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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워렌 트레드골드, 《비잔틴 제국의 역사》

by hanyl 2020. 3. 7.

워렌 트레드골드 (2003). 《비잔틴 제국의 역사》. 박광순 옮김. 가람기획. 400쪽. 13,000원.
Treadgold, Warren (2001). A Concise History of Byzantium. Palgrave.

부당할 정도로 평가절하된 책. 특히 번역과 관련해서 많은 비판을 받아온 책으로 알고 있는데, 과장된 바가 많은 것 같다. 주술 관계가 어색하거나 번역투가 과다한 문제나 저자가 영어로 의역한 고유명사를 그대로 음역하는 것 같이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미 해석이 안될 정도로 엉망인 부분이 보이지는 않았고, 몇몇 부분에서는 학술서다운 품격이 느껴지는 문장도 있었다. 초벌번역 후 편집 과정에서 좀 더 세심한 손질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정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의 구성은 서론과 결론을 포함한 8개 장으로 이루어진다. 본문의 장은 각 50여쪽 분량이다. 각 장은 연대기적 서술 절반과 사회, 문화 등 사회과학적 서술 절반으로 이루어진다. 《비잔티움 연대기》 같이 우직하게 연대기적 서술만 밀고 나가는 것에 비해 읽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역사를 배운다는 점에서는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로서 태도도 훌륭하다. 지은이는 11~12쪽을 통해서 과거의 인물이나 서술에 대해서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함을 강조했다. 12~13쪽을 통해서는 모호한 자료들을 토대로 전근대 사회나 국가의 통계 산출의 위험성도 강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기번이나 노리치의 통속적인 서술을 비판하는 등, 역사학자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각 장의 내용은 좀 편차가 있는 편이다. 트레드골드의 주 연구 분야인 8~9세기까지의 내용은 지금 학계 연구 수준에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세세하게 뜯어보면 개선할 사항이 많겠지만. 그러나 10세기 이후의 서술은 아쉬운 점이 많다. 앞서 언급한 지은이의 지론인 ‘과거의 서술을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만지케르트 전후의 비잔틴 제국에 대한 서술이나 요아니스 6세 칸타쿠지노스 관련 서술은 사료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사료의 시각을 그대로 옮긴 편이다.

아닌게 아니라, 뒤로 가면 갈수록 지은이가 폭주하면서 단점이 많이 나온다. 앞서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레드골드는 기번이나 노리치의 통속적인 서술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233쪽에서 ‘불가르 학살자’의 일화를 그대로 적거나, 251쪽에서 비잔틴 사람들의 창의력 부족을 운운한 것은 기번이나 노리치보다 나을 것이 없다. 화룡점정은 “결론”이었는데, 트레드골드는 전근대 자료에서 통계를 뽑아내는 일의 위험함을 지적해 놓고서도 362~69쪽에서 영토, 인구, (현금) 세입, 군인의 수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게다가 이를 근거로 “비잔티움은 시대에 앞선 근대 국가였다”라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어쨋든, 트레드골드의 《비잔틴 제국의 역사》은 로마-비잔틴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으면 공부할 부분이 많다. 번역에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못 읽을 수준은 아니다. 특히 9세기 이전의 서술에 대해서는 지금 기준으로도 그다지 낡은 수준이 아니다. 10세기 이후의 경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는 한국에 소개된 여러 책들로 보완할 수 있다.

더 읽을거리

주디스 헤린, 《비잔티움》

피터 프랭코판, 《동방의 부름》

* 2020년 1월 17일,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 19일부터 31일까지 일독. 31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