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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메이, 《칭기스의 교환》

by hanyl 2020. 7. 8.

티모시 메이 (2020). 《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권용철 옮김. 사계절. 443쪽.
May, Timothy (2012). The Mongol Conquests in World History (Globalities Series). Reaktion Books. 319 pages.

우선 책 제목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은 티모시 메이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저자는 이를 1960년대 후반 앨프레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가 제시한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에서 따왔다고 설명한다. (본문 27-29쪽) 물론 몽골 제국의 파괴적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스러울 수 있지만, 콜럼버스의 교환 또한 매우 복합적인 현상이였던 만큼 적절한 차용이라고 생각한다. 권용철 선생님의 번역서(《몽골족의 역사》나 《킵차크 칸국》)를 읽으면서 제목 선택에 아쉽다고 느꼈는데, 이 책은 100% 아니 120% 만족한다.

책은 서문과 1, 2부로 나누어진다. 결론 단락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만큼 서문의 내용이 그만큼 중요해 보인다. 세계사에서 몽골 제국의 중요성, 주요 사료들, 영어권의 주요한 연구들을 소개해주는 만큼 놓치면 안될 부분이다. 1부는 연대기적 서술이다. 1장은 칭기스부터 뭉케 재위까지, 2장은 소위 4대 칸국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룬다. 3장은 칭기스조 계승국가와 근대 유라시아 육상제국 그리고 20세기까지 몽골 제국의 이미지를 시간순으로 서술한다. 다만 2장과 3장의 내용은 최근 김호동 교수님께서 주장하는 울루스 체제론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적혀있다. 내가 선호하는 쪽은 김호동 교수님의 학설이다. (김호동, 2015 참고. 메이 교수의 서술은 서구사학계의 통설에 가까운데, 이 시각과 김호동 교수님의 시각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용규, 2009: 102-04 특히 n. 34 참조)

책의 핵심이라고 하면 2부일 것이다. 교역, 전쟁, 행정, 종교, 흑사병, 이주, 문화 각 분야에 1개 장이 할당되었다. 4장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의 내용은 몽골 제국 통치왕가의 교역 진흥책과 다양한 경제적 실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메이 교수의 서술은 스기야마 마사아키의 책 등에서 다루어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지나치게 현대적인 시각이 보이지 않는 점(예를 들어 杉山正明, 1999: 330-26)이 장점이다. 예컨데 그는 상단에 대한 몽골 군주의 지원을 대단히 아주 대단한 현상보다는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공동으로 출자하는 자그마한 노부인들의 소문난 동호회 같은 인상을 준다”고 적었다 (본문 166쪽).

5장 “새로운 전쟁 방식”은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던 덕분일까? 예컨데 몽골 제국이 전장에서 화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이것에 화약무기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슬람 세계에서 몽골 군대가 화약을 활용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화약의 확산에는 몽골의 전쟁이 아니라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의 번성이 기여했다는 것이다. (본문 215-25쪽) 마찬가지로 몽골의 뛰어난 전술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망구다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한다. 그에 따르면 망구다이란 단어가 무엇인지, 그러한 존재가 몽골 군대에 존재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230-34쪽) 다만 소위 말하는 ‘전격전’에 대한 서술(225-30쪽)은 90년대 이후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리델 하트의 저술을 꽤 참고했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6장 “몽골의 행정”은 몽골인들이 행정 분야에서 통념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정책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메이 교수는 여기서 오르두와 케식, 그리고 바스카크와 다루가치를 중심으로 일종의 몽골식 ‘제국적 제도’와 ‘세금 징수’의 측면으로 나누어 장을 전개했다. 다만 이 ‘몽골식 행정’이 이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서술이 적어 아쉽다. 7장 “종교와 몽골 제국”에서 저자는 소위 말하는 ‘몽골의 관용’을 어떤 박애주의적 이상보다는 전략적 필요성에 따른 실용주의로 묘사한다. 8장 “몽골족과 흑사병”은 몽골 제국을 매개로 흑사병이 확산되고 이것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서술했다. 이 경우 다른 그 어떤 장보다 눈에 띄이다 보니 ‘세계화’라는 책의 기획의도에 가장 충실한 내용이 전개되었다.

