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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71

강인욱,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본 흉노의 기원과 형성” https://youtu.be/l0nVZepY_KQ?t=20795 재생 시간 - 05:46:35 ~ 06:16:00 얼마전 소개한 정충원 선생님의 발표, “고유전체를 통해 살펴본 내륙 유라시아인 유전자 다양성의 변화”의 후반부에 강인욱 교수님께서 관련된 발표를 얼마전에 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바로 이 영상이다. 영상에서 강인욱 선생님의 주장은 대략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흉노는 단순한 유목민 집단이 아니라 농경민과 유목민의 복합체였고, 이것이 흉노가 다른 유목 집단들을 제압하고 몽골 고원의 패자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둘째, 흉노의 기원은 서방의 사카 등 집단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으며, 제국이 성립한 뒤에도 상당 기간 흉노 지배층은 이러한 인식과 기억을 간직했고 선민의식을 지녔.. 2021. 5. 21.
정충원, “고유전체를 통해 살펴본 내륙 유라시아인 유전자 다양성의 변화” 강연 개요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의 유전체인 고유전체를 분석하는 고고유전학 분야는 최근 기술적 발전을 통해 옛날에 살았던 사람과 집단의 전장유전체 변이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사람 집단의 이동과 혼합을 정교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전장유전체 변이 자료를 이용한 정교한 접근법은 홍적세 이후 인류 집단 이동이 활발하게 반복된 내륙 유라시아인의 진화사 연구에 특히 중요하다. 즉, 내륙 유라시아인의 역사를 “동-서 혼합”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틀을 벗어나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발표에서는 발표가 몽골, 카자흐스탄, 남시베리아, 북중국 등의 지역에서 수행한 최신 고유전체 연구를 바탕으로 유라시아 동부 초원과 그 주변 지역 사람들의 유전적 다양성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개괄할 것이다. 특히.. 2021. 5. 18.
우즈아르히브, 티무르 무덤 발굴 당시 사진 공개 Amir Temur qabrining ochilishi — «O‘zarxiv» ba’zi fotosuratlarni e’lon qildi «O‘zarxiv» agentligi Samarqand shahrida joylashgan Go‘ri Amir maqbarasidagi Amir Temur qabrining ochilishi aks etgan ba’zi fotosuratlarni e’lon qildi. www.gazeta.uz 2020년 10월 26일 우즈베키스탄 국영기관 우즈아르히브(O‘zarxiv)에서 1941년 테뮈르가 묻힌 구리 아미르 발굴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이 발굴단은 우즈베크 수학자 타시무함마드 니야조비츠 카리니야지(Toshmuhammad Niyozovich Qori-Niyoziy, Т.. 2021. 2. 3.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한글 자막) 중앙아시아의 교류와 분쟁: 고대에서 현대까지 (계명대학교 실크로드·중앙아시아 국제 컨퍼런스) 조지 레인, “거란: 몽골제국의 초석” “거란은 11세기와 12세기에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을 떨친 튀르크·몽골계 집단으로, 전성기에는 북중국 대부분과 북방과 서방의 방대한 초원 지대를 지배했습니다. 이들은 이웃한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차츰 유목습성을 버리고 정주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12세기 초 여진의 발흥과 이에 따른 거란의 몰락과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거란을 새로 출연할 칭기스조 제국(Chinggisid Empire)에서 동화와 통합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유목습성과 정주식 행정에 익숙했던 거란은 공성전과 최신 군사 기술에 대한 실용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기에 칭기스 칸은 북중국의 여진을.. 2021. 2. 2.
