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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르한 파묵, 《하얀 성》

by hanyl 2019. 12. 10.

오르한 파묵 (2011). 《하얀 성》. 이난아 옮김. 민음사. 229쪽. 9,500원.
Pamuk, Orhan (1985). Beyaz Kale. Gan Yayın.

터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오르한 파묵의 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내게 오르한 파묵의 글은 너무 지루했다. 학교 수업 때문에 《내 이름은 빨강》, 《이스탄불》, 《내 마음의 낯섦》을 읽어보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다. 《내 이름은 빨강》의 1권은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2권은 수업이 없었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뒤의 두 권은, 수업이 있었음에도, 다 읽지 않았다. 두 권은 각각 에세이도 두 편이나 적어야 했는데도. 어지간히 안 맞았나보다.

그럼에도 《하얀 성》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내 이름은 빨강》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이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오르한 파묵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된 것인데, 오르한 파묵도 시바 료타료 류의 작가였다. 소설을 쓰기 위한 참고문헌이 한 트럭 분량이라던, 그런 종류.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 지식 전달이 목표가 아닌 책에서 오스만 제국 특유의 고유명사가 어떻게 한글로 옮겨지는지도 궁금했다. 이런 목적의식은 수업보다는 나 자신에게 잘 먹혔다.

소설의 서사야 원체 유명하니 여기서 자세히 다룰 생각은 없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주제는 ‘문화 간 충돌과 복작함’에 관해 다루었다거나, 더 나아가 ‘동서양 문명의 갈등, 충돌 및 대비를 통해 터키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대체로 평가하는 것 같다. 《하얀 성》을 읽으면서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소설이나 에세이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하얀 성》에서는 동서양 문명의 갈등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책의 첫 머리에 인용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장이 오히려 더 정확하게 책의 내용을 해설해준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람을 만나, 미지 혹은 미지에 준하는 매력적인 삶을 접하고, 오로지 그의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 아니면 달리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7쪽) 아닌게 아니라, 오르한 파묵 역시 작가후기에서 “동서양 구별이 실제와 얼마나 적합하냐는 것은 물론 《하얀 성》의 주제가 아니다…. 독자들도 동서양 구별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로서는 무척 놀라웠다…. 이와 같은 구별에 대한 흥분으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그 많은 망상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을 존재하게 하는 색채도 대부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서양 구별을 위해 흑사병을 리트머스 종이처럼 사용하는 것도 옛날 사고이다.” (213쪽)고 적었지 않나. 얼마전에 또다른 터키의 유명 소설가, 엘리프 샤팍의 글을 읽는데도 유사한 의견이 있었다. “왜 ‘우리’는 ‘그들’처럼 될 수 없는 걸까. 시간이 차츰 흘러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나는 ‘우리’와 ‘그들’이란 분류를 없앨 수 있었다. 단지 개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 인간은 여러가지 얼굴을 가질 수 있다.” 다들 생각하는게 비슷한 모양이다.

책을 읽은 이유였던 오스만 제국 특유의 용어 번역은, 꽤 참고할만 했다. 본문에서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는 일관되게 ‘파디샤’로만 불린다. 다른 관직 등도 대체로 단순히 터키어 단어의 음역이었다. 터키어 원서에서 곧바로 한국어로 번역된 덕분인 것 같다. 영어판은 아마 서구식대로 술탄이니 하는 전통적인 표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영어판을 거쳤다면 한국어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전반적인 번역도 재미있었다. 직역인듯 낯섦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읽기가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의역과 직역 사이에서 나름 균형이 잘 잡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을 번역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조금은 상상이 갔다.

다만 무스타파 레이스를 ‘무스파타 레이스’로 적은 오타(91쪽)나 예언자 마호메트(98쪽)와 같이 지나치게 옛스러운 외래어 표기는 좀 아쉬웠다. 또, 180쪽의 카자흐는 잘못으로, 코사크라 옮기는 것이 맞다. 최근에는 카자크나 카자키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하여튼 지금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와는 어원은 동일하지만 별개의 집단이다. 55쪽의 아트 메이단(Atmeydanı)은 주석을 통해 이스탄불의 한지역으로, 경마장을 뜻한다고 적혀있다. 더 정확히 적으면 지금의 술탄아흐메트 광장을 말하는데, 히포드롬을 터키어로 옮긴 것이다. 사소하지만 경마장이 아니라 히포드롬으로 옮겼다면 오스만 제국의 다양한 측면이 더 잘 보이지 않았을까. 소설과는 크게 연관이 없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오르한 파묵의 형은 터키 경제사 연구의 대가인 셰브케트 파묵(Şevket Pamuk)이다. 셰브케트 파묵의 연구도 굉장히 폭넓고 깊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아마 터키 경제사 관련해서 공부하면서 셰브케트 파묵의 연구를 참조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나도 몇 차례 셰브케트 파묵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르한 파묵보다는 글을 재미있게 적는 것 같더라. 오르한 파묵이 소설을 쓸때 역사적 자료를 활발히 활용하는데 경제사 연구의 대가인 형의 영향과 도움도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 2011년 11월 14일 새마을 숨은책에서 구매. 2019년 11월 8일에 일독을 시작했고, 10일에 완료했다. 19일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