9장 “이주와 인구의 추세”는 몽골이 전 지역의 인구를 절멸시켰다는 인상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된다. 몽골 제국 내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이주에 대한 서술이 그 뒤로 이어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마지막 단락인 ‘투르크화’이다. 물론 내가 자주 인용하는 이주엽 선생님의 연구물은 시기적으로 책의 원서가 나온 이후 발표된 것들이라 반영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몽골 제국 서방 울루스들이 튀르크어를 받아들인 만큼 서방의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유목집단들의 정체성은 몽골화되었는데, 이에 대한언급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 바르톨드 역시 “몽골제국 서반부의 몽골인들이 투르크어를 사용하게 된 반면 투르크인들은 몽골제국의 전통에 점차 흡수되었고, 그 결과 몽골제국 이전의 투르크계 왕조들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적지 않았던가 (Barthold, 1963: 5-6).

10장 “문화 교류”는 어떤 면에서는 본서 《칭기스의 교환》의 결론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몽골 지배층은 천문학, 의학, 역사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세계 각지의 정보를 끌어모으고 뒤섞었다. 물론 칭기스 원칙에서 보이듯 이같은 지식은 몽골 통치자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뒤에는 예술, 음식문화, 물질문화에 대한 몽골의 영향이 이어진다. 이 장에서 저자가 몽골의 영향을 찾을 수 있는 예로 고려와 이탈리아를 들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고려의 경우 성리학의 도입(354-56쪽)이나 단군 신화의 형성(360-61쪽)이 예시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팔려간 타르타르인 노예와 회화가 예(360쪽)이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두 문화가 인쇄술과 금속활자를 매개로 만났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369-71쪽).

이상 내용을 참고하면 책이 다루는 범야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최근 몽골 제국사 연구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인 문화의 육성자이자 후원자로서 몽골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과거의 몽골 제국 연구는 파괴적인 측면을 강조해왔다. 이런 시각에서 몽골 제국으로 인한 교류의 촉진은 부가적 산물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몽골 제국사 연구자들은 몽골 제국이 다양한 방면에서 교류와 융합이 일어날 때 수동적인 방관자로 남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즉, 몽골 통치자들은 의도와 취향에 따라 필요한 자원을 여과하고 선별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기능했던 것이다. 메이 교수는 학계의 이같은 논의를 적극 반영하였다. 그리하여 독자는 책을 덮을 때쯤 야만적 유목민 몽골이 문화수준이 높은 정주지대를 지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영향을 받아 한화/페르시아화하였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광범위한 범위를 다룬 만큼 아쉽게도 자잘한 오류가 많다. 역자인 권용철 선생님이 여러 잘못을 교정했음에도 남은 부분이 상당하다. 24쪽과 93쪽에서 저자는 오이라트 연맹의 통치 가문은 케레이트 부락의 토그릴 왕 칸의 후손임을 주장했고, 칭기스의 남계 후손이 아니면 칸위에 오를 수 없다는 칭기스 원칙을 거부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오이라트 연맹은 다양한 부락들의 연합체였고, 케레이트 혈통을 주장한 것은 오이라트 연맹의 한 부락인 토르구트부의 통치계층 만이었다. 반면 호쇼트부의 통치가문은 칭기스의 동생인 조치 하사르의 후예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宮脇淳子, 2000: 136-42) 또한 오이라트 연맹의 칸위 주장은 칭기스 원칙의 완전한 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宮脇淳子, 2000: 214-17).

