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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20

마리 파브로, 『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마리 파브로, 『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세계를 뒤흔든 호르드의 역사』, 김석환 옮김 (서울: 까치글방, 2022), 487쪽, 25,000원. Marie Favereau, The Horde: How the Mongols Changed the World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2021), vi+378 pp., $29.95 (hardcover); $18.95 (paperback). 원서의 제목은 The Horde인데, 이는 책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몽골 제국의 정치적 구조를 설명할때 주로 사용되는 ‘.. 2023. 3. 2.
모스크바국가 포메스티예체제 성립에 미친 몽골제국와 오스만국가의 영향 Ⅳ. 맺음말 이상 본문을 통해 포메스티예의 등장과 확립에 있어 몽골제국와 오스만국가가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모스크바국가는 확장하는 과정에서 증대된 군사적 요구에 맞설 수 있는 군사 계급을 조직해야 했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의 군주들은 봉직에 따라 토지를 보유한다는 몽골제국의 이크타에 주목했다. 포메스티예를 수여받은 하위귀족층에서 상당한 비율이 몽골계 귀족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반 4세 재위 이전까지 모스크바국가에는 포메스티예와 관련하여 포괄적인 조직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1550년대 다방면에서 개혁을 추진하던 이반 4세가 포메스티예체제의 확립에 있어서 주목한 것은 오스만국가의 티마르체제였다. 이반 4세는 오스만국가의 티마르 분배와 통제 방식을 참고하여 포메스티예를 체계.. 2022. 9. 22.
모스크바국가 포메스티예체제 성립에 미친 몽골제국와 오스만국가의 영향 Ⅱ. 포메스티예의 등장 13세기 변방의 보잘 것 없는 소도시에 불과했던 모스크바는 14세기와 15세기 강력하고 팽창하는 왕조 국가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증대된 군사적 요구에 직면한 모스크바 벨리키 크냐지는 군사 계급을 조직해야만 했다. 더욱이 몽골 등 외부로부터 유입된 많은 전사들을 부역하기 위한 군역지도 필요했다. 이것이 봉사에 대한 대가로 하사되는 조건부 토지, 포메스티예였다.¹⁰ 앞서 언급하였듯, 루시세계에 포메스티예 이전에 세습봉토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0세기 중엽에 하자르 제국이 몰락한 이후 루시 세계에서는 자기 방어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부유한 상인들을 중심으로 무장 집단이 형성되었고, 최초에는 노예 인력이 이 집단의 중추가 되었다. 유목민의 약탈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이들 상인에게 더욱.. 2022. 9. 18.
모스크바국가 포메스티예체제 성립에 미친 몽골제국과 오스만국가의 영향 Ⅰ. 머리말 모스크바국가가 대두하면서 루시세계에는 새로운 토지소유권의 형태, 포메스티예(Pomestʹe: 봉직영지)가 등장했다. 분령시기 루시세계에 일반적인 토지 보유의 형태는 보트치나(Votchna: 세습영지)였는데, 이것은 사거나 팔거나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사유지였다. 그런데 이반 3세와 그 이후 벨리키 크냐지(Velikiĭ kniazʹ)들 사이에서는 보트치나와 달리 봉직자에게 기한을 정하고 통상적으로 직무의 조건이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생존 시에만 보유하게 했던 포메스티예가 점차 일반화되었다. 특히 이반 4세는 1556년 포괄적인 조직이나 기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던 포메스티예 보유자의 봉직을 위한 일반적인 규정을 마련했다. 포메스티예체제의 핵심은 이반 3세와 그 후계자들이 자신들의 봉직자들에게.. 2022. 9. 15.
