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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조4

목성과 토성의 만남, 그리고 합일의 주인 이슬람 세계에서 목성과 토성은 ‘두 행운[의 별]’(al-saʿdān)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두 별이 유달리 가까워지는 순간을 이슬람 세계의 점성술사들은 ‘두 행운의 합일’(qirān al-saʿdān)이라 하였다. 이슬람 세계의 이 관념은 사산조 시대 이란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파흘라비 문학에서는 ‘두 행운의 합일’이 일어나는 순간에 태어난 왕은 ‘세계정복자’ 또는 ‘명군’의 탄생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예컨데 6세기 중반 페르시아어 문헌 『파파크의 아들 아르다시르 행장록』(Kārnāmak-ī Araxsīr-ī Pābākān)은 사산조의 시황제가 ‘두 행운의 합일’이 일어나는 순간에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Chann, 2009: 94; 한편 일부 점성술사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이 운명을 타고.. 2020. 12. 21.
알리 시르 나바이와 티무르조 르네상스 15세기 중반 이슬람 세계 동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궁정은 티무르조의 군주, 술탄 후세인 이븐 만수르 이븐 바이카라(Sulṭān Ḥusayn b. Manṣūr b. Bāyqarā), 일명 후세인 바이카라의 것이었다.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는 1469년부터 1506년까지 헤라트를 통치했는데, 이 시기 헤라트의 영화는 당대 사료에서 여러차례 강조된다. 다울라트샤 사마르칸디[Dawlatshāh Samarqandī, 《타드키라트 알슈아라》(Tadhkirat al-shuʿarā: 시인들의 전기)의 저자. 이 책은 150여 시인의 시와 삶을 다룬다]는 후세인 바이카라 재위를 예술가에 대한 후원과 예술의 발전으로 특징지었다. 후세인 바이카라가 죽은 직후에 헤라트를 방문한 바부르(Bābur)는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의 시.. 2019. 12. 21.
칭기스조 제자 울루스 부족 구성 몽골 제국이 이전의 유목 제국들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탁월한 동화력이라 생각한다. 탕구트(서하), 키타이(거란), 알란, 킵차크 등 본래 몽골과 구분되던 다양한 기원을 지녔던 종족들은, 몽골 제국 이후 칭기스조의 지배를 받는 부족들로 변화했다. 《원사元史》에 소개된 칭기스 칸의 발언에도 이와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난다. 거란의 수령이던 야율류가(耶律留哥)가 죽었을때 그의 미망인(후처[後妻])이 칭기스 칸을 찾아가 칭기스칸을 시위(侍衛)해오던 전처(前妻) 소생의 설도(薛闍)로 하여금 아버지의 자리를 잇게 하고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대신 시위의 일을 맡도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칭기스 칸은 “설도는 이미 몽골인이 되었다. 그는 짐을 따라 서역에 원정하였다”라고 하면서 후처의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직책.. 2019. 5. 24.
티무르 제국의 역사 티무르 시대 서기 1370년부터 1405년까지의 기간입니다. 1370년은 바를라스 부 출신인 티무르가 차가타이 울루스의 권좌에 오른 시점입니다. 1405년은 티무르가 중국 원정을 위해 동진하던 와중에 죽은 시점입니다. 이 기간에 티무르는 전쟁을 통해 페르가나,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지를 정복하고, 이집트, 소아시아, 킵착크 초원 등지에서 상위 군주로 인정 받으면서 정권을 확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티무르의 지배지는 과거 몽골 제국의 서방 3왕가(주치 울루스, 훌레구 울루스, 차가타이 울루스)의 영역을 넘어 서쪽으로는 이집트, 소아시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원정을 이용해 티무르는 측근 세력을 키웠고, 과거 차가타이 울루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족 세력들은 티무르 이후로는 큰 권력.. 2019.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