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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군6

터키의 민군관계 完 마치며 군부의 계도는 터키 공화국 정치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군부의 계도라는 전통은 오스만 제국 말기에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해 이는 아타튀르크의 유산이라기보다는 독일인 장군 폰 데어 골츠와 연합진보회의 유산이었다. 물론 1950년대 이후의 터키 군부는 분명 197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나 그리스 군부와 달랐다. 이들은 권력을 잡거나 군사정권을 수립하려 들지 않았다. 터키 군부는 스스로를 세속주의의 수호자이자 국가 안보 그 자체로 보았다. 따라서 군부는 터키 정치를 주시하고, 때로는 개입하면서, 터키 정계에 군부의 존재를 제도화했다. 군부는 1960년, 1971년 그리고 1980년에 직접 정치에 개입했으나, 1997년 이후로는 정치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군부는 1960년 이후 최후통첩이나 담화 등을 통해 문.. 2020. 5. 19.
터키의 민군관계 Ⅴ 권위주의 헌법의 그늘 1980년 9월 12일, 터키공화국 역사상 두 번째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하여 또다시 의정이 중단되었다. 케난 에브렌(Kenan Evren) 참모총장을 비롯한 5인의 군인으로 구성된 국가안보회의(Millî Güvenlik Konseyi, MGK)가 다수당제에 의한 양원제 입법부를 가진 민주공화국을 일시에 장악했다. 이들은 근 10년 동안 심해져가는 정치적 폭력, 경제의 후퇴, 폭력적 노동쟁의, 무능한 연립내각 등으로 인해 혼란하고 피폐해진 국가를 구하고 민주정치의 기초를 재확립하겠다고 선언하며 모든 정당과 노동조합을 해산시켰다. 대학 역시 엄격하게 통제하여, 많은 교수들이 해직당했다.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테러단체가 소탕당했다. 그리하여 케난 에브렌 사령관을 필두로 한 고위급 장성들로 구성된 국가안보회.. 2020. 4. 11.
터키의 민군관계 Ⅳ 군부 개입의 시대 지상군 사령관 제말 귀르셀(Cemal Gürsel)은 소수의 장교들을 끌어들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1960년 5월 27일 새벽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대는 멘데레스 등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장악하였다. 이후 귀르셀과 40세 이하인 37명의 장교들은 국가단합위원회(Millî Birlik Komitesi)를 구성해 권력을 장악했다. 1961년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38%나 나온데 놀란 이들은 멘데레스와 2명의 각료를 서둘러 처형해버렸다. (Robinson, 1998: 199-202) 그러나 폭력적인 쿠데타 과정과 별개로, 새로 도입된 1961년 헌법은 제1공화국 헌법보다 더 자유주의적이었다. 쿠데타 발생 직후 이스탄불대학교 출신 법률가들이 주가 된 위원회가 신헌법 초안을 발표.. 2020. 1. 29.
터키의 민군관계 Ⅲ 케말주의 공화국 제1공화국 시기에 군부의 역할은 여러모로 ‘후견인’이라 할만했다. 즉, 군부는 터키 공화국의 세속화와 근대화 개혁을 ‘후견’한 것이다. 이 시기 군부의 정치 개입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민군관계는 1950년대 이후 더 복잡해졌다. 터키가 차츰 의회제 민주주의를 채택하며 다당제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헤일(William M. Hale)은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터키 정치에서 군부의 역할을 3시기로 나누어 조망했다. 첫번째 시기인 1923년부터 1926년까지(즉, 아타튀르크 시대), 아타튀르크는 가능한 한 자신의 권력에 위험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군 장교들은 이 시기 철저히 아타튀르크의 개인적인 권력을 위해 일했다. 그 다음 시기는 1926년부터 1950년까지(즉, 케말주.. 2020. 1. 22.
터키의 민군관계 Ⅱ 골츠와 연합진보회 터키의 민군관계를 역사적으로 개괄하기 위해서는 오스만 시기부터 검토해야 한다. 현대 터키의 정치와 사회에서 군부의 역할은 오스만 제국의 국가/사회 관계 구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사회는 두가지 계급으로 나누어졌다. 지배계층은 ‘군인(askeri)’라 불리었고, 피지배계층은 ‘가축(reaya)’라 불리었다. 즉, 오스만 제국을 통치계층은 군인, 관료, 종교인 등 직업에 관계 없이 군인이라 불리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는 군대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말까지 서구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군부는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정치 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오스만 정치 구조의 서구화는 독립 전쟁 이후 공화국의 성립까지 이어졌다... 2020. 1. 13.
터키의 민군관계 Ⅰ 들어가며 터키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터키 군대(Türk Silahlı Kuvvetleri, TSK)의 정치 개입이었다. 1940년대 터키가 다당제로 전환한 이래 터키군은 1960년, 1971년 그리고 1980년에 정치에 개입하여 민주화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1997년에는 정부의 사임을 강요했다. 이들은 결국 문민정부의 권위를 제약했다. 뿐만 아니라 수 차례의 쿠데타 계획과 시도가 있었으나, 다행히 군부의 거두들의 경고로 유산되었다. 터키는 여전히 민주화의 여정에 있다. 즉, 아직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자리잡지 못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민군관계를 중심으로 여전히 진행중인 민주화의 과정을 개괄하고, 그 모순과 딜레마를 지적하겠다. 첫 번째 단락은 군부의 계도와 민군 합작라는 기묘한 .. 2020.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