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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6투멘의 기원

by hanyl 2019. 5. 2.

북원 대칸 직속의 부족部族은 백여 년의 이합집산을 거쳐,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6대 집단을 형성했다. 특히 오이라트 에센의 멸망에서 만돌론이 칸위에 오르는 20여 년 간이 6대 집단 형성에 중요한 시기였다. 만돌론의 시대에 6대 부락은 이미 그 규모를 갖추었으며, 다얀 카안이 만돌론의 사업을 계승하여 6대 부락을 아들들에게 분봉함으로써 제 부락을 자신의 가족 통치 하에 두었다. 이를 6투멘Jirγuγan tümen이라 한다.

본래 투멘tümen이란 만호(萬戶)란 의미로, 1만 명의 병력을 공출할 수 있는 집단을 가르켰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부족을 통합한 단위로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투멘은 부락(部落)으로도 새겨진다. 각 투멘은 여러 오톡(otogh)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개 다얀칸의 6만호는 차하르Čaqar(察哈爾), 할하Qalq-a(爾喀), 오량한Uriyangqan(兀良罕), 오르도스Ordos(鄂爾多斯), 융셰부Yöngsiyebü(永謝布 또는 應紹卜), 투메드Tümed(土默特) 등을 의미한다. 이 6개의 투멘들의 기원은 모두 몽골 제국기 중앙 정부와 관련이 깊다. 이들은 다시 좌우익 각기 3투멘으로 대별되었다.

지도: 16세기 후반 몽골 제세력

좌익 3투멘​은 칸의 직접 통치를 받으며, 고비 사막 북동쪽에서 유목하였다.

차하르 투멘은 뭉케 카안이 쿠빌라이에게 준 영지에서 기원했다. 뭉케 사후 몽골제국의 카안으로 즉위한 쿠빌라이는, 이 영지를 망갈라에게 분봉하였으며, 안서왕(安西王)이라 하였다. 본디 섬서 경조(京兆)에 있었으나, 15세기 이후 이동하여 대흥안령 산맥의 서쪽, 지금의 내몽골 우젬칭үзэмчин(Üjümchin) 인근에서 유목하였다. 이들은 두 형제의 어머니인 소르칵타니 베키의 제사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1547년, 알탄 칸의 압박으로 인해 다라이손 칸은 차하르 부락(과 자신을 따르는 5부 할하)를 이끌고 대흥안령 산맥을 넘어 요하의 상류지역으로 유목지를 옮겼다. 차하르 투멘은 8오톡 차하르라 불리기도 하는데, 각각 아우한Auqan, 나이만Naiman, 수니드Sönid, 우줌칭Üjümchin, 하우치드Qauchid, 케식텐Kesigten, 우루드Ürüd, 마지막으로 차하르 대칸의 개인 부족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우루드 오톡은, 1622년 반란을 일으킨 뒤 누르하치에게 투항하여 만주 팔기에 속하게되었다.

할하 투멘은 대원 울루스의 오투하(五投下) 가운데 하나인 잘라이르 부의 무할리와 그의 후예들이 지휘하던 엘리트 부대에서 기원했다. 할하라는 이름은 그들이 유목한 할하 강에서 기원했다. 차하르 투멘의 북쪽 인근에 유목했다. 다얀 칸은 다섯째 아들 아르소볼라드와 막내 아들 게레센제에게 할하 부락을 맡겼다. 아르소볼라드의 손자 5명이 그의 부락민을 분봉받았기에 이를 5부(五部) 할하라 불리었고, 게레센제는 아들 7명을 두고 이들이 그의 부락을 나뉘어 분봉받았기에 7부(七部) 할하라 불리었다. 5부 할하는 후일 막남으로 이동하여, ‘내할하 5부’라고도 불린다. 곧 언급될 오량한 부락의 해체 이후 7부 할하는 세력을 서쪽으로 넓혀, 목지가 헨티 산맥에서 항가이 산맥에 이르렀기에  ‘외할하 7기旗’라고도 불린다. 외할하 7기가 현 몽골 공화국의 모태이다.

오량한 투멘은 헨티 아이막에 있는 칭기스 칸의 무덤을 지키던 오량한 부에서 기원했다. 헨티 산맥 인근에서 유목했다. 1538년, 오량한 부락은 반란을 일으켰고, 몽골의 좌 · 우익이 연합하여 이를 격파했다. 몽골의 왕공들에 의해 오량한 부락은 해체되어 다른 부락으로 나뉘어 편입되었다.

우익 3투멘은 오르도스 투메의 수장, 지농Jinong(晋王)의 통치를 받으며, 고비 사막의 남서쪽, 장성을 따라 유목하였다.

오르도스 투멘은 칭기스 칸의 사당을 모시는 역할을 수행했다. 쿠빌라이 칸이 1292년에 만들었고, 그의 손자 카말라Kamala 지농에게 맡기었다. 이후 오르도스 투멘의 수장은 지농이라 칭하며, 칭기스 칸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였다. 13, 14세기에는 막북의 헤를렌 강 인근에서 유목하였으나, 15세기에는 남하, 황하의 굴곡 부에서 유목했다.

투메드 투멘은 튀르크계 옹구트Onggüt 왕국에서 기원하였다. 옹구트 부는 칭기스 칸의 딸 알라카이 베키Alaqai Beki 이래 꾸준히 몽골 카안들과 결혼 동맹을 맺었다. 때문에 몽골진(Mongoljin)이라고도 불린다.

융셰부 투멘은 탕구트(서하)의 후신으로, 우구데이 칸의 아들 쿠덴Qödan의 봉지에서 기원하였다. 그 명칭은 쿠덴의 아들 지빅 테무르가 감숙성 우웨이武威에 건설한 영창부永昌府의 명칭에서 기인하였다.

다얀 칸은 차하르 투멘을 중심으로 한 좌익 3투멘은 자신이 직접 통치하고, 고비 사막 북동쪽에서 유목하게 하였다. 우익 3투멘은 오르도스 투멘을 중심으로 편성하고, 그 통치자를 아들 바르소볼로드로 임명하며 지농의 칭호를 주었다. 우익 3투멘은 사막의 남서쪽, 장성을 따라 유목하였다.

이때 나타난 집단의 틀이 지금까지 몽골을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원형이 된다. 후일 몽골 고원을 지배하게 된 만청정권은 내몽골을 6개의 맹盟, 49개의 기旗로, 외몽골을 4개의 맹盟, 83개의 기旗로 편성한다. 이 가운데 내몽골의 23개 기旗와 외몽골의 83개 기旗는 다얀 칸의 후예가 통치했다. 내몽골의 나머지 29개 기旗는 칭기스 칸의 아우들의 후예들이 지배했다.

참고문헌

  • 김성수, "몽골 제국 붕괴 이후 쿠빌라이계의 활동과 그 한계," 몽골학 제39호 (2014. 11), pp. 29 - 63.
  • ────, “17세기 ‘할하(Qalq-a) 중심론’의 형성과 티벳불교,” 『중앙 아시아 연구』 7권, pp. 27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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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twood, Christopher P.,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the Mongol empire, Facts On File,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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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he Birth of the Oyrad Khanship," Central Asiatic Journal, 41/1, 1997, pp. 38 - 75.

지도

Christoper P. Atwood,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Mongol Empire, p. 409; 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184쪽, 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