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쯔취안 (2019). 《위촉오 삼국사: 중세 봉건시대의 개막, 184-280》. 최고호 옮김. 모노그래프. 808쪽. 33,000원.
何玆全 (2011). 《三國史》. 人民出版社.
내게 삼국지는 가깝지만 먼 세계였다. 소설로는 《영웅 삼국지》나 《황석영 삼국지》를 읽었고, 좋아하는 만화 가운데 몇 작품도 삼국지에 기반했다. 어릴때는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도 즐겨했고, 진삼국무쌍 한번 해보겠다고 떼써서 플레이 스테이션 2도 산 기억도 있다. 그런데 역사로서의 삼국지를 얼마나 아냐고 하면, 글쎄. 이공범, 《위진남북조사》(지식산업사, 2003)에서 다룬 부분을 읽은게 전부인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면, 저정도로 삼국지를 좋아하는데도 막상 역사로 (중국의) 삼국시대를 소비하기 힘든 환경이었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허쯔취안의 《위촉오 삼국사》의 출간이 반가웠다. 물론 국내에 진수의 《정사 삼국지》도 두 차례나 나왔다. 《자치통감》도 있고. 허쯔취안은 머릿말에서 역사로 삼국지를 공부하기 위한 3대 기초 사료로 《정사 삼국지》, 《자치통감》 그리고 《정사 삼국지》의 배송지 주를 언급하니(본문 24-25쪽), 한국이 삼국지 공부하기에 그리 나쁜 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연구서나 논문을 통해 큰 틀을 세우는 쪽을 더 선호한다.
책은 총 20개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내러티브 성격이 강하다. 삼국시대 군웅 전부를 상세히 다루지는 않고, 조조나 원소, 유비, 손권 등 주요한 군웅들의 활동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12장과 13장은 각각 위와 오의 사회와 정치를 다루고, 14장은 촉의 청치사와 정신사를 다룬다. 15장은 건안문학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문학사 간략히 다루었다. 16장부터 17장은 다시 조위 정권 말기의 정치사 내러티브이고, 18장은 조위 정권의 정신사를 다루었다. 19장과 20장은 각각 촉한과 손오의 멸망까지 정치사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허쯔취안의 《위촉오 삼국사》의 장점은 철저히 사료에 입각한 서술이다. 머리말 23쪽에서 밝히듯, 허쯔취안은 고대의 역사기록을 되도록 그대로 인용해가면서 책을 전개해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사료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허쯔취안은 406쪽에서 《화양국지》(華陽國志)를 인용해 남만 정벌을 마친 제갈량이 “엉성하나마 법도가 정해지고 이민족과 한족(의 관계)도 대체로 안정되었기 때문이오”라는 말했다고 기록했다. 그런 한편 409-13쪽에서는 진수의 기록을 인용해 제갈량의 남정 이후로도 남중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료에 충실한 만큼, 인터넷에 떠도는 시각과 달리 신중한 서술도 눈에 띈다. 조조의 출신에 대해서도 단지 “조씨와 하후씨 두 집안의 관계로 볼 때, 이것은 가능한 이야기이다”는 정도로만 적었다 (79쪽). 손오의 병력에 대해서도 여러 사료를 토대로 세습 병력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제시하면서도, “손오의 총병력에서 세습 병력이 차지한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통계가 없어 추정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353쪽).
