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마리 파브로, 『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세계를 뒤흔든 호르드의 역사』, 김석환 옮김 (서울: 까치글방, 2022), 487쪽, 25,000원.
Marie Favereau, The Horde: How the Mongols Changed the World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2021), vi+378 pp., $29.95 (hardcover); $18.95 (paperback).
원서의 제목은 The Horde인데, 이는 책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준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몽골 제국의 정치적 구조를 설명할때 주로 사용되는 ‘울루스(ulus)’는 “군주와 그의 모든 복속민들, 모두를 포함”한 “독립적인 정치 공동체”를 의미한다. 반면 저자가 제목으로 채용한 ‘오르다/오르도/오르두(orda/ordo/ordu)’는 “군대이자 권력의 장소였고, 한 통치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큰 야영지”를 가리키는 말, 즉 “더욱 정확히는 유목적 정권 또는 권력”이라는 뜻이었다. 20세기 학자들은 몽골 제국의 대형 울루스들을 ‘칸국(khanate ← 페르시아어 khānāt)’라고 불렀는데, 이는 “칸의 지위를 강조했던 것”으로, 저자가 보기에 “몽골 사회의 권위가 가지는 분산적인 성격을 감안한다면, 유목 권력 집단을 묘사하는 데에는 ‘오르도’ 또는 ‘울루스’ 같은 용어가 ‘칸국’보다 더욱 유용하다.” (본문 18-21쪽)
그런데 조치의 후예들이 다스린 정치체, 예전 같이 표현하면 ‘킵차크 칸국’, 요즘식으로 적으면 ‘조치 울루스’에 속했던 사람들은 스스로가 ‘대 오르다(ulu orda)’에 속했다고 여겼다. 예컨데 ‘일명’ 크림 칸국의 메흐메드 기레이(Meḥmed Girāy, 재위 1514-23년)은 외교문서에서 스스로를 “대 오르다와 킵차크 초원, 모든 몽골인의 대칸, 황제 메흐메드 기라이 칸(ulu ordanung ulu ḫanï Dešt-i Ḳīpčāḳ barča Moġul pādšāhï Meḥmed Girāy Ḫan)”라고 칭했고(이주엽 2020: 169; 이주엽 2021: 53), 이러한 칭호 사용은 17세기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Kołodziejczyk 2011: 10-11). 한편 14-15세기 루시 지방의 연대기들은 ‘조치 울루스’를 “큰 오르다(Bol'shaya Orda)” 내지 “대(大) 오르다(Velikaya Orda)”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14세기 공문서에서 등장하는 “대(大) 울루스(Uluk Ulus)”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Collins 1991: 361-62 n.1), ‘조치 울루스’인들의 관행을 루시 사람들이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저자 마리 파브로 선생님께서 제목으로 ‘호르드(The Horde)’를 채용한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책을 옮기신 김석환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몽골의 세계사적 의의를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고찰하기 위해서 ‘몽골의 교환’이라는 역사 현상을 재구성하고, 몽골 제국을 총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전체론’의 관점을 채택하면서도 주치조 정권의 특수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본문 480쪽)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판의 제목 『말 위의 개척자, 황금 천막의 제국: 세계를 뒤흔든 호르드의 역사』도 조금 길기는 하지만 원제 “호르드: 몽골인들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The Horde: How the Mongols Changed the World)”에 담겨 있는 저자의 의도를 한국 책 시장의 사정에 맞추어 잘 반영하기 위해 옮긴이와 출판사가 고심해서 내놓은 타협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이 그런 지은이의 포부에 걸맞는 성과를 거두었느냐고 한다면, 훌륭하게 완수했다고 평하고 싶다. 우선 책은 시대순으로 편성되어 있고, 각 장의 내용은 시대의 주요한 정치적 흐름을 서술한 뒤 각 시기의 특징적인 변화를 주제에 따라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된다. 조치 울루스 자체적으로 작성된 사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몽골 제국 내지 호르드의 시각으로 역사적 연대기를 재구성하는 그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연대순에 따른 서술의 뒤에는 오르도의 이동, 호르드의 도시화, 상업, 날씨, 종교 등 다양한에 대해서 정밀하게 복원하고 있는데, 이게 또 읽는 맛이 좋다. 러시아어, 라틴어, 튀르크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아르메니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1차 사료를 분석하는 마리 파브로 선생님이 가진 탁월한 학자적 기량과 복잡한 내용을 세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풀어내는 이야기꾼 능력을 잘 보여주는 바이다.
