했는데, 바로 부야조 르네상스와 티무르조 르네상스가 그것이다. 나는 이 글을 전에 미르 알리 시르 나바이에 대해 적으며 언급한 티무르조 르네상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적었지만, 배경지식을 위해 부야조의 르네상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뒤에 티무르조 르네상스를 다루겠다. (Darling, 2006: 55-56)
부야조[Būyids. 페르시아어로는 알레 부야(Āl-e Būya: 부야 가문). 한국에서는 부이조라고 읽히는 경우가 많지만 가문의 시조인 길란 지역의 어부 부야 이븐 판나(/파나흐) 호스로(Būya b. Fannā (/Panāh) Khusraw)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에 잘못된 독법이다. 부야는 아랍어로 부와이흐(Buwayh)로 읽히기 때문에 부와이흐조(Buwayhids)라고도 한다]는 다일람계 왕조로, 10세기 중반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이란의 남부와 서부 그리고 이라크를 지배했다. 다일람은 시아파 이슬람을 주로 따르던 집단으로, 당시 칼리프를 포함한 중동의 다양한 군주들에게서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부야의 세 아들 역시 일종의 콘도티에리(Condottieri)로 활동했었다. (Cahen, 1986: 1350; Nagel, 1990)
이슬람 발흥 이후 성립한 아랍제국은 로마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산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던 부야조가 이슬람 세계 동부를 장악한 이후 이 경향은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 부야조는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유산을 처음에는 아랍어로, 이를 다시 중세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 그 결과, 페르시아 세계의 문화는 더욱 창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1세기 이븐 시나(Ibn Sīnā, 아비센나), 알비루니(al-Bīrūnī), 피르다우시, 니잠 알물크 등의 페르시아어 문학과 철학은 부야조 르네상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부야조의 유산은 페르시아 세계만에 국한되지도 않았다. 12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 활동한 이븐 루쉬드(Ibn Rushd, 아베로에스)도 부야조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부야조 르네상스는 유럽의 ‘12세기 르네상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Darling, 2006: 56-58)
부야조 르네상스보다 더 유명한 것은 티무르조 르네상스이다. 티무르조 르네상스는 15세기 후반 티무르조를 중심으로 융성했던 문화를 가리키는 현상이다. 그 중심지는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가 지배하던 헤라트였다.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의 마이케나스(Mæcénas), 미르 알리 시르 나바이는 당대 가장 유명한 문화계의 후견자이자 시인, 문학 비평가였고, 후대에는 차가타이 튀르크어 시문학의 고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나바이의 후원을 받은 낙쉬반드 종단의 수피 셰이흐 압달라흐만 자미(ʿAbd al-Raḥmān Jāmī)는 사제, 아랍어 문법 학자, 음악가, 당대 최고의 페르시아어 시인으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바이의 후원을 받은 세밀화가, 카말 알딘 비흐자드(Kamāl al-Dīn Bihzād)는 당대 최고의 세밀화가로 칭송받고 있다. 이 현상은 마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빈과 비교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빈의 지위는 점차 하락하고 있었지만, 예술과 문학은 그 어떤 시대보다 발전하고 있었듯, 15세기 후반의 헤라트도 그러했다. (Dale, 2009: 43-44)
몽골제국의 지배 아래서 다양한 문화가 페르시아 세계에 유입된 결과는 포스트 몽골 시대에 꽃을 피웠다. 여러 계승왕조 가운데 하나였던 잘라이르조(Jalāyirid, 1340년 ~ 1410년) 군주들은 예술을 사랑했다. 옛 일칸국의 수도에서는 여전히 피르다우시의 《왕서》나 라시드 알딘의 《집사》가 필사되고, 아름다운 세밀화가 제작되었다. 서사시 분야의 유행은 지속되지 못했지만, 시인 하피즈(Ḥāfiẓ)의 활동에서 보이듯 페르시아어 시문학 자체가 침체된 것은 아니었다. (Darling, 2006: 58-59)
