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루이스 (1994).《오스만제국 근대사》. 김대성 옮김. 펴내기. 360쪽.
Lewis, Bernard (1961). The emergence of modern Turkey. Oxford University Press. 568 pages.
내용에 대해 적기에 앞서, 이 책은 버나드 루이스의 1961년작 저서, The emergence of modern Turkey의 완역본은 아님을 분명히 해야겠다. 역자 후기에 설명된대로, 본래 이 책은 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1부는 The Stages of Emergence라는 제목으로, 오스만 제국 후기부터 아타튀르크 사후의 터키공화국까지를 다룬 연대기적 서술이다. 2부는 Aspects of Change라는 제목으로, 집단과 국가의 관계, 행정, 종교, 문화, 계층 등에 대해 다루었다. 이 책은 1부에서 케말 이후의 터키 공화국을 제외한 부분을 번역한 책이다.
61년이라는 오래된 책, 그나마도 부분적인 번역이라는 점 때문에 책의 가치를 낮게 잡을수도 있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귀한 책이다. 전에 퍼시벌 스피어의 《인도 근대사》를 소개하면서도 짚은 부분이지만, 연대기식 서술이 한 주제의 역사 공부를 시작하기에 좋은 시작이기 때문이다. 2008년에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 적응과 변화의 긴 여정, 1700~1922》(이은정 옮김, 사계절)이 출간되었지만, 이 책도 시대순에 따른 정치사 부분의 비중이 아주 낮다. 이 책은 330여쪽에 걸쳐 오스만 제국의 뒷부분 정치사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도널드 쿼터트의 책을 번역한 이은정 교수께서도 오스만사 후기 부분에 대한 글을 적을때, 연대기적 서술에 대해서는 굳이 루이스의 책을 번역한 이 책을 인용하시는 편이다.
책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든 서술이 낡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이후 예니체리의 역할에 대한 서술을 보자. 예니체리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은 17세기 이후 황제를 폐위하거나 시해하는데 앞장서는 등 반란을 자주 일으키면서 정치를 혼란스럽게한 원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버나드 루이스는 당대의 다양한 기록들을 인용하며, 이들이 민간 사회의 목소리를 왕가에 강요하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지적한다. 크림 전쟁기 오스만 제국에 고용된 영국 제독, 아돌푸스 슬레이드(Adolphus Slade)는 “콘스탄티노플의 근위보병[즉, 예니체리]은 일면 프랑스의 하원을 닮았다”며, 예니체리 군단을 없애버린 마흐무드 2세에 대해서는 “이런 자유, 즉 소박한 소망들을 실현할 수 있는 이 가능성 대신 술탄은 어떤 상응물을 제공했는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나는 터어키인이 만약 자실들의 자유가 존중되었다면… 정부에… 반대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대괄호 안의 내용은 인용자. 본문 145-46쪽) 최근의 오스만사 연구는 17세기 이후 오스만 정치 권력의 분권화와 민간 사회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 이미 지적되기 시작한 내용이다.
물론 오래된 책이니 만큼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단적으로, 책의 내용은 17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사를 ‘장기간에 걸친 쇠퇴’로만 일관되게 묘사한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전과는 다른, 대단한 악조건에 처했다는 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학계는 17세기와 18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악조건 속에서도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살아남는데 성공한 점에 더 주목한다. 즉, “오스만 제국은 더 이상 고전시대의 제도들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자 지방행정을 과감하게 변혁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파직된 군인들과 일부 고위 지방관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극한 대립을 피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중략) 수많은 대립에서 적지 않은 인명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왕조는 매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이은정, 2012)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은 분명히 최근에 나온 연구로 보완되어가며 읽혀야만 한다.
한국에서 마이너한 분야의 역사를 공부하는게 취미다 보니 어려운 점이 참 많다. 특히 학술적인 내용을 읽기 좋게 서술해준 자료가 없다보니 더더욱 그렇다. 나는 로마사(고대 로마와 중세 로마, 즉 비잔틴 모두)가 한국에서 이나마 알려진데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바다출판사, 2007)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르네 그루쎄의《유라시아 유목제국사》(사계절, 1998)이 있는 중앙유라시아 역사는 좀 나은 편이다. 이 책이 다루는 오스만 제국사 같은 분야는 학술적으로 참고할 만한 한국어 자료를 찾는게 너무 어렵다. 그런 점에서 버나드 루이스의 책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그 뒤로 이와 같은 연대기성 책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 더욱 아쉽다.
함께 읽을만한 글
이은정 (2012). “오스만의 다양한 변신.” 『터키문명전: 이스탄불의 황제들 도록』.국립중앙박물관: 228-35.
Quataert, Donald (2008). 《오스만 제국사: 적응과 변화의 긴 여정, 1700~1922》. 이은정 옮김. 사계절.
* 절판된지 오래된 책이지만, 2016년, 책을 번역하신 김대성 교수님께 말씀드려 이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블로그에서나마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2019년 7월 9일에 일회독을 시작하여 22일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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