물론 내가 이런 마리 파브로 선생님의 저작을 100%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옮긴이 김석환 선생님의 정확한 번역에 있을 것이다. 김석환 선생님은 최근 발표하신 연구 「‘제국적 제도’로서의 차가타이 울루스 명령문제도 연구」(『몽골학』 69, 2022), 「알 탐가와 알툰 탐가를 통해 본 훌레구 울루스의 印章制度」(『역사문화연구』 79, 2021), 「게이하투 칸 시기 훌레구 울루스 命令文制度의 변화: 1293년 命令文의 분석을 중심으로」(『동양사학연구』 150, 2020), 「몽골제국 초기 勅令制度의 형성과 그 특징」(『중앙아시아학회』 24.2, 2019), 「몽골제국 시기 카안 울루스 勅令制度의 형성과 발전」(『중국학보』 90, 2019)에서 보이듯, 몽골 제국의 ‘제국적 제도’라 할 수 있는 명령문 제도의 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보여주고 계신다. 즉, 몽골 제국의 하나의 전체로 보는 ‘전체적 관점’과 몽골인들의 눈으로 보는 ‘몽골적 관점’을 중시하는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한 기량을 이미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김석환 선생님의 번역도 훌륭했겠지만, 여기에는 출판사 까치의 공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선생님의 『비잔티움의 역사』(서울: 도서출판 더숲, 2023)을 번역하면서 느낀 것은 좋은 문장과 정확한 번역에 있어 출판사 편집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2021년 더숲 출판사에 보낸 초벌 번역이 그대로 인쇄되어서 판매되었다면, 아마 나는 영원히 살 수 있었으리라. 까치 출판사의 경우는 디자인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이 책이나 오가사와라 히로유키, 『오스만 제국: 찬란한 600년의 기록』(노경아 옮김, 서울: 까치, 2020)의 경우로 보건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책은 원서의 디자인을 그대로 구매해온 듯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디자인도 이제 까치가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한데, 많은 분들에게는 꽤 고무적이지 않을까 싶다. (뱀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전적인 까치의 디자인도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자잘한 오탈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예컨데 42-43쪽의 지도의 “진 제국”은 “금 제국”으로 수정이 필요하다. 루시의 대공(후) 및 공후에 대한 번역어는 오락가락하며, 일부는 왕자로 표기하기도 했는데(본문 178쪽, 246-47쪽. 185-86쪽에서는 공국/공작/대공 등으로 표기), 통일이 필요하다. 본문 265쪽의 “노가이는 일칸조를 받아였기 때문에 바이바르스의 호의를 얻을 수가 없었고”는 “노가이는 일칸조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바이바르스의 호의를 얻을 수가 없었고”로 수정이 필요하다. 393쪽의 “하지 타르칸이 알려지게 되면서 아스트라한이 수 세기에 걸쳐 계속 발전했으며”는 “나중에는 하지 타르칸으로 알려지게 될 아스트라한은 수 세기에 걸쳐 계속 발전했으며”로 고쳐야 한다. 400쪽의 “기라이와 자니베크는 후에 킵차크 초원을 정복했고 16세기 초에 이 사람들은 카작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현대 카자흐인 사이에서도 남아 있는 이름이다”는 “기라이와 자니베크는 후일 킵차크 초원을 정복했고, 16세기 초가 되면 이들의 무리는 카자크인(Qazaqs)라 알려지게 되었으며, 오늘날 카자흐라는 민족명은 여기서 나왔다(Kiray and Janibek later conquered the Qipchaq steppe and,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their peoples became known as Qazaqs, a name that endures among the modern Kazakhs. 원서 p. 294)”가 더 정확한 번역이다. 2쇄에서는 이런 사항들이 수정되길 기대한다.
글을 마치며 정리하자면, 훨씬 더 많이 연구된 훌레구 울루스나 카안 울루스에 비해 “마치 장막 뒤에 있는 것”(본문 7쪽) 같은 호르드, 조치 울루스 역사라는 표현은, 마리 파브로 선생님 자신의 책으로 과거의 표현이 된 것 같다. 전에 찰스 핼퍼린의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권용철 옮김, 서울: 글항아리, 2020)을 읽고 조치 울루스 자체의 역사에 대한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 오히려 마리 파브로 선생님이 연구가 많이 되었다고 적은 훌레구 울루스는 이렇게 편하게 읽을 통사적 연구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이건 어떤 선생님이 해결해주실까….
참고 문헌
이주엽. 2020. 『몽골제국의 후예들: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서울: 책과함께.
Kołodziejczyk, Dariusz. 2011. The Crimean Khanate and Poland-Lithuania. Leiden: Brill.
이주엽. 2021. 「몽골 제국과 포스트 몽골 시기 중앙아시아와 킵차크 초원에서의 투르크 정체성」, 최하늘 옮김,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러시아 『유라시아 지역의 문화 혼종성과 상호 문화주의』. 서울: 민속원: 20-69.
Collins, Leslie. 1991. “On the Alleged “Destruction” of the Great Horde in 1502”, in Anthony Byrer and Michael Ursinus, eds., Manzikert to Lepanto: The Byzantine World and the Turks 1071-1571. Amsterdam: Adolf M. Hakkert: 361-99.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톰 홀랜드, 『이슬람 제국의 탄생』 (0) | 2023.11.06 |
---|---|
카야 샤힌, 『술탄 쉴레이만의 삶과 시대』 (0) | 2023.03.18 |
마틴 래디,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0) | 2022.09.03 |
제러미 블랙,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1) | 2022.07.08 |
미야자키 이치사다, 『중국중세사』 (0) | 2022.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