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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안울루스3

티모시 브룩,《하버드 중국사 원·명》 티모시 브룩 (2014).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 조영현 옮김. 너머북스. 568쪽. Brook, Timothy (2010). The Troubled Empire: China in the Yuan and Ming Dynasties (History of Imperial China 5). Harvard University Press. 329 pages. 2016년 초에 《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을 읽었다. 이때 적은 “초기 근대 제국으로서의 오스만 국가”는 내 나름대로 정리한 《하버드 중국사 청》의 독후감인 셈이다. 사실 당시에 내가 관심을 가지던 부분은 ‘몽골 후계 제국’으로써의 ‘유라시아 육상제국들’이었는데, 《하버드 중국사 청》을 읽은 덕분에 글의 흐름이 좀 많이 .. 2019. 8. 9.
몽원 제국과 북중국의 몰락 들어가며 초기 몽골 제국의 정복에 대해서는 ‘초원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시각이 많다. 특히 북중국의 쇠퇴에 대한 서술은 더더욱 그렇다. 요수[姚燧]의 《목암집》[牧庵集]에 따르면, “금의 정우 연간(1213년 ~ 1216년)부터 하삭[河朔] 지방은 20년 동안 교전 상태가 지속되었고, 주민 10 중 7은 도망자였다.” (愛宕松南 , 2013: 86에서 재인용) 이런 상은 몽골이 북중국을 가축을 기를 수 있는 평원으로 바꿀 계획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야율초재 열전에 따르면, 칭기스 칸[太祖]의 치세 중에는 서역 정벌에 몰두해서 중원을 다스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한지[漢地]의 관리는 거의 모두 민으로부터 취렴하여 사복을 채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결과, 그들의 재산은 엄청난 숫자를 .. 2019. 7. 24.
서하 멸망 후 탕구트 사람들 서하가 멸망할 때 칭기스 칸의 유언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학살당한 것은 분명하나, 종족이 절멸된 것은 아니였습니다. 많은 탕구트 사람들은 살아남아 대원제국을 위해 일했죠. 그들의 지위 역시 나쁘지 않았는데, 그들은 주르첸이나 키타이 사람들보다 우대받았습니다. 중국 중부에는 탕구트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규모의 마을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명말까지 그곳에서 자신들의 문자를 사용하며 살았다고 하네요. 1343년 승려 덕성(德成)이 몽골고원으로 향하는 도로에 있는 거용관(居庸關)에 과가탑(過街塔)을 세웠습니다. 그는 그곳에 《다라니경(陀羅尼經)》의 구절들 중 여행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문구를 뽑아 위구르, 파스파, 한문, 산스크리트, 티베트, 서하 문자로 세겼죠. 이를 볼때 대도를 오가는 탕구트 사람이 적.. 2019.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