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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 관련 연구들

by hanyl 2019. 5. 12.

도판: 겐나디오스와 메헴메드 2세

Fodor, Pál (2015). “Byzantine Legacies in Ottoman Identity.” in Barbara Kellner-Heinkele and Simone-Christiane Raschmann (eds.). Opuscula György Hazai Dicata: Beiträge zum Deutsch-Ungarischen Workshop aus Anlass des 80. Geburtstages von György Hazai. Klaus Schwarz Verlag: 93-108.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에 대한 연구사와 현재의 중론에 대해 정리한 에세이다. 연구사적 부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에 대한 연구가 역사가 깊으며, 최근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을 보였다. 현재 학계 시각 역시, 오스만 제국의 많은 제도가 그 기원을 비잔틴 제국에 두고 있으며, 고전기 오스만 위정자들 역시 자신이 로마를 계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졌다고 보고 있다.

오스만 제국에서 활용한 비잔틴 제국의 제도들 중 주요한 것은 아래와 같다. ① 오스만 제국의 티마르 제도는 후기 비잔틴의 프로노이아 제도에 기원을 두었다. ② 토지와 인두세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치프트하네Çift-Hane 제도는 후기 로마의 이우가티오·카피타티오iugatio-capitatio의 오스만식 변용이다. ③ 오스만 제국의 궁정 및 군사 조직은 비잔틴의 제도를 빌려온 것이다. ④ 법학자, 법관을 국가 조직 아래에 둔 일미예İlmiye 제도는 정교도의 것을 따온 것으로, 다른 이슬람 세계에서 찾을 수 없다. ⑤ 오스만 제국의 데르비쉬 종단은 비잔틴 수도원에 가까운 구조였다.

오스만 제국에서 나타나는 비잔틴 정체성의 주요한 사례는 아래와 같다. 당대 오스만 제국을 일컫는 말로는 ‘잘 보호받고 있는 왕국Memalik-i Mahruse’나 ‘이쪽bu canib’이 가장 많으나, ‘로마국memleket-i Rûm / iklîm-i Rûm / diyar-i rum’이라는 표현 역시 사용되었다. 군주의 칭호로도 로마 카이사르가 사용되었으며, 오스만 튀르크어 역시 로마어 또는 로마 튀르크어라 불리었다.

Ergul, F. A. (2012). “The Ottoman Identity: Turkish, Muslim or Rum?” Middle Eastern Studies, 48(4): 629–645.

에르귈의 논문은 로마Rum이라는 정체성이 오스만 통치계층 전반에 퍼져있었음을 지적한다. 우선, 오스만 제국 통치계층은 튀르크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튀르크는 도시에 거주하지 못하는 계층을 일컫는 비속어로 사용되었다. 또한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이 로마를 계승했다는 정체성과 배타적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에르귈은 그러면서, 오스만 제국에서 로마인은 그리스 정교도라는, 제국의 2등 신민을 일컫는 말이라는 편견도 옳지 않음을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룸이라는 표현은 그리스 정교회 신민을 일컫는 명칭인 동시에, 지배 계층이 자신들의 ‘향유하는 문화’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요컨데, ‘위대한 나라Devlet-i ʿAlīye(오스만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부르는 호칭들 가운데 하나)’는 로마 제국에 사는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무슬림 로마인의 것이자 그 보편적 정치체 속에 있는 많은 문화의 합성체를 의미했다.”

이 논문은 부흥카페의 라리사 님께서 “오스만의 정체성: 튀르크, 무슬림 혹은 로마?”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을 해주셨다.

Moustakas, Konstantinos (2015). “The myth of the Byzantine origins of the Osmanlis: an essay in interpretation.” Byzantine and Modern Greek Studies, 39.1: 85-97.

