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핼퍼린 (2020).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권용철 옮김. 글항아리. 358쪽. 20,000원.
Halperin, Charles J. (1985). Russia and the Golden Horde: The Mongol Impact on Medieval Russian History. Indiana University Press. xii + 180 pages.
몽골지배기 루시 지역과 모스크바 국가의 초기 발전에 대한 영어권의 대표적인 연구서로는 3권이 있다. 출간일 순으로 적으면, 첫째는 게오르기 블라디미로비치 베르나츠키(Гео́рг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Верна́дский, George Vladimirovich Vernadsky)의 The Mongols and Russia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3)이고, 그 다음은 찰스 핼퍼린(Charles J. Halperin)의 Russia and the Golden Horde: The Mongol Impact on Medieval Russian History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1985)이며, 마지막은 도널드 오스트로우스키(Donald Ostrowski)의 Muscovy and the Mongols: Cross-Cultural Influences on the Steppe Frontier, 1304-1589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이다. 이 가운데 처음 언급한 베르나드스키의 책은 앞선 2016년 《몽골 제국과 러시아》( 김세웅 옮김, 선인)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오스트로우스키의 책은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
이번에 소개할 핼퍼린의 책은 바로 Russia and the Golden Horde의 한국어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판의 제목,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은 조금 아쉬운 번역이다. 책의 내용을 검토해볼때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는데, 1부라 할 수 있는 1장과 2장은 몽골 이전 루시 사회와 유목민의 교류를 다루고 있다. 두번째 부는 3장과 4장으로, 각 몽골제국 내에서 조치 울루스와 조치 울루스의 루시 지역 통치를 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 부는 5장부터 10장까지로 각각 몽골 지배기의 루시 정치, 몽골에 대한 루시 사료의 시각, 경제, 모스크바 국가의 정치 사상, 사회, 문화의 분야를 다루고 있다. 11장은 결론이다. 즉, 책의 내용은 조치 울루스보다는 그것이 루시 사회 그리고 모스크바 국가에 미친 영향에 대해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책의 주장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는 몽골 침공이 매우 복합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을 예로 들어보자. 우선 루시 세계에서도 지역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달랐다. 어떤 도시는 공성전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되었던 반면 다른 도시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계층으로 나누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루시 농민들은 몽골 침공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겠지만, 귀족이나 교회는 몽골과 그 교역망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재산을 손에 넣었다. 이런 복합적인 상은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측면에서 관찰된다.
그렇다면 왜 몽골의 루시 정복과 통치는 절망적일정도로 부정적인 인상으로 가득한가? 이것이 책의 두번째 주제이다. 핼퍼린은 ‘침묵의 이데올로기’란 가설을 제시한다. 루시 작가들은 몽골이 루시 세계를 정복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부인해버렸던 것이다. 물론 루시 사가들은 몽골의 정복과 그들의 지배로 인한 고통을 생생하고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고통을 바투의 원정과 인과적으로 이어져있지 않다는 양 행동했다. 만약 이를 다뤄야한다면, 이들은 몽골과의 관계를 종교적 전쟁으로 가장했다. 이 과정에서 실용적인 조건으로 때로는 외교와 통상 관계를 맺다가도 때로는 전쟁을 벌이던 복합적인 관계는 기록의 이면으로 감추어졌다. 18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이 서구화를 경험하고 제국으로 커가며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가 역사연구에 투사되기 시작했고 몽골지배기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부정적으로 고착화되었다. 핼퍼린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서구학계와 소련학계, 모두가 몽골 지배기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침묵의 이데올로기’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자신은 이를 종합했다고 적었다. (본문 142-43쪽, 162-63쪽, 그리고 6-7쪽; ‘침묵의 이데올로기’란 표현은 ‘공식적 침묵’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Allsen, 2010: 135 그리고 144)