책이 출판되기 직전에 허쯔취안의 역사인식이 논란이 되었다. 허쯔취안은 중화는 하나이므로 외세의 침입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김종박, 2011: 27-28, 44-47), 《위촉오 삼국사》가 그런 내용에 오염되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직접 읽어본 결과, 최소한 《위촉오 삼국사》의 내용에서는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허쯔취안의 산월족 관련 서술이 좋은 예이다. “손오가 강남에서 진행한 가장 큰 개발은 넓은 지역의 산월족[山越族]을 압박하여 한화[漢和]시킴으로써 산월족 거주 지역을 군·현으로 재편한 일이었다”(329쪽)는 서술이 있다. 337쪽에서는 한술 더떠, “한족의 산월족 정벌은 산월족이 산에서 내려오도록 강제한 것이므로, 당연히 좋지 않은 행위였다”고까지 적었다. 허쯔취안의 연구사 전체를 알지 못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적는 것이 좀 조심스럽지만, 문제가 된 역사인식은 1960년대와 80년대의 살벌한 중국 정치에서 나름대로 연구를 지속하려는 학자의 슬픈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또다른 염려는 형주차용설에 대한 허쯔취안의 입장이다. 출판사 소개문에는 “형주차용설은 다분히 강동에서 처음 유포한 것으로, 그다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형주는 원래 유표의 땅이었다. 유표가 죽었을 때 아들 유기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유비가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유기를 형주자사로 추천한 것이다. 이것은 명분에 맞고 이치에도 합당한 사실로서, 손권이라 한들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162쪽)만 소개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러나 손권이 유비에게 땅을 빌려준 사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빌려준 지역은 강릉 및 남군에 속한 장강 이북 지역뿐이었다.”(163쪽)으로 이어진다. 허쯔취안은 형주차용설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고 긍정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다른데 있었다. 공산권 역사서다 보니 ‘역사발전과정’이 꽤 강조되었다. 또, 현대연구가 거의 활용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물론 서구권에서 삼국시대 연구가 활달하지 않아 이해할 수는 있는 부분이다. 공산권 특유의 역사발전 운운은 책의 내용을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라 적당히 넘기면 될 것 같다. 현대 연구는 “펴낸이의 말” 742-62쪽의 내용으로 갈음하면 얼마간 해소가 가능하다. 대체로 중국이나 일본 연구라 나는 못하지만….
도저히 해소가 안되는 아쉬움은 삼국시대 북방민족의 동향이다. 삼국시대 기병에서 유목집단의 중요성이 꽤 컸다고 알고 있는데, 허쯔취안은 이 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237-38쪽에서 손오가 수춘이 아닌 형주로 나아가야 했던 이유를 설명할때 “(서주의) 지형은 막힘없이 평탄한 육로라서, 정예의 기병이 말을 달릴 만한 곳입니다. (따라서) 지존께서 금일 서주를 얻더라도 조조가 열흘 뒤면 틀림없이 싸우려 할 것이니, 비록 7~8만 명(의 병력)으로 수비해도 여전히 걱정거리일 것입니다.”는 정도에서 그 단서가 보일 뿐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정도만 언급하고, 편집쪽의 장점을 다루어보자. 모노그래프 출판사에서 나온 연구서가 그렇지만, 색인의 꼼꼼함은 대한민국 출판사 탑티어급이다. “찾아보기”가 764쪽부터 808쪽까지니, 거의 50장에 육박한다. 일러두기에 따르면 원서에는 없던 주석도 많이 추가되었고, 옮긴이의 추가적인 설명도 알찬 정보를 많이 담고있다. 지도도 33장이나 포함되어 전쟁의 진행과정을 파악하기 용이했다. 삼국지 게임으로 당시 중국 지리를 어렴풋이 알아도, 구체적인 전투의 진행은 알기가 힘드니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반가울 것이다. 364쪽에 손화와 손패가 동복형제라고 적혀있거나(그 뒤에 손권이 두 사람을 적서의 구분없이 대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적혀있음), 532쪽에 사마사를 사마의로 잘못 적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책의 방대한 양을 생각하면 이해할만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마무리하자면, 역사로서 중국의 삼국시대를 공부해보고 싶다면 허쯔취안의 《위촉오 삼국사》는 한국어 자료 중에서는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료에 충실하지만 비판적이고 신중한 시각도 눈에 띄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을수 있겠지만, 완벽한 책이란게 있을 수 있을까. 읽는 사람이 더 중요하고, 이 책 하나로 다 안다고 여기는 쪽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뒷표지 날개에 보면 《관우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역사적 관우에서 신화적 관우까지를 다룬 책이 나온다고 하는데, 꽤 기대가 된다. 그리고 《위촉오 삼국사》 기획이 좋은 호응을 얻어서 ‘역사적’ 삼국지에 대한 출판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비슷한 시기에 《토탈워: 삼국》에서도 북방민족 DLC가 나오면 더 좋고….
:)
참고서적
김종박 (2011). “중국의 민족학 연구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등장.” 《중국 역사교과서의 통일적다민족국가론》. 동북아역사재단: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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