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gan, David O. 2016. Medieval Persia 1040-1797, 2nd ed. Routledge. xviii+198 pages. GBP £35.99.
한국에는 『몽골족의 역사』(권용철 옮김, 모노그래프, 2012)로 소개된 학자, 데이비드 모건(David O. Morgan) 교수의 저작이다. Medieval Persia 1040-1797은 『몽골족의 역사』와 함께 모건 교수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두 권 모두 획기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당시까지 학계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반영한 개설서인데, 모건 교수의 다른 에세이들과 함께 고려할때, 이런쪽 능력이 특출났던 학자인 것 같다. 그리고 모건 교수는 2019년 10월 23일 타계했다고 하는데, 아마 이 책이 마지막 작업이었던 것 같다.
Medieval Persia 1040-1797의 1판은 1987년에 나왔고, 꽤 널리 인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시절인가에도 그런 이유로 구해보려 했었는데, 인터넷에서 구할 방법이 없어서 포기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외서 한, 두 권 정도는 살 수 있는 처지가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다.
근데 사실, 2판이 되면서 바뀐 내용은 거의 없다. 책 소개와 저자의 서술로 볼때, 여는말과 맺음말만 새로 썼다고 한다. 본문 곳곳에서 보이는 ‘소비에트 연방’ 같은 표기가 이를 말해준다. 1판의 오류도 본문을 수정하지 않고 맺음말에서 정정했을 정도이다. 『몽골족의 역사』(한국에는 The Mongols의 2판이 바로 소개되었다)에서도 그때의 서술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며 1판 출간 이후의 몽골제국사 연구에 대한 에세이를 덧붙이는 것으로 갈음했던 것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한 모건 교수의 생각은 확고해 보인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소개할 구석은 별로 없다. 제목 그대로 중세 페르시아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깔끔하고 압축되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1장은 페르시아의 지리와 종족에 대한 서술이고, 2장은 사산조 페르시아부터 가즈나조와 부야조까지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했다. 3장, 4장, 5장은 셀주크 제국의 성립, 제도, 몰락에 대한 내용이다. 6장, 7장, 8장은 몽골 침공과 일칸국의 성립, 가잔 칸의 개혁을 주로 다룬다. 9장과 10장은 테뮈르와 테뮈르조에 대한 정리이다. 11장은 튀르크멘계 왕조들(카라코윤루와 아크코윤루)과 사파비조의 발흥에 대해 다루었다. 12장, 13장, 14장, 15장은 샤 이스마일, 사파비조의 위기, 압바스 1세의 재위, 후기 사파비조 시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16장은 사파비 제국의 몰락 이후 카자르조 성립까지 페르시아의 역사를 다룬다.
흥미로운 구석이라고 한다면 서명의 ‘페르시아’일 것이다. 저자는 굳이 공식 국명인 ‘이란’이 아니라 ‘페르시아’를 사용한데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1979년 이란 혁명 이후로 서방 세계에서 ‘이란’이란 말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졌다. 반면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카펫, 페르시안 고양이, 페르시아 세밀화, 페르시아 시 등과 같이 긍정적 이미지를 잘 보존하고 있다. 또 한가지 이유는 페르시아가 파르사(Parsa)의 그리스어형 페르시스(Persis)를 다시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바꾸어야 하냐는 것이다. 예컨데 독일도 도이칠란트(Deutschland)가 아니라 라틴어 게르마니아(Germania)의 영어식 표기인 게르만이라 쓰는데, 페르시아라고 굳이 이란이라고 써야하나? 이란인들도 역시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엥글레스탄(Englestan)이라고 부르는 형편인데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제 ‘이란’이 익숙하기 때문에 굳이 페르시아를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시대 구분일 것이다. 사파비 제국은 근대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파비조의 성립으로 이란의 시아파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과거와 큰 단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건 교수는 이같은 구분이 15세기를 기점으로 근대사가 시작된 유럽의 경우를 모방한 것이라고 보았다. (pp. 154-55) 지금에야 초기 근대(Early Modern)라는 개념이 사용되지만 초판이 나올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그건 맺음말이다. 시작할때도 적었듯 모건 교수는 이런 연구사 정리에 큰 강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Medieval Persia 1040-1797, 1st ed. 출간 이후 나온 페르시아사 관련 주요 저서들을 소개해주는데, 거기에 덧붙은 간단하지만 핵심적인 서술이 일품이다. 그리고 본문의 오류들에 대한 설명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안 읽으면 손해다. 1판 출간 후 거의 사반세기가 지난 뒤 나온 2판이기 때문에 학계의 시각도 크고 작은 부분에서 많이 변했으니 더더욱. 예를 들어, 몽골 제국의 이란 통치에 대한 시각이 본문에서는 많이 보수적인 편인데, 맺음말에서 언급된 책들은 그보다는 훨씬 몽골에 적대적 편견이 없다.
읽고 나서 보니 Medieval Persia 1040-1797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중세 페르시아사 개설서 가운데 추천받았고, 아직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200쪽이 채 안되기에 분량적 부담도 적고, 저자의 자세는 유연하다. 새로운 맺음말이 추가되면서 학계의 최신 동향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최근 한국에 소개된 『칭기스의 교환』의 티모시 메이 교수도 모건 교수의 제자라고 하는데, 메이 교수는 모건 교수의 장점을 잘 배운 것 같다.
:)
* 2020년 5월 15일 구매. 9월 16일 읽기 시작해 20일 일독 완료. 20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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