핼퍼린은 원사료들을 철저히 해부하며 몽골 지배기 루시 세계의 모습을 복원해나간다. 책을 덮을 무렵이 되면 모스크바 국가가 몽골 제국에게서 얼마나 많은 제도와 이념을 빌려왔었는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책의 3번째 주제이다. 핼퍼린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러시아의 발전에 끼친 킵차크 칸국의 영향은 분명히 매우 컸다. 정복으로 인한 파괴는 예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킵차크 칸국에 의해 신중하게 육성되어 훗날에 나타난 풍부한 교역의 중요성도 측정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몽골의 후원 아래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재산, 영향력의 측면에서 거대하게 성장했다. 모스크바의 흥기와 러시아의 통일에 있어 킵차크 칸국의 정확한 역할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모스크바 공국이 권력을 강화하면서 훗날 팽창하는 과정에 타타르의 수많은 제도를 활용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간단히 말해서 중세 러시아에 끼친 몽골의 영향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 강력했다.” (본문 273-74쪽)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단, 나는 원서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저자의 오류와 역자의 오류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겠다) ‘우랄알타이족’(61쪽)이나 티무르가 칭기스 혈족을 자칭했다는 서술(75쪽)은 예전 책이라서 나올 수 있는 오류이다. 특히 티무르의 경우는 1987년에 발간된 데이비드 모건(David Morgan)의 Medieval Persia 1040-1797에서도 나온 것임을 생각하면, 아마 당시 중앙유라시아학계에 널리 퍼져 있던 오류로 보인다. 몽골인이 튀르크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77쪽의 서술도 오류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주엽, 2020: 37-40 그리고 42-43 참고). 조치 울루스의 행정 체계를 너무 물샘틀 없는 것으로 여기는 4장의 서술도 아쉬웠다. 최근에는 이같은 인상을 눈속임으로 파악하고 있다. 6장에서 루시 사가들의 ‘침묵의 이데올로기’가 성립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다른 울루스들과 달리 조치 울루스의 지배층들은 유목생활을 지속했기 때문이라 주장했는데, 사실 다른 울루스의 통치자들도 유목생활을 지속했다 (이에 대해서는 김호동, 2002; 桝屋友子, 2013; Biran, 2013 참고). 또한 책은 전반적으로 ‘루시’와 ‘중세 러시아’를 동일한 개념처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책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모스크바 국가와 러시아 제국에 미친 영향임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나, 중세 루시는 동슬라브인들이 오늘날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로 분화되기 이전임(박지배, 2018: 49-55)으로 ‘루시’와 ‘러시아’를 구분하여 설명한 각주가 있었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핼퍼린은 Russia and the Golden Horde가 발간되기 1년 전인 1984년 학계를 떠나 컴퓨터 산업에 뛰어들었다. 1946년생이니 40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였는데, 학자라기에는 너무 어리고, 새출발을 하기에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택에 대해 굉장히 의아하다고 여겼는데, 이 책을 읽으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핼퍼린은 자신이 이미 러시아사학계에서 길이 인용될 고전을 만들어내버린 것을 깨달았던게 아니었을까. 정말 다행이게도, 핼퍼린은 1996년 독립 연구자로 학계에 돌아왔고, 이후 활발한 연구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Vásáry, 2010: 287)
이주엽, 《몽골제국의 후예들》
이주엽, Qazaqlïq, or Ambitious Brigandage, and the Formation of the Qazaqs
Dale, The Muslim Empires of the Ottomans, Safavids, and Mughals
Streusand, Islamic Gunpowder Empires
차르 권력의 기원, 포메스티예
몽골 제국과 루시 그리고 러시아의 탄생
* 2020년 6월 5일 구매. 6월 5일부터 6일까지 일독. 6월 22일 기록.
참고문헌
김호동 (2002). “몽골제국 군주들의 양도순행과 유목적 습속.” 《중앙아시아연구》, 7: 1-26.
박지배 (2018). “모스크바국의 역사 편찬과 ‘러시아’ 만들기: 종교 · 문화적 충돌의 관점에서.” 《역사문화연구》 제67집: 41-78.
이주엽 (2020). 《몽골제국의 후예들: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책과함께.
Allsen, Thomas (2010). “몽골제국사 회고와 전망.” 유관훈 옮김. 《외국학계의 정복왕조 연구 시각과 최근 동향》. 동북아역사재단: 127-46 (도서 전체를 동북아역사자료센터에서 다운로드 가능)
桝屋友子 마스야 토모코 (2013). “Seasonal Capitals with Permanent Buildings in the Mongol Empire,” in D. Durand-Guédy, ed., Turco-Mongol Rulers, Cities and City Life. Brill: 223-56.
Biran, Michal (2013). “Rulers and City Life in Mongol Central Asia (1220-1370),” in D. Durand-Guédy, ed., Turco-Mongol Rulers, Cities and City Life. Brill: 257-83.
Vásáry, István (2010). “Halperin On Russia and The Golden Horde: Charles J. Halperin, Russia and the Mongols: Slavs and the Steppe in Medieval and Early Modern Russia. (Romanian Academy, Institute of Archaeology of Iaşi. Ed. Victor Spinei and George Bilavschi) Bucharest: Editura Academiei Româna, 2007, 327 pp. ISBN 978-973-27-1619-9; Charles J. Halperin, The Tatar Yoke: The Image of the Mongols in Medieval Russia, Corrected Edition. Bloomington, Indiana: Slavica Publishers, 2009. viii, 239 pp. ISBN 978-0-89357-369-0.” Archivum Eurasiae Medii Aevi, 17: 28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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