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훈 제국에서 헝가리까지

hanyl 2020. 3. 29. 15:32

〈불가리아 왕후표〉: 흉노에서 불가리아까지

10년쯤 전에 훈 제국과 헝가리가 관련이 있다는 썰이 떠돌았다. 근거 가운데 하나가 HUNgary의 HUN이 HUN 제국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 초판에도 이런 썰이 있다는 정도의 언급이 있었으니,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썰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HUNgary의 HUN이 HUN 제국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헝가리라는 말이 튀르크어 온오구르(On-Oğur)에서 나왔다고 본다. 온(On)은 튀르크어에서 ‘10’을 뜻한다. 오구르(Oğur) 역시 튀르크어인데, 오구즈(Oğuz)의 이형으로 ‘부락들’이라 새길 수 있다. 즉, 온오구르란 말은 10개 부락의 연맹체로 해석할 수 있다. (Golden, 2012; Golden, 1990: 243)

그런데, 헝가리인, 그러니까, 머저르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랄어족에 속하지 않던가? 왜 튀르크어가 나오는가? 합당한 질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근대 유목 국가의 정체성에서 언어의 중요성은 현대의 민족주의에서 가지는 중요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앙유라시아 유목 세계에서 통치 가문이 꼭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같은 기원일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사회·경제 체제, 문화 등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뒤섞여 왕가가 다양한 종족과 부족 연맹체를 지배할 정당성이 마련되었다. (Cossuto, 2018: 29) 대표적인 예가 포스트 몽골 시대 이슬람 세계의 튀르크인들이 가졌던 정체성이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믿었고 튀르크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몽골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이주엽, 2019 참고)

그림. 성 이슈트반 왕관에 새겨진 게저 1세의 모습. “신실한 튀르크 왕 게저”란 문구가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다시 헝가리를 생각해보자. 머저르인이 우랄어족에 속한 머저르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머저르인이라 부르는 존재들이 머저르인이라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졌으리라는 가정을 사실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실제로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비잔틴 사람들이 헝가리를 부르는 이름 가운데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말은 ‘튀르크’였다. (Pohl, 2015: 696-98) 예를 들어, 10세기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예니토스(Κωνσταντῖνος Ζ΄ Πορφυρογέννητος, Kōnstantinos VII Porphyrogennētos)는 《제국 행정서》(De Administrando Imperio)에서 머저르 부락의 지도자 아르파드(Árpád)를 ‘튀르키아의 대군주’(μέγας Τουρχίας ἄρχων, megas Tourkhias arkhon)라 지칭했다 (1967: 178-79).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니콜라오스 1세 미스티코스(Νικόλαος Α΄ Μυστικός, Nikolaos I Mystikos)는 10세기 초에 작성한 편지에서 헝가리인을 ‘서 튀르크인’(δύσεως Τουρχων, dyseos Tourkhon)이라 불렀다 (1973: 158-59). 11세기 미하일 7세 두카스가 헝가리에 보낸 왕관[일명 성 이슈트반 왕관(Szent Korona)]에도 “신실한 튀르크 왕 게저 [1세]”(ΓΕΩΒΙΤΖΑϹ ΠΙΣΤΟϹ ΚΡΑΛΗϹ ΤΟΥΡΚΙΑϹ, Geōbitzas pistós králēs Tourkías)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Moravcsik, 1970: 66-67).

왜 비잔틴 사람들은 헝가리 부족연맹체(/들)을 튀르크라 불렀을까? 학자들은 이를 당시 머저르 부족연맹체가 하자르 제국과 밀접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본래 우그르 종족에 속해 시베리아 서부에 살던 삼림민 가운데 하나인 원머저르 집단은 차츰 이동하다가 5세기 경 캅카스-흑해 북부의 초원에 이르렀다. 이들은 여기서 다양한 튀르크 집단과 접촉하며 급격히 유목민화 되었다. 그리고 10세기 무렵이 되면 완연히 하자르 제국의 서쪽 영역을 담당하여, 마치 돌궐 제국의 서쪽 영역을 서돌궐이라 부르듯 하자르 제국을 ‘동 투르키아’(πούς Τουρχωνς, pous Tourkhons)로, 머저르 연맹체의 영역을 ‘서 투르키아’로 부르게 된 것이다. (Golden, 1990: 246-48; Theophanes, 1997: 446;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연구에 대해서는 Balogh, 2005 참고)

