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법학에서 납치 및 납치혼은 강간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초창기 이슬람 사회에서 납치의 목적을 단순히 강간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강간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코란Qurʾān에 등장하지 않으나, 하디스ḥadīth(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과 관련하여 그의 교우들에 의해 자세하게 기술된 전승)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사피야 빈트 우바이드Ṣafiyya bt. ʿUbayd는 이렇게 전했다. “국가 소유의 노예가 전쟁포로로 잡힌 소녀와 관계를 맺었다. 그는 그녀를 강간했다. 따라서 우마르는 하드ḥadd(복수형은 ḥudūd. ‘제한’ 또는 ‘예방’이란 의미. 이는 코란이나 선지자 무함마드의 순나에 의하여 이미 처벌 내용이 정해진 것으로, 법관의 재량이 허용되지 않는다. 김종도, 2018: 154-155)에 따라 그를 벌하고 그를 추방하였다. 그러나 우마르는 소녀를 벌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슬람 역사상 강간에 대한 가장 초창기 기록이며, 강간범과 그 피해자를 엄격히 구분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법이 발전함에 따라 강간은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금전적 배상diya도 규정되었다.(Semerdjian, 2009)
그러나 납치혼의 목적을 단순히 강간에만 둘수는 없다. 코란은 결혼시 신부대의 지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마흐르ṃahr(본래 어원은 ‘구매비용’이나 실질적으로는 ‘신부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신부의 재산으로 간주되며,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이하는 경우 아내쪽에 주어지는 것이었다. 신부대의 지불은 결혼 합의의 주요한 요소로, 대체로 제3자(즉, 중매자)가 신부측 가정과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신부대의 액수는 신랑측 가정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신부측 가정에서 너무 많은 액수의 신부대를 요구하는 경우, 신부쪽에서 신랑에게 가짜약탈혼을 요구하기도 했다.(Nauck and Klaus, 2004: 368)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의 경우, 결혼이나 축첩을 위한 여성의 납치는 빈번했던 것으로 보이며, 초창기의 법정 문서 상에서도 이를 성범죄로 다루고 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초반 시나이 반도의 베두인 사회에 대한 기록에서도 약탈혼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는 전근대기 납치혼이 유목사회나 교외에서 빈번했던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Ergene, 2011) 부르크하르트Burckhardt는 19세기 초반 베두인 사회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납치혼의 사례를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어느 젊은 여성이 미래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저녁 무렵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일단의 청년들이 그 여성을 습격하면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기와 돌로 저항했다. 자신을 납치하려는 이들에 대한 그녀의 저항이 거셀수록, 또래 집단이 그녀를 신망하는 마음도 커졌다. 이 사례는 가짜 납치혼에 해당하는 것이리라.(Monger, 2004: 2)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탈혼 Ⅴ : 현대 터키에서의 약탈혼 (1) | 2019.04.08 |
---|---|
약탈혼 Ⅳ : 오스만 제국에서의 약탈혼 (0) | 2019.04.08 |
약탈혼 Ⅱ : 중앙유라시아 세계에서의 약탈혼 (0) | 2019.04.08 |
약탈혼 Ⅰ : 세계적 패턴 (0) | 2019.04.08 |
초기 근대 제국으로서의 오스만 국가 完 결론 (1) | 201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