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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휴스, 《표트르 대제》

by hanyl 2019. 8. 13.

린지 휴스 (2017). 《표트르 대제: 그의 삶, 시대, 유산》. 김혜란 옮김. 모노그래프. 652쪽.
Hughes, Lindsey (2004). Peter the Great: A Biography. Yale University Press. xix+285 pages.

로마노프조 러시아의 황제로 러시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듣는 표트르 대제에 대한 평전. 저자는 표트르가 공적으로 쌓은 업적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 기이한 성격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명나라 정덕제처럼 롤플레잉을 한것은 몰랐었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꼼꼼함이다. 저자 린지 휴스는 표트르와 관련된 일화나 야사를 언급할때도 근거나 정황상의 신빙성에 대해 명확히 제시한다. 이를 위해 러시아 궁정에서 작성된 공식 일지는 물론, 표트르가 측근들과 주고 받은 여러 미공개 서신들, 외국의 증언, 보고서, 편지, 회고록까지 광범위한 자료가 활용되었다. 1717년에 발간된 《청춘의 훌륭한 귀감: 바른 예절 안내서》의 한 내용을 보자. “돼지처럼 먹지 말고”로 시작된 이 유명한 지침은 “나이프로 이를 쑤시지 말고, 이쑤시개를 이용하라. 이를 쑤실 때는 한 손으로 입을 가려라”로 끝이 난다. 야만적인 러시아인을 염두에 뒀다는 일반적인 평과 달리, 이 내용은 에라스무스의 《어린이 예절 핸드북》(1530)에서 인용한 것으로, 유럽 전체에서 18세기 말까지 유행한 내용이었다.

또 다른 장점은 저자가 견지하는 객관적 시각이다. 표트르 대제에 대한 평가를 할때 표트르 이전과 이후의 러시아 역사가 아예 다른 맥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탄탄한 근거를 힘으로 이와 같은 시각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보병대를 기반으로 전문적인 육군 조직, 교회를 국가에 복속시키는 일, 외국인 전문가와 수입한 기술·문화를 활용한 점 등, 표트르의 부친 알렉세이와 조부 미하일의 시대에 이미 표트르의 ‘혁명적’ 업적들은 시작된 상황이었다. 표트르 이전에 집권한 소피야 정부 역시 알렉세이의 정책을 유지하며, 납세 의무의 극대화, 토지 측량의 갱신, 도망자의 추적 및 소환, 법치 확립 등의 정책을 이어나갔다. 특히 골리친은 소작농 문제와 상류층의 병역 문제에 특히 신경을 썼다. 뿐만 아니라 1686년에 폴란드와 조약을 체결하는 등, 표트르 시대 러시아 패권을 위한 발판을 충실히 쌓아놓았다.(본문 54-55쪽, 76-77쪽 그리고 157쪽)

표트르의 다른 업적들 또한 마찬가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건설 이전에 그 터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늪지대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터에는 본래 뉘옌스카스 요새를 비롯, 상당한 수의 스웨덴 관리들이 사는 거주지가 있어서 인구가 상당했다. (본문 168-69쪽) 마찬가지로, 표트르가 창설한 원로원 역시 사실 군주 부재시 수도를 보야르 집단의 책임 아래 두는 모스크바 공국의 관습을 부활시킨데 지나지 않았다. 다만 이름이 고대 로마 제국을 연상시켰을 뿐이다. (본문 224-25쪽)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전임자들과 비교해 표트르만이 지녔던 강점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표트르는 전임자들과 달리 외국인들과 유대관계를 통해 더욱더 서구화된 환경을 창조했다. 해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최초의 서구 범선을 만든 것은 표트르의 부친 알렉세이였으나(1667년과 68년 사이에 알렉세이는 네덜란드인을 고용해 최초의 범선을 만들었고, 이 작업자들은 고스란히 표트르에게 다시 고용되었다), 표트르는 배와 바다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으며 해군 창설에까지 이르렀다.(본문 79쪽과 94쪽)

저자가 지적하는, 표트르가 전임자들과 달랐던 또다른 점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세심함이었다. 법령을 반포할때 표트르는 규칙, 규정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었다. 그는 각 개인의 의무가 정확히 무엇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세부사항도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명시했다.(320-23쪽) 1724년 표트르가 공표한 목양 사업에 대한 칙령을 보자. 그는 언제 양의 축사부터 시작해 먹이, 양털을 깍는 시기, 양을 위한 약의 조제법, 양의 분리, 짝짓기 시기 등, 한 사람의 군주가 신경쓰기에 너무나 세세해보이는 분야까지 관심을 기울였다.(428쪽)

누군가는 표트르 대제가 정말, 요즘 유행하는, 대체역사물의 주인공 같다고 평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말 표트르가 대체역사물의 주인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트르는 대부분의 개혁에서 독불장군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외국의 모델을 자세히 참조하거나 다른 사람과 장시간 토론을 통해 원안을 수정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표트르의 개혁 프로그램은 완벽하게 러시아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중앙정부는 대체로 표트르 개혁의 윤곽을 그럭저럭 유지했다. 하지만 다른 행정 개혁은 빠르게 시들었다. 지방 관공서의 번거로운 절차, 독일식 명칭의 직책들, 법정의 다심제, 행정체계와 사법체계의 분리 등의 시도는 실패했다. 마찬가지로, 표트르는 전임자 그 누구보다 많은 칙령을 내렸지만, 법률의 집행에 성공한 것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법률의 성문화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것 같다. 러시아의 성문 법전은 1830년대에야 겨우 완성되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본문 460-67쪽의 “국내 개혁의 대차대조표” 참고)

표트르 대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이 가져보지 못한, 홀로 모든 개혁을 진행하는 혁명적 왕에 대한 로망 때문일수도 있겠다. 특히 개화기 서구화 실패로 일제시대가 왔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사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요구하는, 쉬운 답을 주지는 않는다. 저자는 단지 ‘인간’ 표트르를 보여준다. 그의 위대함과 비루함을 모두 냉정하게 드러낼 뿐이다. 만약 역사를 쉽게 이분법적으로 보고 싶지 않고, 예리하게 민족영웅의 모습을 해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글을 마치면서, 이 책을 펴낸 모노그래프에 대한 생각을 남기고 싶다. 모노그래프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데이비드 모건의 《몽골족의 역사》(모노그래프, 2012)였다. 물론 책 자체도 좋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책의 편집이나 디자인도 꽤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학술서를 펴내는 다른 출판사들도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 같지만, 모노그래프가 그 중에서 앞서나갔던 출판사였다고 생각한다. 최근 모노그래프가 1인 출판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그럼에도 이렇게 좋은 책을 찾아서 눈도 즐거운 책을 내놓는게 대단하다. 그런 한편 이런 책이 잘 팔리는지, 잘 안 팔려서 힘든거 아닌지 걱정도 된다. 부디 잘 되기를 바라면서 곧 나온다는 허쯔취안의 《위촉오 삼국사》도 꼭 읽어봐야겠다. 허쯔취안이 동북공정 관련해서 싸지른 논문들 때문에 이 책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지만, 나는 이 책과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모노그래프의 선구안도 믿는다.

* 2019년 8월 6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7일까지 일회독했다. 구매는…. 취뽀하면….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