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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칸국6

바그다드의 몰락 : 完. 마치며 훌레구의 이라크 정복은 종래의 이미지와 달리 경제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이라크의 농업 생산성은 이슬람 정복 직후부터 완만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원인은 전쟁, 내전, 기후 변화, 정치 구조 변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혼합된 것이었다. 특히 기후 건조화로 이란 방면에 유목정권이 들어선 것이 치명적이었다. 셀주크 시대 이후 옛 아랍의 심장부는 더 이상 이슬람 세계와 정치의 중심지가 아니였다 (Morgan and Reid, 2011: 13-16). 바그다드의 정치적 지위가 격하되자 바그다드를 거쳐 지중해로 가는 주요 관문이었던 바스라 역시 중요성을 잃어갔다. 이전에 바스라로 모이던 물류는 홍해, 타브리즈 등으로 나누어졌다. 13세기 후반에 발생한 몽골의 페르시아와 이라크 정복은 이미 진행되.. 2019. 7. 23.
바그다드의 몰락 : Ⅳ. 교역로의 변화 8세기 인도양과 유럽 사이 교역은 압바시야 국가와 당 제국의 번영과 부에 기반하고 있었다. 양 제국은 모두 외국산 사치재에 대한 어마어마한 수요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 인도양을 통한 교역로의 동쪽 끝은 중국의 광저우였고, 서쪽 끝은 바그다드의 항구도시인 바스라였다. (Pearson, 2011: 322)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무슬림들은 인도양의 상업을 지배하며 해양교역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그들은 특히 지중해와 인도양 사이에서 홍해와 페르시아 만을 이용하여 교역했다. 8세기에 이미 아랍과 페르시아인 무슬림들은 중국의 광저우廣州(영어식으로는 Canton)에 거주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했으며, 758년에는 잠시 반란을 일으켜 도시를 지배하기까지 했었다. (Morgan and Reid, 2011: 8-1.. 2019. 7. 23.
바그다드의 몰락 : Ⅲ. 농업의 쇠퇴 이라크는 바그다드가 건설되기 이전부터 칼리파 제국의 핵심이었다. 압바스 국가(즉, 고대 후기부터 중세까지 아랍 제국)의 힘은 사와드 지대가 제공한 막대한 부에 기반한 것이었다. 사와드 즉, 흑토黑土 지대는 바그다드 남쪽에서 바다까지 뻗은 광활한 경작지를 가리키는 말인데,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과 그 지류들, 그리고 운하에 의해 물을 공급받았다. 바로 이 경작지에서 수확되던 농산물에서 부가 창출되었고, 풍족한 생산량은 세심한 농경과 온화한 기후에 의지한 바였다. 이 같은 번영의 핵심에는 관개시설이 있었다. 이 정교한 수로시설은 지속적인 관리가 반드시 뒤따라야했다. 운하 내부에 토사가 너무 많이 쌓일 경우에는, 아예 새로운 운하를 만들어야 했다. 수로 인근 저수지의 물이 증발되도록 내버려둔다면, 토지 .. 2019. 7. 23.
바그다드의 몰락 : Ⅱ. 몽골 제국의 바그다드 정복 1255년, 칭기스 칸의 손자 훌레구는 대칸 뭉케에게서 서아시아 정벌을 명받아 몽골고원을 떠났다. 그의 군대는 1257년 몽골 제국의 이란 통치 중심지인 하마단에 도착했다. 그는 이곳에서 바그다드의 압바스조에 서신을 보내 항복을 제의했다. 이에 칼리프 알무타심은 압바시야 국가가 심판의 날까지 영원할 것이며, 만약 몽골군이 이를 공격한다면 동과 서의 무슬림 전체가 들고 일어서 자신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훌레구는 후라산으로 퇴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조롱했다. 이에 훌레구는 공격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몽골의 전통에 따라 군대를 셋으로 나누었다. 좌익은 루리스탄을 경유해 후지스탄을 공략하게끔하고, 우익은 이르빌을 거쳐 아제르바이잔을 공략하게끔 명령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중군을 이끌고 바그.. 2019. 7. 9.
바그다드의 몰락 : Ⅰ. 들어가며 1258년, 몽골군은 바그다드 성벽에 도달했다. 짧은 포위전이 뒤따랐고, 그들은 “날아가는 비둘기를 공격하는 굶주린 매처럼, 양을 공격하는 사나운 늑대처럼” 도시를 휩쓸었다. “13세기 몽골인들이 바그다드의 도서관들을 태워버리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랍인들은 더욱 과학을 발전시켜 훨씬 예전에 원자폭탄을 개발했을 것이다. 바그다드 약탈은 우리를 몇세기 이전으로 퇴보시켰다.” - 시리아 고위 공직자의 말 (Hottinger, 1957) 이 사건은 단순히 바그다드라는 한 도시의 함락이나 압바시야 칼리프 국가의 붕괴 정도가 아니라 이슬람 문명의 몰락을 야기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왔다. 이와 같은 시각은 2003년 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 더 널리 퍼졌다. 그리하여 바그다드 함락은 무슬림에게 있어 이슬람 또는 이.. 2019. 6. 23.
이란에 존재한 거란 왕국 쿠틀룩칸국Qutlughkhāniya/Ḳutlugh-Khānids 또는 케르만의 거란 왕국Qarā Khiṭāy of Kerman은 1222년부터 1306년까지 키르만 지역을 통치했고, 그 왕족은 야율 씨의 일원이었다. 쿠틀룩칸국은 호라즘샤 왕국, 몽골 제국의 대칸 나중에는 일칸국의 봉신이었다. 인근의 야즈드 아타베그 왕국이나 파르스의 살구르조, 무자파르조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때로는 칼리프나 인도와도 관계를 맺었다. 쿠틀룩 칸이라는 이름은 이 왕국의 태조, 바라크가 화레즘샤와 압바스 칼리프에게서 각각 쿠틀룩 칸, 쿠틀룩 술탄으로 임명되었던데서 기원했다. (Minorsky, 1986: 553) 역사 쿠틀룩 칸 바라크 하집의 치세 왕국의 태조는 나스르 알둔야 왈딘 아불파와리스 쿠틀룩 술탄 바라크 하집 .. 2019.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