핼퍼린,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찰스 핼퍼린 (2020).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권용철 옮김. 글항아리. 358쪽. 20,000원. Halperin, Charles J. (1985). Russia and the Golden Horde: The Mongol Impact on Medieval Russian History. Indiana University Press. xii + 180 pages. 몽골지배기 루시 지역과 모스크바 국가의 초기 발전에 대한 영어권의 대표적인 연구서로는 3권이 있다. 출간일 순으로 적으면, 첫째는 게오르기 블라디미로비치 베르나츠키(Гео́рг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Верна́дский, George Vladimirovich Vernadsky)의 The Mongols and.. 2020. 7. 1.
이주엽, 《몽골제국의 후예들》 이주엽 (2020). 《몽골제국의 후예들: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책과함께. 책의 저자 이주엽 선생님은 한국어로 된 저술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영미권 중앙유라시아 학계에서 높이 평가받는 학자이시다. 전에 소개한 Qazaqlïq, or Ambitious Brigandage, and the Formation of the Qazaqs: State and Identity in Post-Mongol Central Eurasia가 브릴 출판사를 통해 발간된 점, 이슬람학 연구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Encyclopedia of Islam, THREE의 필진으로 참여한 점 정도만 꼽아보아도 이주엽이라는 학자의 학문적 성과가 국제 학계에서 얼마나 인정.. 2020. 6. 22.
흉배, 중국에 남은 몽골의 유산 명나라라고 하면 “한족의 마지막 통일 왕조”라는 상이 강하다. 실제로 명태조 홍무제는 한족 문화의 이상 사회 부흥을 목표로 선언하고 당과 송 체제의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으니,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만큼 실제로 명사 연구에 있어서는 몽골의 유산이 많이들 부정되어 왔다. (이같은 시각에 대해서는, Rossabi, 1998: 221; Brook, 2014: 508 참고) 그러나 실제로 명나라를 검토하면 몽골의 영향이 꽤 짙게 나타난다. 명대의 중앙 정부 체제나 세습되는 군 장교들이 통솔하는 군사 체계 등은 카안 울루스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중국의 ‘성’을 중심으로 한 지방 행정 체제 역시 몽골대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대명을 몽골 후계 .. 2020. 6. 20.
차르 권력의 기원, 포메스티예 베르나드스키는 모스크바 차르 권력의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로 군사 봉토 체제를 들었다. 이 군사적 봉토의 이름은 바로 포메스티예(Поместье, Pomest’e; ‘뽀메스찌예’라고도 표기됨)였다. 포메스티예는 군사적 봉직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토지를 뜻한다. 이를 받은 봉직자, 즉 포메시키(Помещики, Pomeshchiki)는 그 대가로 국가의 소집에 규정된 장비를 갖추고 정해진 장소에서 등록을 한 후에 전투에 참여할 의무가 있었다. 토지 150 데샤티나(미터법 이전의 러시아 면적 단위로, 1 데샤티나는 10,925㎡에 해당했다. 즉, 150 데샤티나는 대략 1,635,000㎡) 당 병사 1명과 장비를 갖추어야 했다. 만약 봉직자가 등록을 하지 않거나 전투에서 지휘관에게 불복종한다면 포메스티예.. 2019. 12. 20.
몽골 제국과 루시 그리고 러시아의 탄생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고고학 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몽골 제국의 루시 침공에 대한 것이었다. 러시아 학계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야 꽤 놀랄 일이겠지만, 이들은 몽골의 러시아 침공과 그 지배를 ‘암흑기’로 정의하는데 문제를 제기했다. 고고학 발굴 결과는 문헌 사료의 과장된 파괴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Waugh, 2017: 17) 문명파괴자 몽골? 러시아 고고학 학계에서 몽골 침공의 참상을 사료 상의 과장과 달리 받아들인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그 시작은 1940년대 몽가이트(A. L. Mongait)가 이끄는 소비에트 고고학 연구팀이 진행한 구[舊]랴잔 시[市] 발굴 조사였다 (이하 랴잔으로만 표기). 랴잔은 루시 문화권과 초원 사이를 잇는 교역로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 가운데 하나였.. 2019.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