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반엘리, 《살모사의 눈부심》

by hanyl 2020. 4. 17.

쥴퓨 리반엘리 (2002). 《살모사의 눈부심》. 이난아 옮김. 문학세상. 231쪽.
Livaneli, Zülfü (1997). Engereğin Gözündeki Kamaşma. Can Yayınları. 208 Pages.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이 “역사 소설 범주엔 들어가지 않습니다. 단지 역사를 장식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역사를 장식으로 삼지 않으면 좋은 역사 소재 창작물이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난 《살모사의 눈부심》이 최고 수준의 역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책의 많은 내용이 역사를 장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된 일화들은 17세기 오스만 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한데 섞은 점이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술탄 만세”의 일화는 쉴레이만 2세가 즉위할 때 벌어진 일이다. 열아홉 왕자가 떼죽음을 당한 일은 메흐메드 3세가 즉위할 때 벌어진 사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화는 터키 드라마 《위대한 세기: 쾨셈》 1화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책에서 나온 술탄이 누구인지, 황후는 누구인지 하는 면에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의 주연은 어둠속에서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값진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술탄이나 태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거라고 추측한다.

번역은 좋았던 것 같다. 읽는게 마냥 편하기만 한 글은 아닌데, 사실 이게 번역이 어색해서인지, 저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원서를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확언은 어렵지만, 아마 저자가 밝혔듯 당대에 작성된 역사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에 오히려 번역이 선방한거 아닐까 추측해본다. 오스만어 기록들이 워낙 만연체라. 다만 자잘한 아쉬움은 있었다. 우선 표기 원칙이 아쉽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영어식인 마호메트라 표기되고, 정통 칼리프 시대의 우마르는 터키어식인 외메르로 표기된다. 그리고 210쪽에는 “그리스도 탄생 후 7백 년이 지나 왕조를 세운 위대한 선조인 오스만 베이를 떠올렸다”는 문장이 있는데, 오류이다. 오스만 국가의 탄생은 서력으로 1200년대 후반이고, 700년대 후반은 이슬람력의 시점에서이다.

* 헌책 구매. 날짜는 기억 안남. 2020년 3월 20일 2회독. 4월 10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