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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칭기스조 제자 울루스 부족 구성

by hanyl 2019. 5. 24.

몽골 제국이 이전의 유목 제국들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탁월한 동화력이라 생각한다. 탕구트(서하), 키타이(거란), 알란, 킵차크 등 본래 몽골과 구분되던 다양한 기원을 지녔던 종족들은, 몽골 제국 이후 칭기스조의 지배를 받는 부족들로 변화했다. 《원사元史》에 소개된 칭기스 칸의 발언에도 이와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난다. 거란의 수령이던 야율류가(耶律留哥)가 죽었을때 그의 미망인(후처[後妻])이 칭기스 칸을 찾아가 칭기스칸을 시위(侍衛)해오던 전처(前妻) 소생의 설도(薛闍)로 하여금 아버지의 자리를 잇게 하고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대신 시위의 일을 맡도록 해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칭기스 칸은 “설도는 이미 몽골인이 되었다. 그는 짐을 따라 서역에 원정하였다”라고 하면서 후처의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직책을 잇게 하였다.(폴 라츠네프스키, 1992: 247, n. 235)

이런 면에서, 토마스 올슨 교수는 포스트 몽골 시대 중앙유라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이슬람-튀르크와 불교-몽골를 구분한 것은 옳지 않다. (Allsen, 2015: 162-63) 몽골 제국기 이후 중앙유라시아 튀르크어 화자 유목민들이 가졌던 튀르크 정체성은 몽골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이주엽, 2016a) 예를 들어, 북원의 몽골인들은 언어와 종교가 같은 오이라트 연맹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지녔다고 판단했지만, 언어나 종교가 각각 튀르크어와 이슬람으로 달랐던 주치 울루스나 차가타이 울루스에 대해서는 몽골인 동족으로 인식했다. (이주엽, 2016b) 

참고문헌

이주엽 (2016a). “The Historical Meaning of the Term Turk and the Nature of the Turkic Identity of the Chinggisid and Timurid Elites in Post-Mongol Central Asia.” Central Asiatic Journal, Vol. 59, No. 1-2, Migration and Nation-Building in Central and Western Asia: Turkic Peoples and Their Neighbours (I): 101-132.

이주엽 (2016b), “Were the historical Oirats “Western Mongols”? An examination of their uniqueness in relation to the Mongols,” Études mongoles et sibériennes, centrasiatiques et tibétaines, Onlinehttp://emscat.revues.org/2820

폴 라츠네프스키 (1992), 《칭기스칸: 그 생애와 업적》, 김호동 옮김, 지식산업사.

Allsen, Thomas T. (2015). “Eurasia after the Mongols,” in Jerry H. Bentley, Sanjay Subrahmanyam and Merry E. Wiesner-Hanks, eds., The Cambridge World History Volume 6: The Construction of a Global World, 1400–1800 CE, Part 1: Foundati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9 - 181.

Biran, Michal (2012), “Kitan Migrations in Eurasia(10th-14th Centuries),” Journal of Central Eurasian Studies, vol. 3: 85-108.

Özaydın, Abdülkerim (1997). “Hârizm.” TDV İslâm Ansiklopedisihttps://islamansiklopedisi.org.tr/harizm


서하 멸망 후 탕구트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