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가 멸망할 때 칭기스 칸의 유언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학살당한 것은 분명하나, 종족이 절멸된 것은 아니였습니다. 많은 탕구트 사람들은 살아남아 대원제국을 위해 일했죠. 그들의 지위 역시 나쁘지 않았는데, 그들은 주르첸이나 키타이 사람들보다 우대받았습니다. 중국 중부에는 탕구트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규모의 마을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명말까지 그곳에서 자신들의 문자를 사용하며 살았다고 하네요.
1343년 승려 덕성(德成)이 몽골고원으로 향하는 도로에 있는 거용관(居庸關)에 과가탑(過街塔)을 세웠습니다. 그는 그곳에 《다라니경(陀羅尼經)》의 구절들 중 여행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문구를 뽑아 위구르, 파스파, 한문, 산스크리트, 티베트, 서하 문자로 세겼죠. 이를 볼때 대도를 오가는 탕구트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탕구트 사람들은 원대에 관직으로도 열심히 진출했습니다. 제국 내의 다른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다루가치로 임명되기도 했고, 다른 직위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예컨데 양 도르지라는 탕구트 출신의 사람은 제국의 검열관들을 총괄하는 직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탕구트 사람들은 예술에도 종사했는데, 황가의 사람들은 신년이 되면 중국, 무슬림, 탕구트 음악가들을 불러와 노래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네요.
탕구트 사람들은 군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뭉케 카안은 남송 원정에서 휘하의 몽골군을 좌우 양익으로 편성했는데요, 그는 양익 중 우익을 지휘했습니다. 이 군단은 여러 제왕, 대신들 휘하의 군대 이외에도 키타이, 탕구트, 주르체, 솔랑가 등의 집단에서 차출된 자우쿠트 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쿠빌라이 카안은 중앙아시아에 북평왕(北平王) 노무간을 위시한 몽골 기마군단을 주력으로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이 군단 역시 킵착, 아스, 캉글리, 탕구트 등의 여러 종족 출신 부대들을 포함하고 있었죠. 쿠빌라이는 수중에 병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권 확립 이후에 이들을 카안 직속의 상비군인 동시에 특수친위부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 군단은 그 기대에 부응해, 지위에 있어서는 몽골 군단보다 낮았지만, 전투의욕과 충성심은 그들보다 나았다고 하네요.
서하의 왕족들도 완전히 멸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티베트 북부나 쓰촨 성 서부로 이주했고, 몇몇은 인도 북부까지 나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촌락이나 불교 시설의 지도자가 되었죠. 서하의 왕족들 중 이항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는 몽골제국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본래 카사르 왕가의 화북투하령을 다스렸습니다. 쿠빌라이가 아릭 부케와 제위 경쟁 중이었을때 쿠빌라이 휘하의 한인 군벌 이단(李壇)이 쿠빌라에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일이 있었는데, 남송 원정에서 쿠빌라이는 이단 휘하의 2만을 모아 익도신군으로 편성했습니다. 이항은 이들을 이끌고 활약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항은 승승장구해, 꽤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다고 하네요.
참고문헌
김호동.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인쇄물.
김호동. “팍스 몽골리카.”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파주: 돌베개, (2010): 135-194. 인쇄물.
스기야마 마사아키. 《몽골 세계제국》. 서울: 신서원, (2004). 인쇄물.
Herbert Franke and Denis Twitchett, et. al.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vol. 6.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Print.
도판
술라이만 비문의 탁본: 1348년, 술라이만이 둔황 막고굴의 한 절에 기부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비문이다. ‘옴 마니 파드메 훔’이 6개의 문자로 새겨져있다. 술라이만은 테무게 옷치긴의 후예로, 1329년에 서녕왕西宁王으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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