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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8

[논문 번역] 이주엽, 「역사 속의 오이라트인은 '서몽골인'이었는가?」 연구자 지원 공간 아카루트 대학원생/비정규직 연구자 지원, 공간 대여 akaroot.co.kr (논문 번역 본문은 링크 페이지 아래의 “첨부파일”) 옮긴이의 말 이 논문의 요지는 유목집단 내에서 언어가 정체성 형성의 기반이 아니었던 만큼, 오늘날 서몽골로 분류되는 오이라트도 몽골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오이라트인은 서북 몽골 지방에서 기원한 몽골어 사용 유목민족으로 15세기 중반 에센 타이시와 17세기 말 갈단 칸의 치세에 강력한 유목 제국을 건설했다. 현 러시아 연방의 칼미크 공화국, 오늘날 몽골 공화국의 도르베트, 작친, 올로드 부락민, 오늘날 중국 신장의 토르구드 부락민이 오이라트의 직계 후손들이다. 몽골의 한 방언을 사용하며 서몽골 지역에 거주했기 때문에 .. 2022. 4. 14.
칸국, 울루스 체제, 그리고 ‘몽골 연방’ 기존 몽골 제국사 연구는 몽골 제국의 통합 기제보다는 네 개의 칸국(한국)으로의 분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대세였다. 몽골 제국의 통합과 분열을 바라보는 연구자들은 칭기스 칸의 분봉을 지역적인 분할의 전조로 파악했다. 즉 분봉에서 나타나는 몽골 지배층의 제국에 대한 인식이 곧 분열의 씨앗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용규 2009: 102-103 특히 n. 34; 이용규 2010: 73) 예컨데 피터 잭슨(Peter Jackson) 교수의 논문「울루스에서 칸국으로: 몽골 국가들의 발생, 1220년경-1290년경」(“From Ulus to Khanate: The Making of the Mongol States, c. 1220–c. 1290,” 1998)가 있다. 그는 몽골 제국이 통합적인 구도에서 어떻게 지역 .. 2021. 6. 19.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한글 자막) 중앙아시아의 교류와 분쟁: 고대에서 현대까지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중앙아시아 국제 컨퍼런스)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거란은 11세기와 12세기에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을 떨친 튀르크·몽골계 집단으로, 전성기에는 북중국 대부분과 북방과 서방의 방대한 초원 지대를 지배했습니다. 이들은 이웃한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차츰 유목습성을 버리고 정주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12세기 초 여진의 발흥과 이에 따른 거란의 몰락과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거란을 새로 출연할 칭기스조 제국(Chinggisid Empire)에서 동화와 통합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유목습성과 정주식 행정에 익숙했던 거란은 공성전과 최신 군사 기술에 대한 실용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기에 칭기스 칸은 북중국의 여진을.. 2021. 2. 2.
Atwood, “『몽골비사』를 읽는 눈: 쿠빌라이 카안에서 18세기까지” Christopher Atwood, “Reading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from Qubilai Khan to the Eighteenth Century,” Jean and Denis Sinor Lecture Series (October 26, 2020). 크리스토퍼 애트우드(Christopher P. Atwood) 교수께서 올해 10월 26일 인디애나대학교 중앙유라시아학과(Department of Central Eurasian Studies)에서 진행하는 사이노어 강연회에서 발표한 강연 동영상이다. 『몽골비사』의 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몽골비사』의 이야기를 이후 사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도로 이를 재해석하고 재작성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강연 .. 2020. 12. 16.
Michel Hope, Power, politics, and tradition in the Mongol Empire and the Īlkhānate of Iran Hope, Michael. 2016. Power, Politics, and Tradition in the Mongol Empire and the Īlkhānate of Iran. Oxford University Press. xii+238 Pages. £74.00. 훌레구 울루스, 속칭 일칸국에 대해 많은 글을 읽지 않아 몰랐었는데, 아주 최근까지 훌레구 울루스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연구서가 영어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조지 레인(George E. Lane)의 Early Mongol Rule in Thirteenth-Century Iran: A Persian Renaissance (Routledge, 2003)도 나왔고 해서 이쪽 분야의 연구가 꽤 충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던.. 2020. 11. 5.
울루스와 칸국 관련 다음 백과에서 제공하는 천재학습백과의 《동아시아사 고등 학습백과》의 “몽골 제국의 탄생”이라는 꼭지이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칸국’이라는 표기가 엄청 빨리 도태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다. 아재된 기분이다. 몽골 제국의 탄생 칭기즈 칸은 정복을 통해 얻은 영토와 백성을 여러 아들과 동생 및 부하에게 나누어 주어 다스리게 하였다. 따라서 몽골 제국 전체는 대칸이 다스렸지만, 그 안에는 작게 쪼개진 여러 100.daum.net 2020. 7. 10.
메이, 《칭기스의 교환》 티모시 메이 (2020). 《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권용철 옮김. 사계절. 443쪽. May, Timothy (2012). The Mongol Conquests in World History (Globalities Series). Reaktion Books. 319 pages. 우선 책 제목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은 티모시 메이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저자는 이를 1960년대 후반 앨프레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가 제시한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에서 따왔다고 설명한다. (본문 27-29쪽) 물론 몽골 제국의 파괴적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스러울 수 있지만, 콜럼버스의 교.. 2020. 7. 8.
테무진 생애 공백의 10년 달란 발주트의 패배(1187년 이전)와 금나라 주도의 타타르 원정(1196년)까지는 거의 10년의 공백이 존재한다. 몽골 제국의 사료들에서는 이 기간에 테무진의 활동에 대해 의뭉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몽골 제국기 최중요 사료 가운데 하나인 라시드 알딘의 『집사』에서는 다만 1168년부터 1194년까지 테무진이 많은 고생을 했고,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다고만 적었을 뿐이다. (Rachnevsky, 1992: 53; Allsen, 1994: 337) 그렇다면 다른 사료는 어떠한가? 흥미롭게도, 남송의 사신 조공(趙珙)은 몽골측을 방문한 뒤 작성한 여행기인 『몽달비록』(蒙鞑备录)에서 테무진이 10년 동안 금나라의 노예로 있었다고 적었다. 조공이 저서에서 여러 차례 종족적 편견을 보였기 때문에 이.. 2019.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