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마제국4

로마 관념의 확산 초기 로마 제국은 진정으로 다족류적(multiethinic, 多族類的)이었다. 그러나 212년 [안토니누스 칙령(Constitutio Antoniniana)] 이후, 제국의 모든 자유민은 로마 시민이 되었고, 로마시와 이탈리아는 권력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상실했으며, 심지어 로마시라는 관념마저 지방으로 옮겨졌다. 후기 고대(late antiquity)의 클리셰를 인용하자면, 도시(urbs)는 세계(orbs)가 되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자신이 세운 도시에 이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많은 지방 도시들이 신로마(New Rome)이라고 불리었고, 그 주변의 세계는 로마인의 땅(Romanía)이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방 인구들은 로마의 규범적인 질서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로마인을 칭하기 시작했.. 2023. 2. 19.
오스만 제국의 즉위 의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군주의 권력은 단순히 그들이 지휘하는 군대와 관료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권력은 왕조와 그 신민들, 그리고 기타 유력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중앙과 지방 모두에서 끊임없이 벌어진 협상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군주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신민들에게 일상적으로 상기시키려고 조심스럽고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오스만 파디샤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스만 군주들은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통성 확보의 도구를 사용했다. 왕조의 생애 주기의 각 단계를 공식적으로 축하하는 것은 물론이요, 자선을 그 자신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사용했다. 이 글에서는 왕조의 생애 주기를 공식적으로 축하하는 행사들 가운데 그 군주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법한 .. 2019. 6. 16.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 관련 연구들 Fodor, Pál (2015). “Byzantine Legacies in Ottoman Identity.” in Barbara Kellner-Heinkele and Simone-Christiane Raschmann (eds.). Opuscula György Hazai Dicata: Beiträge zum Deutsch-Ungarischen Workshop aus Anlass des 80. Geburtstages von György Hazai. Klaus Schwarz Verlag: 93-108.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에 대한 연구사와 현재의 중론에 대해 정리한 에세이다. 연구사적 부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로마 계승성에 대한 연구가 역사가 깊으며, 최근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음을 보였다. 현재 .. 2019. 5. 12.
스틸리코의 몰락 Wijnendaele, Jeroen WP (2018). “‘Dagli altari alla polvere.’ Alaric, Constantine III, and the downfall of Stilicho.” Journal of Ancient History 6.2: 260-277. 콘스탄티누스 3세의 반란을 방기한 결과 알프스 이북을 상실했고, 이것이 스틸리코의 죽음을 야기했다는 종래의 설에 반박하는 논문이다.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콘스탄티누스 3세의 위협은 과장되었다. 스틸리코는 일리리쿰 동부를 합병할 생각이 없었다. 스틸리코는 이미 콘스탄티누스를 격파할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 알라리크의 역할을 잘못 이해되고 있다. 1. 반역향 브리튼 브리튼 섬은 4세기 들어 서로마 궁정에서 점점 멀어.. 2019.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