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야 샤힌, 『술탄 쉴레이만의 삶과 시대』
Kaya Şahin, Peerless Among Princes: The Life and Times of Sultan Süleyma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3), xiv+366 pp., U$ 29.95 (Hardcover).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던 간에, 그와 관련하여 통사/개설서류 서적이 나온다는 소식은 늘 반갑다. 특히 내게는 이 책이 그러했는데, 기본적으로 오스만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장기 16세기의 파디샤(pādišāh: 帝王)들, 즉 메흐메드 2세(Meḥmed II, 재위 1451-81년), 바예지드 2세(Bāyezīd II, 재위 1481-1512년), 셀림 1세(Selīm I, 1512-20년), 쉴레이만 1세(Süleymān I, 재위 1520-66년)에 대해서 믿고 읽을만한 전문가가 직접 적은 전기(傳記)류 서적이 영어로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쉴레이만의 경우, 앙드레 클로(André Clot) 선생님의 『장엄왕 쉴레이만(Soliman Le Magnifique)』(Paris: Fayard, 1983)이 존재하고, 이 책이 『장엄왕 쉴레이만: 인간, 생애, 시대(Suleiman the Magnificent: The Man, His Life, His Epoch)』(Matthew J. Reisz, trans., New York: Saqi Books, 1992)과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배영란 · 이주영 옮김, 서울: W미디어, 2016)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영어와 한국어로도 소개되었지만, 클로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언론인이었다. 언급한 네 파디샤 가운데 가장 기록이 많이 남은 쉴레이만이 이러한데, 앞의 세 사람에 대해서는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을 알만하다.
그래서 카야 샤힌(Kaya Şahin) 선생님께서 쉴레이만 1세에 대한 전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큰 기대를 품게 되었다. 카야 샤힌 선생님은 『쉴레이만 재위 제국과 권력: 16세기 오스만 세계(Empire and Power in the Reign of Süleyman: Narrating the Sixteenth-Century Ottoman World)』(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에서 쉴레이만 시대의 관료 젤랄자데 무스타파(Celālzāde Muṣṭafā, 1567년 사망)의 활동을 중심으로 합스부르크조나 사파비조 등과의 갈등 속에서 오스만 관료층의 대두, 새로운 역사인식의 출현, 오스만 제국 문화의 탄생 등에 대해 논의하셨다. 특히 샤힌 선생님께서는 16세기 전반 오스만조의 제국 건설 도전을 유라시아 세계 전반에서 진행되던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강조했다. 샤힌 선생님의 이 책은 오스만사 연구자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렇다면 샤힌 선생님을 쉴레이만 시대 오스만 제국 연구의 최고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카야 샤힌 선생님이 적은 책, 『대적할 자 없는 군주: 술탄 쉴레이만의 삶과 시대(Peerless Among Princes: The Life and Times of Sultan Süleyman)』를 직접 손에 넣고, 읽었을때, 그 기대를 배신당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먼저 샤힌 선생님은 쉴레이만 1세의 불안과 기대로 보고 있다. 오스만 제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달린 군주에게 무슨 불안감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나도 그랬다), 책을 읽어보면 과연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쉴레이만의 어린 시절은 바예지드 2세의 아들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계승 분쟁과 겹치고, 쉴레이만은 이 시기 아버지 셀림 (1세)가 패배할 경우 함께 제거당할 운명이었다. 결과적으로 셀림이 승리하여 왕위를 잇기는 했지만, 실제 계승 전쟁의 흐름은 마냥 셀림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쉴레이만의 재위 초반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고, 쉴레이만은 세계를 정복하여 그 종말에 앞선 최후의 군주라는 기대를 받았고, 아마 그 스스로도 그런 존재라고 믿었던 듯 하다. 그러나 합스부르크조나 사파비조와의 전쟁은 갈수록 어려워져가면서 세계 정복이라는 꿈은 점점 멀어졌다. 마흐디를 자처하던 쉴레이만의 역할이 차츰 이슬람 순니파의 수호자로 변해가던 현상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쉴레이만 생애 만년의 불안감은 쉴레이만 스스로 아들을 둘이나 살해해버릴 정도였다면 더 말이 필요할까? 이런 시각에서 카야 샤힌 선생님은 쉴레이만의 성공 뿐만 아니라 실패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편 앞에서 나는 카야 샤힌 선생님이 쉴레이만 시대 오스만조의 제국 건설 여정이 유라시아 세계 전반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했음을 강조했다고 적었다. 이런 시각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쉴레이만은 생애 전반기, 자신이 세계를 정복하여 인류 역사상 최후의 군주가 되리라고 믿으면서 ‘무자디드(Mujaddid)’, ‘사히브 키란(Ṣāḥib Qirān)’, ‘마흐디(Mahdī)’ 등의 칭호를 사용했다. 사히브 키란의 경우 테뮈르(티무르)가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한 칭호로, ‘세계 정복자’를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무자디드와 마흐디는 각각 ‘(종교 = 이슬람의) 쇄신자’와 ‘메시아’를 뜻하는 말로, 쉴레이만이 모든 인류를 하나의 종교 아래에 통일하고 폭정을 제거하여 정의로써 통치하리라는 운명을 지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쉴레이만의 자의식은 당시 종말이 다가왔다는 아브라함계 종교 전반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사파비조의 이스마일 1세나 합스부르크조의 카를 5세 = 카를로스 1세 역시 사용한 용어는 조금씩 달라도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pp. 135-37)
좋은 전기는 어떤 인물의 위대함과 비루함을 모두 드러내고, 한 사람이 살아간 시대의 피조물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카야 샤힌 선생님이 이번에 펴내신 『대적할 자 없는 군주: 술탄 쉴레이만의 삶과 시대』가 그 좋은 예라고 본다. 최근 한국 출판사들이 어려운 책 시장의 와중에도 흥미로운 도전을 많이하고 있다. 2020년 앨런 미카일 선생님이 발표한 『신의 그림자: 술탄 셀림과 오스만 제국, 근대 세계의 탄생(God's Shadow: Sultan Selim, His Ottoman Empire,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이 『술탄 셀림: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이종인 옮김, 서울: 책과함께, 2022)이라는 제목으로 금방 한국어로 소개된 것 역시 그런 흐름의 하나다. 복잡한 생각이 드는 미카일 선생님의 책과 달리, 카야 샤힌 선생님의 『대적할 자 없는 군주: 술탄 쉴레이만의 삶과 시대』은 긍정적인 생각만 드니,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어로도 만나보길 바라본다. 거기에 나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고.
Douglas E. Streusand, Islamic Gunpowder Empires
Stephen F. Dale, The Muslim Empires of the Ottomans, Safavids, and Mugh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