또, 저자는 53-54쪽에서 탕구트족이 티베트족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실제 탕구트 국가의 구조는 좀 더 복잡했던 것 같다. 티베트사 연구자 군트람 하초트(Guntram Hazod)가 후대의 티베트 불교 문헌을 요약한 바에 따르면, 고대 티베트 고원에는 ‘4대 집단’(rüchen shi)이 존재했다. 4대 집단은 각각 미냑(Minyag = 탕구트), 숨파(Sumpa = 소비蘇毗), 아자(Azha = 토욕혼吐谷渾), 그리고 샹숭(Zhangzhung = Zhang–zhung)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숨파와 아자는 튀르크계 언어를 사용했다. 이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하나의 티베트 집단으로 진화하는 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Hazod, 2012: 44 n.2) 서하 통치가문의 탁발拓跋씨 사용이나 저자 역시 지적한 케레이트 부락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서하를 단순히 티베트 왕국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94쪽에서 저자는 몽골 할하부를 통일한 만도론 카안(Manduɤulun Qaɤan)이 다얀 카안의 아버지였다고 적었다. 그러나 만도론 카안은 차하르부에 근거를 두었다. 또한 만도론 카안은 아들을 두지 못했다. 다얀 카안의 아버지는 바얀 뭉케(Bayan Möngke)이다. 바얀 뭉케는 만도론의 동생 아가바르지의 아들 하르고착(Qarɤučaɤ)과 오이라트 연맹 에센 타이지(Esen Tayiji)의 딸 세첵 베지(Sečeg Beiji)의 아들이다. 바얀 뭉케가 3살일때 몽골고원의 패자였던 오이라트 연맹의 에센 타이시는 모든 보르지긴을 죽이라 명했다. 그러나 할하 투멘 출신의 바얀다이(Bayandai)란 인물이 이를 거부하고 아이를 할하 투멘의 유목지에 숨겼고, 이 인연으로 바얀 뭉케는 할하 투멘의 수령이 되었다. 후일 바얀 뭉케는 만두굴룬 카안에게 복속하여 볼후 지농(Bolkhu Jinong)의 칭호를 받으면서 그의 후계자격인 위치에 올랐다. (김성수, 2014: 42; 宮脇淳子, 2000: 148; Gongor, 2010: 511-12)

칭기스조 계승국가들에 대한 서술도 아쉬움이 보인다. 우선 131쪽에 언급된 시비르 칸국의 통치왕가 타이부기니 가문은 칭기스조가 아니다. 남겨진 전승으로 볼때 이들은 케레이트 부락 토그릴 왕 칸의 후예로 보인다 (이주엽, 2020: 155-56). 또한 130쪽에 언급된 샤이반 이븐 주치(Shaybān b. Jochi)는 싀반(Shïbān)으로 읽는 것이 맞다. 샤이반은 아랍 부족 중 샤이반(Shaybān) 때문에 잘 못 읽은 것이다. (Bregel, 2003: 50; McChesney, 1997: 426. 또한 132쪽의 샤이반은 130쪽의 샤이반과 동일인물이다) 또 저자는 135쪽에서 우즈벡 칸국 내에서 아불하이르 왕통이 끊어지고 자니 왕통(토가이테무르 왕통이 더 정확한 이름)이 들어서면서 부하라 칸국과 히바 칸국으로 분열되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아불하이르 왕통의 절멸은 1598년의 일이고, 히바 칸국의 성립은 1511년의 일이다. (아불하이르 왕통의 몰락에 대해서는 이주엽, 2020: 224-25를, 히바 칸국의 성립에 대해서는 같은 책 239-41을 참조)

번역으로 넘어가자. 책의 역자인 권용철 선생님은 이미 성실한 연구자로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에 따로 감히 내가 평가할 깜냥은 되지 않는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권용철 선생님이 각주를 통해 저자의 오류를 수정해주지 않았다면 이 글의 내용은 한 3배 더 길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다양한 지역을 다룬 책이다 보니 표기 원칙 등 사소한 아쉬움도 있다. 터키어의 경우, 130쪽의 사힌 기라이는 샤힌 기라이(Şahin Giray)로, 357쪽의 쿠세 닥은 쾨세 다으(Köse Dağ)로 고쳐야 한다. 248쪽에서 언급된 학자 이스트반 바사리는 헝가리인으로, 헝가리어 표기 원칙에 따르면 이슈트반 바샤리(István Vásáry)로 고쳐야한다. 67쪽에서 언급된 헝가리왕 벨라 4세는 벨러 4세(Béla IV)로 고쳐야 한다. 117쪽에는 아라곤왕 피터 3세가 언급되는데, 이 인명은 아라곤어로 페로(Pero) 또는 카스티야어로 페드로(Pedro)라 적는 것이 적절하다.

