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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비잔티움의 역사』 그리스어 표기

by hanyl 2022. 11. 20.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비잔티움의 역사⟫의 한 장. 수정 작업 중으로, 실제 출판될 책과는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음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선생의 『비잔티움의 역사』 번역을 준비하면서 한 모험(?) 가운데 하나는 현대 그리스어를 기준으로 한 그리스어 표기였다. (한국어판) 「일러두기」에 밝혔듯, 『비잔티움의 역사』에서 로마-비잔티움 제국의 고유명사는 이라클리오스 1세의 재위(610-41년)을 기준으로 그 전은 라틴어로, 그 이후는 그리스어를 기준으로 표기되었다. 이 점은 종래 나온 비잔티움 관련 서적들과 같지만, 『비잔티움의 역사』는 비잔티움 제국의 그리스어를 고대 그리스어가 아닌 현대 그리스어의 발음에 따라 표기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리스어의 한국어/한글 표기는 <한글라이즈>의 그리스어 외래어-한글 변환 프로그램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예를 들어, ‘Ἰωάννης’는 <한글라이즈>에서 ‘이오아니스’이지만, 『비잔티움의 역사』에서는 ‘요아니스’로 옮겨졌다). 한편 『비잔티움의 역사』에서 그리스어의 로마자 전사형은 미국 의회도서관의 전사 방식을 따랐다 (따라서 ‘로마노스 레카피노스; Ρωμανός Λεκαπηνός’는 ‘Romanos Lekapenos’가 아니라 ‘Rōmanos Lekapēnos’로 표기되었다).

순전히 개인적 만족을 위해 사용한 미국 의회도서관의 전사 방식 채용은 제쳐두고, 종래의 고대 그리스어가 아닌 현대 그리스어를 기준으로 삼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제성의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비효율적인 선택이 아닌가. 먼저 비잔티움 제국에서 사용되던 그리스어(일명 중세 그리스어)의 발음이 이미 고대 그리스어의 발음과는 크게 달랐고 현대 그리스어에 가까웠다는 사실은 한국에도 그럭저럭 잘 알려져 있다. 온라인에서 여러 사람이 관련된 글을 썼었고 (끝소리 님의 글 ; 골리앗 님의 글 , 등), 유재원 교수께서도 저서 『터키, 1만 년의 시간 여행』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신 바 있다 (유재원 2010, 1: 5). 그런데 비잔티움 시대 그리스어와 고대 그리스어의 차이는 발음만이 아니었다. 비잔티움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그리스어를 ‘로마인의 말(Rōmaika)’, 즉 ‘로마어’라 불렀다. 칼델리스 선생에 따르면, “비잔티움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분야, 즉 법학과 군대에서 ‘로마어’는 언어적 시각에서 방대한 양의 라틴어 용어가 사용된 점에서 ‘로마적’이었다.” 또한 이 ‘로마어’의 “입말(口語)은 극도로 라틴어화 된 그리스어였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대상과 활동을 지칭하는 수많은 라틴어 단어가 2세기와 6세기 사이에 그리스어로 침입했고, 이들 다수는 오늘날 그리스어 입말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외국의 사료들도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없다면 대체로) 비잔티움 제국에서 쓰이는 ‘라틴어화 된 그리스어’를 로마인의 언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Kaldellis 2019: 31, 73-80, 97-106, 특히 99)

해서, 나는 첫째, 당시 그리스어의 발음에 가급적 가까우면서, 둘째, 라틴어화(로마화)된 그리스어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비잔티움의 역사』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관련된 고유명사를 가급적 현대 그리스어식으로 한국어로 표기했다. 조금 낯설기 때문에 대중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이 앞으로 새로운 기준이 된다면 좋겠다는 얼토당토 않은 야심도 있다, 솔직히. 아님 말고.

참고문헌

유재원. 2010. 『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동서 문명의 교차로』 전2권, 서울: 책문.

Kaldellis, Anthony. 2019. Romanland: Ethnicity and Empire in Byzantium,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