몽골제국으로 인한 문화적 결합은 티무르제국기에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었다. 부야조 르네상스가 고전 문화를 되살리고 고전적인 문체를 강조했다면, 티무르조 르네상스는 페르시아어 문학에서는 구어체를 더욱 선호했고, 지배층 내에서 주로 사용되던 튀르크어도 행정어이자 문어로 더욱 강조되었다. 시각 예술 분야에서도 눈부신 진화가 있었다. 티무르조 건축 양식은 과거 페르시아의 것에서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화려해지고 거대하게 지어졌다. 세밀화는 페르시아 세밀화 양식에 중앙유라시아의 호쾌한 기풍과 중국식 화풍이 더해진 양식이 유행했다. 티무르조의 화가들은 당시 유럽의 르네상스 화가들과 달리 인체를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그림에 반영하는데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Darling, 2006: 59-60; 몽골의 유산으로 인해 명나라와 티무르조의 예술에서 보이는 공통점에 대해서는, Shea, 2018 참고)
티무르 가문의 제국은 싀바니[Shïbāni. 원래 이름은 무함마드 샤바흐트(Muḥammad Shāh-Bakht)지만, 필명인 싀바니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하다. 샤이바니(Shaybāni)라고도 읽히지만, 아랍 부족 중 샤이반(Shaybān)과 혼동하여 잘못 읽은 것이다. Bregel, 2003: 50; McChesney, 1997: 426] 칸에 의해 중앙아시아에서 쫓겨났지만, 티무르조 르네상스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싀바니에게 저항한 티무르조 군주, 바부르는 티무르 가문의 구성원답게 튀르크·몽골의 초원세계와 페르시아·이슬람의 정주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바부르 자신은 미르 알리 시르 나바이의 영향으로 차가타이어 문학의 고전, (바부르의) 《회상록》을 적었다. 미르 알리 시르 나바이의 차가타이어 작품은 페르시아어의 직역투가 넘쳐났던 반면, 바부르의 작품은 당대 차가타이어 구어체에 훨씬 근접했다고 평가된다. 악바르의 스승이었던 바이람 칸(Bairam Khān)과 그의 아들들, 압달라힘(ʿAbd al-Raḥīm)과 칸카난(Khān-khānān) 역시 차가타이어로 작품을 남겼다. 비록 차가타이어는 이로부터 한 세대 가량이 지난 뒤 페르시아어로 대체되었지만, 티무르식 세밀화 전통은 더욱 오래 살아남았다. 악바르와 자한기르, 샤자한은 비흐자드의 작품을 수집하고, 비흐자드 화풍을 장려했다. 17세기를 지나며 무굴제국의 티무르식 화풍은 인도와 유럽의 화풍을 영향을 받으며 무굴 화풍으로 진화했다. (Dale, 2009: 45-51)
티무르조 르네상스의 영향은 오스만제국에도 전해졌다. 초창기 오스만제국의 천문학은 전적으로 울루그베그의 연구결과에 의존했다. 메흐메드 2세는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 치하 헤라트의 번영에 주목하고, 그 양식을 모방하려 애썼다. 메흐메드 2세는 헤라트의 압달라흐만 자미에게 막대한 양의 선물을 보내고, 미르 알리 시르 나바이의 작품을 수집했다. 오스만제국에서 고전적인 튀르크어 시문학의 영원한 고전은 나바이의 작품이었다. 오스만 시인들은 나바이의 차가타이어 작품을 직접 읽으며 모방하거나 번역했다. 이같은 경향은 싀바니 칸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티무르제국이 붕괴한 뒤 오스만제국으로 티무르조의 예술가들이 망명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Dale, 2009: 54-56)
이란의 사파비제국도 티무르조 르네상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비록 차가타이어는 문어로서 페르시아에 대적할 수 없었지만, 티무르조의 건축양식과 세밀화 화풍은 사파비조에서 그대로 계승되었다. 비흐자드는 싀바니 칸의 중앙아시아 정복 이후 사파비조에 고용되어 이스마일 1세와 타흐마스프의 후원을 받으며 티무르조 화풍을 사파비 궁정에 이식했다. (Dale, 2009: 56)
참고문헌
Bregel, Yuri (2003). An Historical Atlas of Central Asia. Koninklijke Brill.
Cahen, Claude (1986). “Buwayhids or Būyids.”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Vol. 02. Koninklijke Brill: 1350-57.
Dale, Stephen Frederic (1998). “The Legacy of the Timurids.” Journal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l. 08, No. 1: 43-58.
Darling, Linda T. (2006). “The Renaissance and the Middle East” in Guido Ruggiero, ed., A Companion to the Worlds of the Renaissance. Blackwell Publishing: 55-69.
McChesney, Robert Duncan (1997). “S̲h̲ībānī K̲h̲ān.”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vol. 09. Koninklijke Brill: 426-28.
Nagel, Tilman (1990). “Buyid.” Encyclopædia Iranica, online edition: http://www.iranicaonline.org/articles/buy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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