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본 흉노의 기원과 형성”
https://youtu.be/l0nVZepY_KQ?t=20795
재생 시간 - 05:46:35 ~ 06:16:00
얼마전 소개한 정충원 선생님의 발표, “고유전체를 통해 살펴본 내륙 유라시아인 유전자 다양성의 변화”의 후반부에 강인욱 교수님께서 관련된 발표를 얼마전에 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바로 이 영상이다. 영상에서 강인욱 선생님의 주장은 대략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흉노는 단순한 유목민 집단이 아니라 농경민과 유목민의 복합체였고, 이것이 흉노가 다른 유목 집단들을 제압하고 몽골 고원의 패자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둘째, 흉노의 기원은 서방의 사카 등 집단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으며, 제국이 성립한 뒤에도 상당 기간 흉노 지배층은 이러한 인식과 기억을 간직했고 선민의식을 지녔다.
첫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는 편이다. 물론 내 독창적인 의견은 아니고, 대략 5년쯤 전에 읽은 니콜라 디 코스모 교수님의 논문 “고대 내륙아시아 유목민: 그들의 경제와 중국사에서의 그 중요성”[Nicola Di Cosmo, “Ancient Inner Asian Nomads: Their Economic Basis and Its Significance in Chinese History,”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53-4 (1994), pp. 1092‑1126]에서 배운 것이다. 디 코스모 교수의 주장은 “흉노 시대 중국 북방의 경제는 스키타이 시대 중앙아시아 경제와 유사하게 여러 종류의 농경 경제가 초원의 목축유목과 공존하며 상호의존적인 사회·경제 체제를 형성했고, 한무제가 공세 정책을 피면서 초원지대에서 이 상호의존적인 체제를 파괴하면서 흉노 제국이 몰락하게 되었다”로 요약할 수 있다. 강인욱 교수님의 의견과 매우 유사한 편인데, 디 코스모 교수께서도 고고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장은 김현진(Hyun Jin Kim) 선생님의 The Huns (Routledge, 2016)에서도 보인다. 김현진 선생 역시 흉노 제국과 중앙아시아와 유럽 각지에 출현한 ‘훈’의 이름을 사용한 여러 국가들의 성공에 있어 이러한 역량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음을 상당히 의식하고, 또 강조하면서 책을 적으셨다. 책 앞머리에서 ‘유목 제국’(nomadic empire) 따위의 표현은 지양하는게 좋다고 적으실 정도이니. (책의 주된 주장은 서기 4세기 경 유라시아 전체를 뒤흔든 ‘흉노-훈’이라는 현상을 ‘유라시아’라는 하나의 단위로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책 소개글은 올 초에 다 적은 상태인데, 마지막으로 뭐 하나만 확인한다는걸 못해서 지금 싸매놓고 있다)
두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조금 조심스럽다. 흉노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가장 다수설이라고 하면 튀르크어계 언어를 사용한 유목민이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강인욱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이란계 언어를 사용한 집단의 영향력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더 많이 나오고 있다. (흉노의 기원 관련 논의는 Alexander Savelyev and Choongwon Jeong, “Early nomads of the Eastern Steppe and their tentativeconnections in the West,” Evolutionary Human Sciences, Vol. 2 (2020), pp. 2-7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고고학적 자료에 의지해서 사카 등 집단의 영향력을 상정하는 강인욱 선생님의 주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돌궐 제국의 아시나 씨의 기원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카계 집단이 흉노 제국의 핵심 집단을 이루었으며, 오랜기간 이에 기반한 선민의식을 지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조심스럽다. 예를 들어 토용이나 회화 등 자료에 묘사된 인물을 통해 사카계 집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 않냐는 이야기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마 정충원 선생님의 발표에서 고유전체 기반 연구를 통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인욱 선생님도 말씀하신걸 보면 당신께서도 의식하고 계셨던 것 같지만. 하여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문헌 자료 등의 보강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