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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티모시 브룩,《하버드 중국사 원·명》

by hanyl 2019. 8. 9.

티모시 브룩 (2014).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 조영현 옮김. 너머북스. 568쪽.
Brook, Timothy (2010). The Troubled Empire: China in the Yuan and Ming Dynasties (History of Imperial China 5). Harvard University Press. 329 pages.

2016년 초에 《하버드 중국사 청: 중국 최후의 제국》을 읽었다. 이때 적은 “초기 근대 제국으로서의 오스만 국가”는 내 나름대로 정리한 《하버드 중국사 청》의 독후감인 셈이다. 사실 당시에 내가 관심을 가지던 부분은 ‘몽골 후계 제국’으로써의 ‘유라시아 육상제국들’이었는데, 《하버드 중국사 청》을 읽은 덕분에 글의 흐름이 좀 많이 변했다.

《하버드 중국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초기 근대 제국이나 몽골 후계 제국 등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몽골 후계 제국으로써의 오스만 제국 같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흔치 않게도 원-명의 연속성과 변화상에 대한 검토를 뼈대로 삼고 내용을 전개해간다. 더 정확히 적으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원-명 시기 기후 변화와 정치 · 경제 · 사회적 변동의 변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동시에, 저자는 기후 변화를 주된 골자로 삼음으로써 원-명 시기 중국을 지구사의 위치에서도 해석했다. 기후 변화는 한 나라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며, 소빙하기는 그야말로 지구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소빙하기는 전 지구적으로 초기 근대 세계의 형성에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었다. 세계 지도의 등장과 변용에 담긴 세계관의 변화나 남중국해를 통한 중국의 세계 경제 통합 등에 대한 내용은, 같은 맥락에서, 명나라의 외부 세계에 대한 의도적인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초기 근대 세계에 편입되었음을 설득력있게 전달해준 부분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지만, 4장 “칸과 황제”를 제외하면 대원 제국에 대한 서술은 명나라에 대한 서술에 비교해 소략한 편이다. 원나라에 대한 내용 역시 단순히 중국을 역대 왕조로서의 원에 치중된 느낌이고, 대몽골 제국 전체를 통치했던 대원 울루스로서의 특성은 거의 언급되지 못했다. 그런 탓에 몽골 계승국으로서의 명나라에 대한 서술도 부족한 면이 보인다. 예를 들어, 저자는 “새 왕조[즉, 명]은 정치 구조와 일통[一統]에 대한 요구를 제외한 원의 모든 유산을 거부했다… 사실상 세계 제국다운 지위를 상실했다.”(본문 508쪽)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오카다 히데히로가 이미 지적한 바, 명나라의 운남과 남만주 요하 유역 같은 영토나 군사 제도, 성리학의 강조, 그리고 위소제 등도 원나라의 유산이었다.(Okada, 1999 참고)

그러나 이런 단점은 책의 분량을 생각하면 사소해보인다. 어쨋든 저자는 원-명 시대 전체를 조망하길 원했고, 존속기간의 차이를 감안하면 두 왕조의 분량 차이도 이해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이 속한 하버드 중국사는 단순한 중국사가 아니라 ‘중화제국사’(History of Imperial China)이기에,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어쨋든 구성면에서도 저자는 두 왕조의 연속성과 이 시기의 대표 주제를 독재 정치와 상업화로 꼽았기에, 이에 집중한 것은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기에 한국에 출판된 책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 책의 장점이 있다. 저자는 작은 에피소드 몇 가지를 가지고 당시 광범위하게 진행되던 사회 · 경제적 변화상을 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2장 “행정과 제도”의 강남과 강북 절에서 다룬 강남인과 강북인의 갈등에 대한 서술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본문 75-84쪽). 전에 Peacock, The Great Seljuk Empire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도 다루었지만, 튀르크 · 몽골계 국가들이 성립한 동부 이슬람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후라산 출신 관료(중국으로치면 강북인)과 남쪽 출신 관료들(중국으로치면 강남인)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이외에도 가족, 재산 그리고 의례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무덤 관련 소송 사건(본문 305-10쪽)이나 한국 서울의 골동품 시장에서 시작된 명대 한 가정의 비석에 대한 이야기(본문 265-67쪽)는 꽤 재미있었다. 주제로 나누어서 전개되는 근래 역사 관련 개설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는데, 이런 스토리텔링 기법을 보니 말그대로 지려버렸다.

해서 든 생각이,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에 대한 감탄이다. 344쪽에 “이 분야에서 갑은 경험이었다” 같은 서술을 보니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활자 중독마냥 항상 읽기를 생활화한 분이 아닌가 싶었다. 나도 요즘 개인적으로 책 번역 제의를 위해 맛보기로 책을 번역중인데, 난 이런 경지에 절대 못 오를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어쨋든 역사 관련 책을 적는 사람이건, 번역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건, 읽으면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글들

Otagi, Masuo 愛宕松南 (2013). 《중국의 역사: 대원제국》. 윤은숙 · 임대희 옮김. 혜안.

Sugiyama, Masaaki 杉山正明 (1999). 《몽골 세계제국》. 임대희 · 김장구 · 양영우 옮김. 신서원.

Morgan, David O. (2012). 《몽골족의 역사: 몽골초원에서 중국, 중동, 러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모노그래프.

Okada, Hidehiro 岡田英弘 (1999), “China as a Successor State to the Mongol Empire” in Amitai-Preiss, Reuven and Morgan, David O., The Mongol Empire & its Legacy, Brill, pp. 260 – 73.

* 2019년 7월 26일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일회독. 책을 펴고 그날 바로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