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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2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한글 자막) 중앙아시아의 교류와 분쟁: 고대에서 현대까지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중앙아시아 국제 컨퍼런스)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거란은 11세기와 12세기에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을 떨친 튀르크·몽골계 집단으로, 전성기에는 북중국 대부분과 북방과 서방의 방대한 초원 지대를 지배했습니다. 이들은 이웃한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차츰 유목습성을 버리고 정주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12세기 초 여진의 발흥과 이에 따른 거란의 몰락과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거란을 새로 출연할 칭기스조 제국(Chinggisid Empire)에서 동화와 통합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유목습성과 정주식 행정에 익숙했던 거란은 공성전과 최신 군사 기술에 대한 실용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기에 칭기스 칸은 북중국의 여진을.. 2021. 2. 2.
테무진 생애 공백의 10년 달란 발주트의 패배(1187년 이전)와 금나라 주도의 타타르 원정(1196년)까지는 거의 10년의 공백이 존재한다. 몽골 제국의 사료들에서는 이 기간에 테무진의 활동에 대해 의뭉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몽골 제국기 최중요 사료 가운데 하나인 라시드 알딘의 『집사』에서는 다만 1168년부터 1194년까지 테무진이 많은 고생을 했고,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다고만 적었을 뿐이다. (Rachnevsky, 1992: 53; Allsen, 1994: 337) 그렇다면 다른 사료는 어떠한가? 흥미롭게도, 남송의 사신 조공(趙珙)은 몽골측을 방문한 뒤 작성한 여행기인 『몽달비록』(蒙鞑备录)에서 테무진이 10년 동안 금나라의 노예로 있었다고 적었다. 조공이 저서에서 여러 차례 종족적 편견을 보였기 때문에 이.. 2019.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