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프랭코판, 《동방의 부름: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2018.
(Peter Frankopan, The First Crusade: The Call from the East, Harvard University Press, 2012)
오랜만에 나온 양질의 십자군 전쟁사 서적
《실크로드 세계사》에서도 느낀바지만, 지은이가 글을 잘 쓴다. 문장이 간결하다. 《실크로드 세계사》와 마찬가지로 최신 학설을 다양하게 반영하였음에도 글을 읽는게 어렵지 않다. 요즘 나오는 역사책들 중에 읽는 재미가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2005년 토머스 F. 매든의 《십자군: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권영주 옮김, 루비박스, 2005; 원서는 1999년 출간) 이후 꽤 오랫동안 한국에는 십자군 관련 양질의 도서가 나오지 않았었다. 이 책은 그 이후 나온 발굴된 다양한 학술 성과를 이용하여, 제1차 십자군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고 전개되었는지 세밀히 풀어낸다. 특히 동로마 제국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은 우사마 이븐 문키드의 《성찰의 서》(김능우 역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과 함께 십자군 관련 역사서가 2권이나 나온 진귀한 해였다.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비잔틴 제국의 중요성 상세히 설명
프랭코판은 제1차 십자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그 상황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에 따르면 《알렉시아드》의 묘사와 달리 만지케르트 전투 직후 소아시아에서 로마 세력은 꽤 강고했다. 다양한 사료를 활용하여 프랭코판은 니카이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튀르크 군벌 쉴레이만 역시 종래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알렉시오스의 후원을 받아 소아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떨쳤음을 증명한다.
로마령 소아시아의 붕괴는 1089년 이후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1086년 쉴레이만 샤가 안티오키아에서 셀주크 제국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일이다. 알렉시오스는 쉴레이만의 죽음 이후 셀주크 제국의 말리크샤와 협력하여 소아시아의 튀르크 군벌들을 통제하려 노력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그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여기에는 다니쉬멘드나 차카 등 알렉시오스가 통제할 수 없는 튀르크 군벌들의 등장과 지독한 기근의 발생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절정은 1092년 말리크샤의 죽음으로, 이후 소아시아의 튀르크 동맹을 통해 소아시아 문제를 해결한다는 알렉시오스의 정책은 파탄을 맞이했다. 알렉시오스는 이 상황에서 십자군이라는 도박수를 둔 것이다.
11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상황을 묘사하면서 프랭코판이 특히 강조하는 바는 알렉시오스 정권의 태생적 한계이다. 알렉시오스는 쿠데타로 인해 집권했고, 이 때문에 쿠데타에 대해 강박에 가까운 공포를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소아시아의 혼란에서 알렉시오스는 자신과 같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로마인이 아니라 튀르크인을 파트너로 삼았다. 내정에 있어서도 족벌정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12세기와 13세기의 기간에 비잔티움 제국의 혼란에 있어 알렉시오스의 탈권이 제국의 제도와 관행을 해친 것이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였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나의 과잉해석일까.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설명 부족이 아쉬워
이 책은 ‘동방,’ 즉 비잔틴 제국에 대해서는 상세히 묘사하였고, 그 중요성에 대해 납득시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대 이슬람 제세력의 묘사에 있어서는, 토머스 매든의 《십자군》과 마찬가지로,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십자군 원정 이전에 예루살렘과 인근의 세력 변화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실크로드 세계사》의 설명이 양적·질적으로 더 풍부할 지경이다. 1097년 당시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파티마조에 대한 설명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3번 가량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때문에 책에서 언급된 무슬림들은 단역으로만 소비된다.
예를 들어 3장과 4장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쉴레이만을 보자. 《동방의 부름》에서 묘사된 쉴레이만은 단순히 알렉시오스의 간택을 받은 정책 파트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쉴레이만은 셀주크 가문의 일원으로, 그의 가문은 알프 아르슬란 이래 계속해서 셀주크 가문 전체의 통치권을 얻기 위해 도전하고 있었다. 쉴레이만이 사료에 처음 등장하는 것 역시 1074년 시리아 방면에서 파티마 칼리프와 협조, 투르크만 집단을 이끌고 셀주크 제국에 대항하는 활동의 와중이었다. 여기서 패배한 쉴레이만은 1078년 경 소아시아에 진입하여 권토중래를 꾀했다. 특히 쉴레이만의 셀주크 혈통은 그를 당대 다른 튀르크 군벌들보다 한수위로 보이게끔 해주었다. 이게 없었다면 알렉시오스가 그를 정치적 파트너로 택하였을까?
또, 쉴레이만이 알렉시오스의 지원으로 안티오키아와 알레포 등을 수복했다는 서술을 보자. 이 역시 알렉시오스의 입장만을 반영한 반쪽짜리 설명이다. 쉴레이만의 입장에서 그의 동방 진출은 셀주크 가문의 종주권을 탈환하기 위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말리크샤는 동생 투투쉬를 통해 쉴레이만을 제압할 수 밖에 없었다. 1097년 경 니카이아의 새로운 통치자로 등장한 클르츠 아르슬란 역시 쉴레이만의 아들이었고, 이 덕분에 쉴레이만에게서 대리인으로 임명된 아불카심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클르츠 아르슬란 역시 (그의 입장에서 서방인) 소아시아나 로마 제국보다는 동쪽의 셀주크 제국의 통치권에 관심이 더 많았고, 그 아비와 마찬가지로 이에 매진하다 하부르 강가에서 전사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전반적인 번역 양호
앞서 언급하였지만, 문장 구조도 간략하고 쓸데없는 비유나 수식어도 적어 책을 읽기가 아주 수월했다. 번역 역시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다만 196쪽에서 “그들은 기둥에 매인 채 투르크인들의 총검술 연습 대상이 되었다.”는 서술은 시대상 너무 어색했다) 나 같은 경우는 책을 펴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다만 몇몇 고유명사의 표기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경우 자주 사용되는 (고전기) 그리스어 형태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게오르기오스 콤니노스Georgios Comnenos, 이사키오스 콤니노스Issacios Comnenos, 아드리아노스 콤니노스Adrianos Comnenos에 대해서는 각각 조지 콤네노스, 이삭 콤네노스, 아드리안 콤네노스로 영어와 그리스어가 혼재된 표기가 나타나 혼란스러웠다. 튀르크어 인명 클르츠 아르슬란의 경우 킬리디 아르슬란이라고 표기되었다. 이는 영어의 킬리지 아르슬란Kilij Arslan(아랍어-페르시아어의 Qilij Arslān에서 나옴), 현대터키어의 클르츠 아르슬란Kılıç Arslan 모두와 동떨어진 표기이다. 287쪽의 비지어는 영어 vizier를 그대로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관직명에 대해서는 의역이 주가 된 책의 특징을 감안하면 ‘재상宰相’으로 새기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 2019년 1월 9일, 도서관에서 빌려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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