훈 제국과 헝가리 사이의 연결고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원머저르 족속은 5세기 중반부터 7세기 말까지 쿠반 강과 돈 강 인근 지역에서 지냈다. 그리고 7세기 경 서진한 하자르 집단에 포섭되어 아틸라의 후예(혹은 그를 자칭하던) 쿠브라트의 불가르 부락을 격파했다. 하자르 제국은 머저르 부락에게 본래 불가르 부락이 유목하던 드네스트르 강과 다뉴브 강 사이의 초원 지대를 맡겼다. 불가르 부락의 일부는 다뉴브 강 너머의 로마 제국령으로 진입했지만, 고향에 남은 이들은 머저르 집단에 흡수되었다. 콘스탄티노스 포르피로예니토스가 제시한 온오구르 연맹의 부락 구성도 이를 확인해준다. 그는 튀르크인(즉, 헝가리)의 부족은 예뇌(Jenő), 케르(Kér), 케시(Keszi), 퀴르트저르머트(Kürt-Gyarmat), 메제르(Megyer = 머저르), 네크(Nyék), 터리안(Tarján)와 하자르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카바르(Kavar)로 구성된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퀴르트저르머트, 터리안, 예뇌, 케르, 케시, 이상 5개 부족명은 (최소한 어원에 있어서는) 튀르크식이다. (Golden, 1990: 242-45; Róna-Tas, 2005; DAI, 1967: ch. 40; 당시 온오구르 연맹체의 엘리트 계층에서 튀르크어 화자가 지배적이었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Rady, 2003: 12)

아마 이 과정에서 아틸라와 훈 제국에 대한 계승 의식이 온오구르 연맹체에 도입되었을 것이다. 중세 헝가리의 사료나 전설들은 헝가리의 통치계층이 분명히 이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활용해 통치 정당성을 마련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10세기 독일의 기록들 역시 온오구르와 훈 제국을 동일시하고, 훈 제국을 이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Szabados, 2017; Rady, 2003: 12-15; 박종성, 2003;김지영, 2013: 4-8)

패배한 쪽의 정체성이 승리한 쪽의 정체성에 편입되면서 오히려 먹어치운 점이 의아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이라트 연맹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현대에 오이라트는 서몽골이라 불리며 몽골 민족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물론 오이라트 연맹의 구성원 대다수가 몽골어 화자였고, 당대 만주인들 역시 오이라트를 몽골의 일종으로 간주했음으로 전적으로 틀린 인식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북원 통치자들은 오이라트를 외국의 적(qari daisun)으로 간주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은 현대에는 튀르크화되었다 여겨지는 조치 울루스계 집단들이나 모굴 칸국을 동족으로 보았다). 오이라트인들도 유사한 생각을 가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몽골어 화자로 몽골인들과 유사하다고 여겼지만, 별개의 종족이라고 여겼다. (이주엽, 2016)

그런데 이와 별개로, 오이라트 연맹의 통치 엘리트 일부는 몽골 정체성을 지녔고, 이를 대내외에서 널리 인정받았다. 바로 호쇼트(Khoshuud)의 경우이다. 호쇼트 부는 우량하이 3위 가운데 하나로, 칭기스의 동생 조치 하사르(Joči Khasar)의 후예들이 다스렸다. 16세기 오이라트 연맹의 수장 에센 타이시는 장성 북쪽에 거주하던 우량하이 3위를 추방하고 일부를 오이라트 연맹으로 흡수했다. 그런데, 이들은 17세기 들어서 오이라트 연맹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고, 그 통치자들은 보르지긴 혈통을 이용해 ‘칸’으로 즉위했다. 사실 준가르 수령 갈단이 칸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도, 모계를 통해 우지예드(Öjiyed: 우량하이의 또다른 이형. 호쇼트 부 수령의 씨족명) 씨의 피를 이은 덕분이었다. (宮脇淳子, 1997)

자. 글이 길어졌는데,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헝가리가 훈 계승 의식을 지녔던 것은 얼치기 낭만주의 역사학이나, 민족주의 역사학 또는 가짜 역사학이 아니다. 본래 삼림민으로 우그르 종족에 속했던 원머저르 집단은 튀르크, 특히 훈 제국과 연관이 깊던 불가르계 집단과 상호 동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머저르 문화는 (언어와 별개로) 튀르크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훈 제국과 아틸라 계승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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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성 이슈트반 왕관에 새겨진 게저 1세의 모습. 출처: Tóth, Endre and Károly Szelényi (2015). The Holy Crown of Hungary: 25. 위키미디어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