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로건,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hanyl 2020. 9. 10. 09:23

Eugene Rogan, The Arabs: A History, 3rd ed. (Basic Books, 2011), 576 pages.
유진 로건 지음, 이은정(李銀貞) 옮김,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까치, 2016), 783쪽, 30,000원.

제목 그대로 아랍 근대사를 다룬 개설서이다. 오스만 제국의 아랍 정복부터 2011년 아랍 혁명까지 아랍인과 아랍 지역의 역사를 이야기체로 서술했다. 출판사 홍보문구따나, 복잡하면서도 모순적인 중동 지역의 역사를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시오노 나나미나 존 줄리어스 노리치와는 달리 중동 역사 전공자이자 현역 연구자가 적었기 때문에 국제 학계의 최근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점도 추천할만 하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화자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긴 기간동안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는 이야기체 역사체라면 대개 정치사와 정치인들의 시각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진 로건은 다양한 인물들이 남긴 일기, 회고록을 참고하여 이를 보완한다. 일부이긴 하지만 18세기 중반 다마스쿠스를 살아간 이발사 아흐마드 알부다이리 ‘알할라크’부터 이집트의 여성주의 혁명가 후다 샤라위, 개혁을 꿈꾼 이집트 장교 아흐마드 우라비,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혼혈의 외교관 리나 믹다디 타바라만 언급해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저자가 반영하려 노력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은 서론과 14개 장, 에필로그와 “후기: 아랍 혁명의 해”로 구성된다. 1장부터 5장까지는 오스만 제국기 아랍 지역, 6장부터 9장까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기, 10장부터 후기까지는 냉전과 미국 패권 시대의 아랍 지역을 다룬다. 다루는 기간이 길고 지리적 범위가 넓기에 너무 많은 인물이 튀어나오고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들어가지만, 유진 로건은 꽤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어렵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고문이나 살인, 학살 등이 넘쳐나는 부분에서 저자의 글발이 좋은 탓에 읽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유진 로건의 시각에서는 균형감이 느껴졌다. 옮긴이 이은정(李銀貞) 선생님의 지적대로, 저자는 앨버트 후라니의 후학인 덕분인지 기본적으로 아랍인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품고 있고, 책 전체에서 그러한 시각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아랍인들에게 오랜 시간 고통을 주고 있는 갈등들이 외세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성된 면을 지적하면서도 아랍인들 내부에서 기인한 면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이 책이 영어권에서 두터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썩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로건 교수의 학문적 역량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역량, 그리고 이런 균형감각이 조화를 이룬 덕분일 것이다.

번역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옮긴이인 이은정 선생님의 논문은 이전에도 몇 차례 읽으면서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공력이 번역서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이은정[李恩廷] 교수님과 착각하는 부끄러운 경험도 있지만…. 블로그에서 두 분 교수님의 논문을 구분없이 인용한 것은 그 때문이다) 편집도 좋았다. 각주가 모두 후주로 처리되긴 했지만 이는 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체로 쓰여진 책의 특성상 본문에 있었어도 흐름만 끊었을 것이다.

분량이 많다보니 오류나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97쪽에서는 이집트 제국의 메흐메드 알리가 알바니아 출신이라고 적혀있지만, 이는 그가 알바니아 군인들과 가깝게 지낸 탓에 불거진 오해이다. 사실 메흐메드 알리는 1700년대 코냐에서 카발라로 이주한 튀르크 가문 출신이었다. 일설에는 이 가문이 이전에는 그보다 더 동쪽에서 살았기 때문에 쿠르드족이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그렇다 하여도 카발라로 옮겨간 시점에서 이미 쿠르드족의 정체성은 상실한 상태였다. (칼레드 파흐미 지음, 이은정[李恩廷] 옮김, 『메흐메드 알리』 [일조각, 2016], 29-30쪽, 40쪽) 177쪽에서는 아비시니아의 존 왕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 표기에 따라 요하니스 4세(Yōḥānnis IV)라 표기하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463쪽에서는 인민중화공화국이란 표현이 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의 오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표기상 어색함이나 오류는 책의 방대한 내용을 생각하면 사소한 것으로, 치명적인 단점으로 볼 수 없다.

유진 로건의 『아랍』은 학문적 철저함과 이야기체 역사서가 조화를 이룬 훌륭한 개설서이다. 근대 이후 중동, 특히 아랍 지역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시발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어 원서 초판이 발행된 것이 2009년인데 2017년에 4판이 발매되었던 점도 책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바일 것이다 (목차로 보건데 “후기: 아랍 혁명의 해”를 확장하여 15장으로 추가한 것 같다). 한국어판은 2011년에 발간된 3판의 번역본인데, 가까운 시일에 4판도 소개되길 바라본다.

*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2020년 8월 12일 책 수령. 18일에 읽기 시작해 9월 9일 일독 완료. 10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