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제국을 뭐라고 부를 것이냐는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 ⟪비잔티움의 역사⟫에서도 저자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선생은 책을 시작하면서 ‘비잔티움/비잔틴 제국’이라는 명칭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비잔티움/비잔틴 제국’이라는 이름은 이미 많은 학자가 지적했듯, 현대 역사학적 용어로써 ‘비잔티움/비잔틴’이 멸칭의 의미를 얼마간 지니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콘스탄디노스 4세의 칙령에서 확인할 수 있듯, ‘비잔티움/비잔틴’이라는 용어가 역사적으로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더해 ‘비잔틴(Byzantine)’이 ‘비잔티움(Byzantium)’의 형용사형이기 때문에 ‘비잔틴 제국’이라는 이름도 써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라티움(Latium)’의 형용사형인 ‘라틴(Latin)’이 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주장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물론 최근에는 ‘비잔티움’과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나도 굳이 ‘비잔틴 제국’과 ‘비잔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선생은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이라는 이름도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스타타코풀로스 선생은, 위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예를 들어 동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은 동지중해 세계와 레반트에 중점을 둔 명칭으로, 자연히 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오랜 기간 보여준 존재감을 지워버리게 된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서한(西漢 = 전한)-동한(東漢 = 후한), (대)요(大遼)-서요(西遼), 북송(北宋)-남송(南宋), (대)원(大元)-북원(北元) 같은 이름에 익숙한 나는 여기에도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한편, 예전에는 비잔티온/비잔티움에 수도를 둔 시기의 로마 제국이니 ‘비잔틴/비잔티움/비잔티온 로마 제국’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 일본에서 최근 많이 쓰이는 명칭이라고 했는데,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그런 말을 본 글도 이제는 못 찾겠고. 구글로 검색해보니 영어권 학계에서 ‘비잔틴 로마 제국(Byzantine Roman Empire)’이 전혀 쓰이지 않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다지 많이 쓰이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요즘에 서구권 학자들이 종종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중세 로마 제국(Medieval Roman Empire)’이 있다. 대표적으로 요하네스 프라이저카펠러(Johannes Preiser-Kapeller) 선생은 Yuri Pines, Michal Biran, and Jörg Rüpke, eds., The Limits of Universal Rule: Eurasian Empires Compar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에 “The Medieval Roman Empire of the East as a Spatial Phenomenon (300–1204 CE)”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에딘버러 대학교에서는 The formation of the medieval Roman Empire, 602-867이라는 학부 강좌도 있고. 문제는 ‘중세 로마 제국’이라고 하면 신성 로마 제국과 혼동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검색해보면 그런 사례가 꽤 많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한다면, 역시 스타타코풀로스 선생처럼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이름이 가진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을 싣되, 그럼에도 이미 깊이 뿌리를 박은 관용적인 표현을 사용하겠다고 분명히 밝히는게 최선이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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