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2 흉배, 중국에 남은 몽골의 유산 명나라라고 하면 “한족의 마지막 통일 왕조”라는 상이 강하다. 실제로 명태조 홍무제는 한족 문화의 이상 사회 부흥을 목표로 선언하고 당과 송 체제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으니,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만큼 실제로 명사 연구에 있어서는 몽골의 유산이 많이들 부정되어 왔다. (이같은 시각에 대해서는, Rossabi, 1998: 221; Brook, 2014: 508 참고) 그러나 실제로 명나라를 검토하면 몽골의 영향이 꽤 짙게 나타난다. 명대의 중앙 정부 체제나 세습되는 군 장교들이 통솔하는 군사 체계 등은 카안 울루스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중국의 ‘성’을 중심으로 한 지방 행정 체제 역시 몽골대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대명을 몽골 후계 .. 2020. 6. 20. 팔레올로고스 시대 비잔틴 귀족 복식 - 12세기 말이 지난 뒤 비잔틴의 일상 복식은 중앙유라시아 유목민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를 1204년의 사건 이후 니케아 궁정이 소아시아에 위치하며 튀르크인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결과로 해석했다. (Parani, 2003: 59) - 과거의 복식은 공식 의례에서만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Kubiski, 2001: 174) - 위 도판에서 요안니스 8세가 쓴 모자는 스키아디온skiadion(그: σκιάδ〈ε〉ιος)이다. 스키아디온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그림자Skia(그: σκιά)에서 나왔는데, 챙을 접거나 펴서 햇빛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Ševčenko, 1991b: 1910) 덧붙여, 모자의 챙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나누어져 따로 움직일 수 있었다. 도판에서도 보이듯.. 2019. 4. 2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