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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유승훈, 『부산의 탄생』

by hanyl 2020. 12. 28.

유승훈. 2020. 『부산의 탄생: 대한민국의 최전선에서 거센 물살을 마중한 도시』. 생각의힘.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자랐다. 하지만, 부산의 많은 부산사람들이 그렇지만, 애초에 부산에 오래 뿌리박고 살아온 집안은 아니다. 한국 전쟁 시기 부산에 처음 할아버지가 정착했다고 알고 있고, 이후 할아버지를 따라 다른 가족들도 부산으로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중국집인지, 냉면집에서 일했다고 하고, 얼마 뒤, 책 초반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판자집인지를 짓고 팔면서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전쟁부터 시작하는 『부산의 탄생』이 좀 더 각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책의 구성은 꽤 신선하다. 과거 시점부터 현재로 오는게 보통이겠지만, 『부산의 탄생』은 반대로 현대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상이다. 서술의 범위는 정치와 문화부터 경제까지 다양하게 훑는 편이다.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고 느꼈다. 책에서 서술된 모든 대상은, 사람과 문화를 가리지 않고 대체로 좋게 나온 것 같다. 문체는 학술서처럼 마냥 딱딱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각주는 상당히 꼼꼼히 달려 있기 때문에 출처 확인은 용이했다. 또한 시각 자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서술 대상이 된 시기를 배경으로 하거나 그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 등을 다양하게 인용하고 활용한 점도 칭찬할만 하다.

하지만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대한민국의 최전선에서 거센 물살을 마중한 도시”라는 부제에서도 예상할 수 있지만, 부산이란 틀을 통해 한국사를 톺아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자주 인용한 『만세전』의 한 단락이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 그러니만큼 부산만 와 봐도 조선을 알 만하다. 조선을 축사縮寫한 것, 조선을 상징한 것이 부산이다. 외국의 유람객이 조선을 보고자거든 우선 부산에만 끌고 가서 구경을 시켜주면 그만일 것이다. 나는 이번에 비로소 부산의 거리를 들어가보고 새삼스럽게 놀랐고 조선의 현실을 본 듯 싶었다.”[본문 239쪽에서 재인용. 염상섭 지음, 최원식 등 엮음, 『20세기 한국소설 2, 염상섭 ─ 전화, 만세전, 양과자갑, 두 파산』 (창비, 2016), p.112]

단점이 없지는 않다. 책 전체로 보았을때는 지엽적인 부분이지만 동의하기 힘든 시각이 몇가지 있다. 역개루 카페의 PKKA 님이 지적하신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학생시위에 대한 서술(본문 329-30쪽)이 그런 예시 가운데 하나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조선의 대비에 대한 서술(본문 373-74쪽)도 상당히 널리 퍼진 조선에 대한 부정적 시각만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듯 보인다. 또 책의 분량이 530쪽이나 되고 다루는 범위도 넓은 만큼 책의 마지막에 “맺는글”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편집도 대체로 예쁘고 깔끔하게 잘 나왔지만, “찾아보기”가 포함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총평하자면 『부산의 탄생』은 좋은 역사책이라 생각한다. 부산이라는 한 지방의 역사를 파악하기도 좋지만, 부산을 렌즈로 삼아 조선 이후 한국사를 바라보는 방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지방사’ 책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본 책들은 시각과 편집이 거친 면이 다소 있었는데, 이 책은 그렇지도 않다. 서평 이벤트에 선정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