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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주엽, Qazaqlïq, or Ambitious Brigandage, and the Formation of the Qazaqs

by hanyl 2019. 8. 25.

Lee, Joo-Yup (2015). Qazaqlïq, or Ambitious Brigandage, and the Formation of the Qazaqs: State and Identity in Post-Mongol Central Eurasia. Koninklijke Brill. xiv+238 pp.

“이 책은 카자흐 정체성의 출현을 중앙 유라시아의 문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총체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서이다. 책은 민족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도 초기의 카자흐인들이 타집단과 다름을 느꼈던 요소를 보여준다. 저자는 중앙유라시아적 관행(Qazaqlïq)에 집중하여 코사크 헤트만국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더 넓은 중앙 유라시아 세계 안에 자리잡게 했다. 이주엽의 책은 방대한 지리적 배경, 수많은 종족 집단, 전근대 익숙치 않은 수많은 인명을 다루고 있음에도, 간결·명료한 필치를 통해 매력적이고 읽기 편한 작품이다. 이 연구는 폭넓은 범위, 1차, 2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언어의 사료들을 참고한 점이 특히 돋보인다. 이는 중앙아시아적 관행(야심만만한 약탈대)를 서쪽으로는 우크라이나까지 추적한, 중앙 유라시아 연구서의 모범이다. 또한 도발적인 연구서로, 저자는 때로는 다른 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해서, 때로는 반박하는 주장을 통해 학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Atwood, et al., 2019: 105, n. 2에서 재인용)” 2017년 중앙유라시아학회(CESS) 도서상 심사위원들의 평이었다. 이 이상 책의 의의를 정리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책의 내용은 2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편은 카자클륵(Qazaqlïq) 현상을 전유라시아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1장은 카자크(qazaq)와 카자클륵의 의미에 대해 다루었다. 카자크란 사회 또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소속된 국가나 부족을 떠나는 정치적 방랑자를 의미하고, 카자클륵은 카자크식의 삶(qazaq way of life)를 의미한다. 2장은 14세기 이전 유라시아 각지의 유사카자크(quasi-qazaq) 활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유사카자크는 단순히 고향을 떠나는, 초원에서는 일상적인 행위이다. 반면 카자크는 그보다 더 정치적인 행위로,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권좌를 쥐기 위해 권토중래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연[柔然], 토욕혼[吐谷渾], 고차 철륵[高車 鐵勒], 아사나 돌궐[阿史那 突厥] 등은 유사카자크 활동을 통해 국가를 형성했다. 세번째 장은 포스트 몽골 시대 흑해 북안의 초원 지대에서 일어난 코사크 집단의 형성에 대해 카자크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우크라이나 코사크 집단의 원형은 리투아니아로 망명한 튀르크·몽골인들로, 리투아니아 대공이 몽골계 국가들과 완충지대 설정을 위해 이 망명자들에게 내려준 지역에서 기원했다. 이후 인근의 튀르크·몽골인이나 슬라브 등 도망자들이 카자크 집단에 합류하며 차츰 코사크로 변했다.

2편은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중앙아시아에서 시반조 우즈벡(일명, 부하라 칸국)과 카자크 우즈벡(일명, 카자흐 칸국)의 형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4장은 카자흐 칸국과 부하라 칸국의 형성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이다. 5장은 독자적인 카자흐 정체성의 형성에 대한 설명이다. 본래 조치 울루스 전체를 의미하던 ‘우즈벡 울루스’는 16세기를 거치며 카자흐 집단은 카자크 우즈벡, 시반조 집단은 시반조 우즈벡으로 분화되었고, 이것이 나중에는 각각 카자흐와 우즈벡 정체성으로 굳혀진다. 6장은 두 집단이 각자 인식한 스스로의 계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CESS의 평에서도 지적한 바이지만, 폭넓은 사료의 활용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만하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점은 저자가 직접 참고할 수 있는 원사료를 인용할때는 꼼꼼하게 라틴 알파벳 전사문을 병기한 것도 눈에 띄었다. 해당 사료를 읽을 수 있는 독자라면 좀 더 꼼꼼하게 내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차가타이 튀르크어 등을 모르지만, 터키 튀르크어를 조금 알아서, 저자의 해석을 토대로 드문드문 문맥을 파악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는데, 꽤 즐거웠다. 여하튼 이렇게 사료에 천착하는 저자의 성격 덕분에 이 책의 발간 이후 펴낸 논문들에서도 철저히 사료에 근거하여 통념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또 다른 책의 특징은, 15, 16세기 중앙유라시아 서반부를 몽골 제국 계승성이라는 틀 속에서 조망한 것이다. 카자클륵 현상은 14세기 조치 울루스의 붕괴 속에서 나타난 몽골 제국의 유산 가운데 하나이며, 단순히 중앙아시아 우즈벡과 카자흐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코사크 집단의 형성에도 기여했다. 즉, 이 책의 결론은 어찌보면 부제인 “포스트 몽골 시대 중앙유라시아의 국가와 정체성 형성”에 더 집중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도 몇가지 있었다. 우선 저자는 칭기스 칸을 유사카자크 수행자로 보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몽골 고원에는 인근 유목 국가들에서 떨어져 나와 약탈을 통해 독자적 집단을 형성할 지역이 없었고, 칭기스 자신도 몽골 고원에서 먼 지역으로 망명하여 약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진 적이 없었다. (본문 72쪽 각주 62)

물론 《몽골비사》나 《집사》 등에 유사한 기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테뮈진 생애에 존재하는 ‘공백의 10년’을 감안하면, 전혀 가능성 없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츠네프스키에 따르면, 당시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은 정치적 재기를 위해 이웃 국가에서 망명처를 찾았다. 테무진의 경우, 달란 발주트 전투에서 패배한 뒤 몽골 초원을 떠나 금나라로 도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테무진이 몽골로 돌아온 것은 1195년 경 타타르를 격파한 뒤였다. (Rachnevsky, 1992: 52-54) 내가 보기에 테뮈진의 이러한 경력은 책에서 다룬 무함마드 시바니(보통 무함마드 샤이바니라 불리나, 이는 시바니의 잘못이다)이 티무르 제국이나 모굴 칸국 등에서 용병과 같은 역할을 맡았던 것과 얼마간 겹쳐보인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유사카자크의 개념을 좀 더 넓게 보았다면 하는 점이다. 앞서도 적었지만, 저자는 유사카자크의 예로 유연, 토욕혼, 고차 철륵, 아사나 돌궐 등을 들었다. 그러나, 벡위드에 따르면, 중앙유라시아 지역에서 거대 왕국을 건설했던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비슷한 영웅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 모델에서는 “… 왕과 왕자들은 영웅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는 기적적으로 궁궐을 탈출하였다. 용감하고 젊은 전사 친구들이 그를 따랐다. 그들은… 정의롭고도 부강한 왕국을 건설했다.” 벡위드가 든 예로는 주나라, 스키타이, 흉노, 오손, 고구려, 사산조, 칭기스 칸 등이 있다. (Beckwith, 2011: 47-65)

이러쿵 저러쿵 감히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나는 이 책이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사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결명료한 필치, 철저히 원전에 의존하는 연구 등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스스로의 학문여정을 카자크에 비유하고 있는데, 카자클륵의 끝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

참고문헌

Atwood, Christopher, et al. (2019). “Book Review Forum: Central Eurasian Studies Society(CESS) Book Award Author-Critic Forum.” Inner Asia 21: 105-23.

Beckwith, Christopher I. (2011).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 이강한, 류형식 옮김. 소와당.

Rachnevsky, Paul (1992). 《칭기스칸》. 김호동 옮김. 지식산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