도시전설, 티무르의 저주 1941년 소련 연구팀이 구리 아미르(Gūr-i Amīr) 발굴에 나섰다. 이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테뮈르조의 무덤을 열어서 테뮈르의 유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구리 아미르를 파헤치려 했을때 한 노인이 왕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외쳤다. 실제로 관뚜껑에는 “누구든지 내 무덤을 건드리면 전쟁의 악마가 그에게 닥칠 것이다”라는 저주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소련 연구팀은 관에 새겨진 경고를 신경쓸 계제가 아니었다. 스탈린이 테뮈르의 유해를 확인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골을 꺼낸 바로 다음날인 6월 22일 새벽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깜짝 놀란 스탈린은 테뮈르의 유해을 다시 봉인하라고 명령했고, 1942년 테뮈르는 다시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이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의 향방을.. 2021. 1. 31.
티무르의 수도는 사마르칸트였나 * 티무르(Tīmūr ← TYMWR)는 튀르크어·몽골어 인명 테뮈르/테무르(Temür)의 페르시아어식 독음이다. 그러나 테뮈르는 튀르크어를 모어로 하였으며 몽골 제국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튀르크어식인 테뮈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대체로 사람들의 인식은 테뮈르의 ‘수도’가 사마르칸트였다는 것 같다.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이렇게 적었다. “티무르는 유목민도 아니었다. 그는 스텝 지역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시 그 지역의 지도자나 전사들은 대개 성벽이 둘러쳐진 도시에서 살았고, 티무르도 역시 완벽하게 그러한 도시 사람이었다.” (Beckwith, 2014: 368)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식이 소위 말하는 ‘유목제국’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 2021. 1. 31.
목성과 토성의 만남, 그리고 합일의 주인 이슬람 세계에서 목성과 토성은 ‘두 행운[의 별]’(al-saʿdān)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두 별이 유달리 가까워지는 순간을 이슬람 세계의 점성술사들은 ‘두 행운의 합일’(qirān al-saʿdān)이라 하였다. 이슬람 세계의 이 관념은 사산조 시대 이란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파흘라비 문학에서는 ‘두 행운의 합일’이 일어나는 순간에 태어난 왕은 ‘세계정복자’ 또는 ‘명군’의 탄생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예컨데 6세기 중반 페르시아어 문헌 『파파크의 아들 아르다시르 행장록』(Kārnāmak-ī Araxsīr-ī Pābākān)은 사산조의 시황제가 ‘두 행운의 합일’이 일어나는 순간에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Chann, 2009: 94; 한편 일부 점성술사는 예수 그리스도 또한 이 운명을 타고.. 2020. 12. 21.
Atwood, “『몽골비사』를 읽는 눈: 쿠빌라이 카안에서 18세기까지” Christopher Atwood, “Reading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from Qubilai Khan to the Eighteenth Century,” Jean and Denis Sinor Lecture Series (October 26, 2020). 크리스토퍼 애트우드(Christopher P. Atwood) 교수께서 올해 10월 26일 인디애나대학교 중앙유라시아학과(Department of Central Eurasian Studies)에서 진행하는 사이노어 강연회에서 발표한 강연 동영상이다. 『몽골비사』의 저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몽골비사』의 이야기를 이후 사가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도로 이를 재해석하고 재작성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강연 .. 2020. 12. 16.
야즈디 『승전기』 터키어 번역본 소개 Şerefüddin Ali Yezdi, Emîr Timur: Zafernâme, Ahsen Batur 옮김 (İstanbul: Selenge Yayınları, 2013), 544쪽. 터키에 출간된 티무르조 관련 사서들 앞서 터키에 출간된 티무르조 관련 사료들을 소개했다. 그 가운데 몇가지는 나중에 직접 구해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전 친구 집에 갔더니 샤미 『승전기』와 야즈디 『승전기』가 있길래 빌려왔다. 아무래도 한국에는 야즈디 『승전기』가 이미 소개된 바 있기에, 이쪽을 먼저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일전에 소개하였듯, 샤라푸딘 야즈디의 『승전기』는 니자무딘 샤미의 『승전기』를 토대로 한 사서이다. 야즈디의 저술이 가지는 특징이라면 테뮈르를 홀로 선 군주로 묘사했다.. 2020. 9. 19.