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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약탈혼 Ⅰ : 세계적 패턴

by hanyl 2019. 4. 8.

약탈혼은 창혼槍婚 또는 납치혼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남자측이 폭력적 수단으로 여자를 겁탈하여 강제로 결혼하는 것이다.(전영란, 2018: 235) 납치혼은 19세기에 맥레넌J. F. McLennan을 비롯한 일단의 인류학자들이 제기한 학설으로,(Monger, 2004: 1) 그에 따르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레일리아, 아메리카 대륙 등 인류가 거주한 지역 전체에서 발견되는 결혼 풍습이다. 맥레넌은 결혼의 발생과 역사를 연구한 그의 저서 《혼인의 기원》에서 혼인의례의 최초 형태를 ‘약탈혼’으로 파악하였다. 약탈혼은 ‘족외혼’의 경우에 행해졌는데, 이는 고대의 여아 살해 관습으로 인한 성비의 불균형 및 부족 사이에 교류가 없었던 시기에 불가피한 방법이었다.(이혜정, 2007: 235)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각 부족 간의 관계가 정립되면서 약탈혼 풍습은 자연스럽게 약해졌다가 근대적 법규의 출연으로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Werner, 2009: 316)

니콜라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1637년, 캔버스에 유채, MET 소장

에이어스Barbara Ayres는 신부 납치와 관련된 결혼 관습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약탈혼wife raiding’이다. 이 유형은 남성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community에서 여성을 훔치는 일이다. 그 다음 유형은 ‘진짜 납치혼genuine bride theft’으로, 이는 신랑이, 대개 자신의 집단에 속한, 특정 여성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그 대가로 신랑의 가족은 신부의 가족에 사과나 보상을 한다. 또한 신랑의 가족은 납치 이후 대개 신부의 가족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 세 번째 유형은 ‘가짜 납치혼mock bride theft’으로, 신부는 납치자들에 저항할 준비를 하여, 무력한 피해자이자 순종적인 딸을 연기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선택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마지막 유형인 ‘의례적 납치혼ceremonial capture’에서 납치는 단순히 의례일 뿐으로, 이미 신부나 그 가족들은 이미 이 납치를 완전히 알고 있으며, 만족한 상태이다. 대체로 약탈혼의 여러 유형은 공존하는 경향을 띈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의 경우, 약탈혼은 거의 나타나지 않으나 진짜 납치혼, 가짜 납치혼, 의례적 납치혼은 현재까지도 존재한다.(Werner, 2009: 315)

힌두교의 『마누 법전Laws of Manu』에는 여덟 가지 형태의 결혼 형태가 인정되는데, 그 가운데 네 가지는 ‘축복받을’ 결합으로, 나머지 네 가지는 ‘비난받을’ 결합으로 규정되었다. 그 가운데 한가지가 라크샤사rākṣasa로, 처녀를 유괴하여 강제로 결혼하는 것이다. 영국 역사에서도 유괴의 몇몇 예시가 기록되어 있다. 유괴, 특히 여자 상속인에 대한 유괴가 빈번하여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몇차례의 법령이 입안되었다. 헨리 7세의 재위기인 1487년 발표된 법령은 유괴를 흉악 범죄로 규정하였고, 엘리자베스 시대인 1596년에 통과된 법령에서도 이를 유죄로 다스릴 것을 천명하였다. 그럼에도 고위층에서 유괴가 여전히 행해졌던 것 같다. 1649년 토마스 퍼커링게 경Sir Thomas Puckeringe의 딸 제인Jane이 런던의 그리니치 공원에서 조세프 월시Joseph Walsh가 이끄는 집단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 제인은 조세프 일당에 8년 동안 끌려 다니며 네덜란드, 스페인 등지를 떠돌다 겨우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다른 예시는 19세기 초반의 일로, 16세의 부유한 여자 상속인 엘렌 터너Ellen Turner 납치 미수 사건이 있다. 에드워드 기번 웨이크필드Edward Gibbon Wakefield와 그의 형제 윌리엄William은 음모를 꾸며 엘렌을 납치했다. 이후 에드워드는 엘렌과 결혼하고 영불 해협을 건너 칼레로 향했으나, 칼레에서 프랑스 당국에 체포된 뒤 영국으로 송환당했다. 영국 정부는 에드워드와 엘렌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고 웨이크필드 형제는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Monger,2004: 1)

근대 납치혼의 경우 주로 소비에트 이후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 특히 카자흐스탄과 크르그즈스탄을 대상으로 연구되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납치로 인한 강제적 결혼은 20세기 말부터 빈도수가 많아졌다. 현재에도 추정치를 최대로 잡으면 키르기즈 여성의 3분의 1이 납치혼의 피해자로 보인다. 근대 들어 납치자들은 종족 또는 종교적으로 다른 집단에서 피해자를 찾았다. 예를 들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수만명의 힌두교도 또는 시크교도 여성들이 무슬림 남성에 의해 납치당했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수의 무슬림 여성들이 힌두교도 또는 시크교도 남성에 의해 납치당했다. 이들 여성의 대다수는 강제로 납치자들의 종교로 개종당했다. 1995년부터 2001년 사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민병대 역시 수백명의 비非파슈툰 여성들을 납치해 탈레반 지휘관들과 강제로 결혼시켰다.(Ergene, 2011; 이외에도 현대 중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납치혼 사태가 존재했다. 이에 대해서는 Monger, 2004: 1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