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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4

발해의 이름은 단나라[dan gur, 丹國]? 926년 정월 거란(契丹)은 20여년에 걸친 각축전 끝에 발해(渤海)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한다. 거란군은 거침없이 진군하여 부여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척은(惕隱) 야율안단(耶律安端; 952년 사망)이 이끄는 선봉 기병은 발해의 노상(老相)이 통솔한 3만 원군을 물리치고 수도 홀한성에 도달했다. 이에 대인선(大諲譔)을 비롯한 발해 통치 집단은 투지를 상실하고, 거란군이 성을 포위한지 4일째 되던 날 항복을 결정했다. 이로써 발해 국가는 14대 22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한달 뒤 야율아보기는 “그 국명을 동단(東丹)이라 하고 그 [홀한]성을 천복(天福)이라 명명하여 야율배(耶律倍)를 인황왕(人皇王)으로 삼아 다스리게 하는 (改其國曰東丹, 名其城曰天福, 以倍為人皇王主之)” 조치를 단행한다.(脫脫 .. 2022. 7. 21.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한글 자막) 중앙아시아의 교류와 분쟁: 고대에서 현대까지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중앙아시아 국제 컨퍼런스)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거란은 11세기와 12세기에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을 떨친 튀르크·몽골계 집단으로, 전성기에는 북중국 대부분과 북방과 서방의 방대한 초원 지대를 지배했습니다. 이들은 이웃한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차츰 유목습성을 버리고 정주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12세기 초 여진의 발흥과 이에 따른 거란의 몰락과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거란을 새로 출연할 칭기스조 제국(Chinggisid Empire)에서 동화와 통합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유목습성과 정주식 행정에 익숙했던 거란은 공성전과 최신 군사 기술에 대한 실용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기에 칭기스 칸은 북중국의 여진을.. 2021. 2. 2.
김인희 편, 『움직이는 국가, 거란』 김인희 편 (2020). 『움직이는 국가, 거란: 거란의 통치전략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311쪽. 17,000원. 중앙유라시아사에서 어떤 분야에 대한 학계의 중론이 알고 싶을때 자주 찾아보는 책이 있다. 윤영인 외, 『10~18세기 북방 민족과 정복왕조 연구』(동북아역사재단, 2009)와 윤영인 외, 『외국 학계의 정복왕조 연구 시각과 최근 동향』(동북아역사재단, 2010)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두 책을 통해 중앙유라시아사 공부에 있어 시각이 크게 확장되었지만, 전문 학자들에게는 단순한 연구동향과 연구사 정리에 머물렀던 점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늘 소개할 책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선보인 앞의 두 책에 대한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책머리에”의 표현을 빌자면, “이번 연구에서는 한국적 .. 2020. 10. 8.
이란에 존재한 거란 왕국 쿠틀룩칸국Qutlughkhāniya/Ḳutlugh-Khānids 또는 케르만의 거란 왕국Qarā Khiṭāy of Kerman은 1222년부터 1306년까지 키르만 지역을 통치했고, 그 왕족은 야율 씨의 일원이었다. 쿠틀룩칸국은 호라즘샤 왕국, 몽골 제국의 대칸 나중에는 일칸국의 봉신이었다. 인근의 야즈드 아타베그 왕국이나 파르스의 살구르조, 무자파르조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때로는 칼리프나 인도와도 관계를 맺었다. 쿠틀룩 칸이라는 이름은 이 왕국의 태조, 바라크가 화레즘샤와 압바스 칼리프에게서 각각 쿠틀룩 칸, 쿠틀룩 술탄으로 임명되었던데서 기원했다. (Minorsky, 1986: 553) 역사 쿠틀룩 칸 바라크 하집의 치세 왕국의 태조는 나스르 알둔야 왈딘 아불파와리스 쿠틀룩 술탄 바라크 하집 .. 2019.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