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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르샨 의식

by hanyl 2019. 10. 16.

다르샨(Darshan)은 군주가 자신의 신민들에게 모습을 내보이는 의례를 뜻한다. 그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다르샤나(darśana ← 어근: dṛś: 보다)으로, 본래는 힌두교도의 관행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무슬림 군주는 악바르였다. 이 관행은 1668년, 아우랑제브가 폐지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아우랑제브는 이 관행을 우상숭배로 간주했다. (Burton-Page, 1991: 162; Streusand, 2010: 248-49 그리고 252)

도. 마하 시바라트리 축제에서 이루어진 ‘스리 스리’ 라비 샹카르의 다르샤나

본래 다르샨 행사는 힌두교에서 영적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던 중요한 상호작용이었다. 악바르는 자루카(jharuka), 즉 작은 발코니에서 대중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며 하루를 시작했다. 자한기르는 아그라에서 하루에 세 차례나 이 행사를 집전했다. 대중은 이에 경의를 표하며 다르샨의 특전을 인정했다. 이 관습으로 악바르는 무슬림에 관계 없이 영적 스승으로 비추어졌다. [Burton-Page, 1991: 162; 자루카에서 이 행사를 집전했기 때문에, 스트라이샌드는 이를 자루카 다르샨(jharuka Darshan)이라 표현했다. Streusand, 2010: 248 참고]

다르샨 행사는 티무르무굴조의 왕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615년 영국 대사로서 무굴 궁정에 도착한 토마스 로 경(Sir Thomas Roe)은 자한기르가 사실 궁정 의례의 포로라고 적었다. “그는 하루 종일 각 의례에 참석해야만 했고, 만약 하루라도 여기에 나서지 않고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그의 신민들은 곧장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실제로 샤자한이 중병에 걸려 1657년 9월에 이 행사를 집전하지 못하자,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 즉시 샤자한의 둘째 아들 무함마드 슈자(Muḥammad Shujāʿ)와 막내 아들 무라드 바흐쉬(Murād Bakhsh)가 반란을 일으켰다. (Burton-Page, 1991: 162; Streusand, 2010: 230 그리고 248)

:)

참고 문헌

Burton-Page, J. (1991). “Dars̲h̲an.”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vol. 2. Koninklijke Brill: 162.

Streusand, Douglas E. (2010). Islamic Gunpowder Empires: Ottomans, Safavids, and Mughals. Westview Press.

도. 마하 시바라트리 축제에서 이루어진 ‘스리 스리’ 라비 샹카르의 다르샤나.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hashivratri_crow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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