총평하자면, 이 책은 그간 나온 몽골 제국사 관련 도서 가운데 가장 종합적이면서도 학술적으로 참고할만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하게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스기야마 마사아키 교수의 《몽골 세계제국》이 있기는 했지만, 이 책은 본래 문고판으로 기획되었다 보니 각주가 전혀 없어서 학술적으로 활용이 애매하다. 또한 스기야마 마사아키 본인도 인정한 바이지만, 카안 울루스에 내용이 집중된 한계도 있었다. 故 데이비드 모건 교수의 《몽골족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30년 전에 나온 책인데다가 몽골 제국 이후의 세계에 대한 서술이 부재한 아쉬움이 있다. 대신 몽골 제국 자체에 대한 서술은 더욱 꼼꼼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하튼 이 책은 몽골 제국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그 이후의 세계에 미친 영향까지 폭넓게 다루는 점이 장점이다. 몽골 제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때 이만큼 좋은 책이 있을까? 지금은 없는 것 같다. 정말 좋은 개설서가 나왔다. 이주엽 선생님의 《몽골제국의 후예들》부터 시작해서, 올해는 몽골 제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행복한, 하지만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다.

* 2020년 6월 19일 주문. 23일 수령 및 일독. 24일 기록.

핼퍼린, 《킵차크 칸국: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이주엽, 《몽골제국의 후예들》
이주엽, Qazaqlïq, or Ambitious Brigandage, and the Formation of the Qazaqs
Dale, The Muslim Empires of the Ottomans, Safavids, and Mughals
Streusand, Islamic Gunpowder Empires

참고문헌

김성수 (2014). “몽골 제국 붕괴 이후 쿠빌라이계의 활동과 그 한계.” 《몽골학》 제39호: 29 – 63.

김호동 (2015). “몽골제국의 ‘울루스 체제’의 형성.” 《동양사학연구》, 131: 333-86.

이용규 (2009). “몽골제국사 연구동향 (1995~2008).” 《10~18세기 북방민족과 정복왕조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87-120.

이주엽 (2020). 《몽골제국의 후예들: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책과함께.

宮脇淳子 미야와키 준코 (2000). 《최후의 몽골유목제국》. 조병학 옮김. 백산출판사.

杉山正明 스기야마 마사아키 (1999). 《몽골 세계제국》. 임대희·김장구·양영우 옮김. 신서원.

Barthold, V. V. (1963). Four Studies on the History of Central Asia, Vol. 3: Mir ‘Ali Shir and A history of the Turkman people. V. Minorsky and T. Minorsky, trans. Brill.

Bregel, Yuri (2003). An Historical Atlas of Central Asia. Brill.

Gongor, “The Twelve Tümen of the Aglag Khüree Khalkha Mongols,” in D. Sneath & Ch. Kaplonski, eds., The History of Mongolia, vol. 2. Brill: 508-20.

Hazod, Guntram (2012). “Tribal Mobility and Religious Fixation: Remarks on Territorial Transformation, Social Integration and Identity in Imperial and Early Post-Imperial Tibet,” in Water Pohl, Clemens Gantner, and Richard Payne, eds., Visions of Community in the Post-Roman World: The West, Byzantium and the Islamic World, 300–1100. Ashgate: 43-57.

McChesney, Robert Duncan (1997). “S̲h̲ībānī K̲h̲ān.”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vol. 09. Koninklijke Brill: 4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