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2019). 《오스만 제국 시대의 무슬림-기독교인 관계》(서울대 인문 강의 09). 민음사. 243쪽. 22,000원.
출간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책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제목만 보면 사회사 같은데, 목차는 통사 같았다. 읽으면서 무슬림-비무슬림 관계를 중심으로 본 오스만 제국 통사로 정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은 시대 순서로 배치되었고, 처음에 해당 장이 다루는 시대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뒤 무슬림과 비무슬림 관계를 중심으로 주제에 따른 꼭지들이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책은 여러 종교집단들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조율해온 오스만식 타협이 어떻게 변화하고, 종국에는 파국을 맞이하며 오스만 체제까지 끝장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오스만 제국 역사 대부분의 기간동안 비무슬림 비중이 꽤 높았던 만큼 이 책을 읽지 않고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스만 국가가 출연한 시기 소아시아의 종교적 혼합주의 경향이 없었다면 초기 오스만 국가의 유연성은 전혀 다른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오스만 국가는 변방에서의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실용적인 정책을 거리낌 채택했다. 이는 특히 피지배인의 다수가 기독교도였던 초기 오스만 국가의 소아시아 서북면과 발칸반도에서 필요한 미덕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기병에 대해 봉급 대신 수조권을 부여했는데, 15세기 일부 지역에서는 기독교도의 비중이 50%가 넘는 경우까지 있었다. (본문 22~23쪽, 25쪽, 190쪽 각주 8)
최근 학계의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지은이가 이미 논문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하기는 했지만, 책으로 소개된 것과는 확장성의 측면에서 많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고전기(대체로 15세기 ~ 16세기 중역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킴) 이후 오스만 제국이 몰락 일변도였다는 종래의 시각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17세기 이후의 오스만 제국이 고전기에 대비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타락이나 퇴보가 아니라 변화한 상황에 대한 적응이었다는 측면이 더 부각된다.
또한 오스만 제국사 후기를 단순히 서구·세속·개혁파와 이슬람·종교·수구파의 이분법으로 분리하기 보다는 다면적인 면을 보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압뒬하미드 2세는 반동개혁과 수구적인 정책을 추진했다고 자주 묘사되지만, 이 책에서는 압뒬하미드 개인이 서구 문물에 상당히 적응한 상태였고 (130쪽), 그의 정책 역시 청년튀르크 정권에 다수 계승되었음이 지적된다 (154쪽). 이 책에 등장하는 어느 존재도 결코 시대의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책의 출간 소식을 네이버 부흥 카페나 역개루 카페에 소개했을때 출판사 소개문을 보고 몇몇 분이 의문을 제기하셨다. 어떤 분은 오스만 정부도 종교의 민감성을 충분히 의식할 수 있었을텐데 왜 경솔하게 유럽 외교관의 요구에 순순히 따랐는지 의문을 제기하셨다. 다른 한분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와 서구적 근대성의 지배를 지나치게 대비하여 역사를 지나치게 간략하고 추상적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기하셨다.
실제로 책을 직접 읽어본 결과, 본문은 오스만 통치 계층 사이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고 어떤 배경에 의해 정책을 선택했는지가 꽤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5장). 또한 지은이는 오스만 제국기 대체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관계가 양호했음을 강조하지만, 그러면서도 존재했던 불협화음을 숨기지도 않는다 (48~50쪽). “맺음말”에서도 확인되듯 지은이는 ‘단순화’와 ‘일반화’를 상당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염려하는 사람들도 일단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꼭 짚고 싶은 책의 장점은 “더 읽을거리(235~38쪽)”이다. 오스만 제국사와 중동현대사를 다룬 한국어 책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내용인데, 각 책의 장단점을 핵심만 찝어서 적어놓았다. 각주와 참고문헌에서도 꼼꼼하게 참고한 연구들을 제시하고 있으니, 오스만 제국이나 이슬람 세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 읽을거리”와 함께 이 부분을 자세히 읽으면 좋을 것이다.
책 내용은 굉장히 좋지만, 편집에서는 아쉬운 점이 여럿 보인다. 우선 찾아보기가 없다. 출간사에 적힌대로 “서울대 인문 강의”가 ‘품격있는 고급 교양서를 지향한다’면 그 어떤 책보다 꼼꼼한 찾아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모든 각주가 후주로 처리된 점도 아쉽다. 각주가 71개로 가장 많은 7장의 경우 각주의 14개 정도는 단순한 출전이 아니라 본문의 내용에 대해 추가적인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지은이의 각주를 전부 후주로 돌리기보다는 각주 내용에 따라 본문에 포함시켰다면 좀 더 나았을 것 같다. 터키어나 아랍어 등 이슬람 세계의 고유명사 표기는 “일러두기”에 제시된 원칙에 충실하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본문 24쪽의 ‘이오안니스 칸타쿠제노스’와 같은 외국어 표기는 미흡한 면이 보인다. 191쪽 각주 3에서 The Cambridge History of Turkey를 The Cambridge History of Tureky로 잘못 적거나, 203쪽 각주 24에서 Reform in the Ottoman Empire, 1856-1876의 출간 연도 1963년을 1863년으로 잘못 적는 등 사소한 오타도 눈에 띄었다.
몇가지 편집상의 단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내용의 측면에서는 감히 지적할 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책이었다. “서울대 인문 강의”를 통해 소개된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한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는데 이만큼 좋은 책을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꼭 이슬람 세계나 오스만 제국에 관심이 없더라도 역사 공부를 좋아하고 글 적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은정 교수님의 간결하고 신중한 글솜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
* 2019년 10월 8일에 구매. 11일 일독 완료. 16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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