이 논문은 오스만 가문의 기원이 비잔틴에 있다는 기록들에 대해 다루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스만 제국의 쿨로 편입된 비잔틴 출신들은 서로의 출생에 따라 오스만 가문의 기원을 스스로의 처지와 유사하게 설정한 전설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들 비잔틴 출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첫번째는 비잔틴 귀족 출신으로, 관료 계층에 편입된 자들이다. 둘째는 데브시르메를 통해 징집된 기독교도 농민 출신으로, 이들은 대부분 예니체리가 되었다. 따라서, 오스만 가문의 기원이 비잔틴에 있다는 기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오스만이 콤니노스의 후예라는 것이다. 이 기록은 가짜 스프란치스Pseudo-Sphrantzes의 《대연대기Chronicon Majus》, 프란치스코 산소비노Francesco Sansovino의 《터키 연대기Annali Turcheschi》 등에서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의 조카이자 안드로니코스 1세의 형제, 세바스토크라토르 이사키오스 콤니노스의 아들, 요안니스 콤니노스에게서 시작된다. 소아시아 원정에 종군하던 요안니스는 어떤 음해를 당했고, 셀주크로 망명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술탄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요안니스의 아들이 카메르로, 후일 쉴레이만 샤Σιάχ Σουλεϊμάν로 불리었다. 이러한 기록은 비잔틴 귀족 출신의 개종자들에게서 널리 퍼져있던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오스만의 조상이 미천한 농민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조반니 마리아 안지오렐로Giovanni Maria Angiolello의 《터키사Historia Turchesa》와 콘스탄틴 미하일로비치Konstantin Mihailović의 《예니체리의 회고록Turska istorija ili kronika》에 기록되었는데, 아마 예니체리 사이에서는 널리 퍼진 이야기였던 것 같다. 예니체리들은 이를 통해 오스만 황제와 자신의 처지를 유사하게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은 두카스가 기록한 메헴메드 1세의 충신이자 대재상, 알바니아 출신의 바예지드 파샤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오스만 왕조는] 수 많은 나라 가운데 가장 초라한 곳이었다... 그들을 번영하게 만든 것은 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여러분이었다... 우리가 바로 오스만의 진정한 후예이므로,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미하일로비치는 그 자신이 예니체리였고, 안지오렐로는 오스만 궁정과 군대에서 쿨의 일원으로 잠시 봉직했었다.

Anooshahr, Ali (2017). “İdris-i Bitlisi’nin Heşt Bihişt’inde Osmanlı’ya Dair Efsanenin Yaratılması ve Tarih Yazımı.” Osmanlı Araştırmaları, 50: 1-28.

Anooshahr, Ali (2018). “The Early Ottomans in Idris Bitlisi's Hasht Bihisht.” Turkestan and the Rise of Eurasian Empires: A Study of Politics and Invented Tradi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28-55.

아누샤흐르의 논문은 바예지드 2세의 후원으로 이드리스 비틀리시가 지은 《여덟번째 천국Hasht Bihisht》에서 보이는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에 대해 다루었다. 그의 단행본 《투르키스탄과 유라시아 제국의 탄생: 정치와 만들어진 전통에 대한 연구》에 수록된 글은 그 전해에 터키 이슬람학 센터의 《오스만 연구》에 게제된 터키어 논문의 영문판이다. 그의 단행본은 온라인에서 볼 수 없으나, 터키어 논문은 무료로 열람 가능하다.

이드리스 비틀리시의 서술에 비추어 해석하면, 오스만 제국의 정체성은 오스만 왕가의 정체성과 별개의 것이었다. 오스만 왕가는 중앙유라시아 튀르크에 그 근원을 두었지만, 오스만 제국은 로마 제국에 그 근원을 두었다. 이드리스는 오스만 황제, 메헴메드 2세와 바예지드 2세를 로마 제국의 진정한 후계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추종자로 묘사했다. 이드리스의 이와 같은 서술은 오스만 궁정의 로마화 경향을 보여준다. (오스만 제국에 있어 루멜리 지역이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바예지드 2세의 치세 말기들어 변화했다. 이 시기에 사파비조에 내응한 반란 등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아들 셀림 2세와 쉴레이만 대제의 시대에 오스만 제국이 히자즈 등 이슬람 세계의 성지를 정복하고 순니파의 챔피언으로써 자리잡음에 따라 오스만 제국의 로마성은 더욱 축소된다. 이후 오스만 세계에서 로마, 즉 룸이라는 말은 지리적 개념으로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스만인들에게 그 동쪽(특히 사파비조)에 대해 튀르크, 타타르 또 외국ajam이었고, 그에 대비되는 오스만 제국의 영역은 루미Rumi, 즉 로마였다.

도판: Gennadios Scholarios with Mehme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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